[서양철학사] 5주차 9,10장 합리주의 후기

호수
2021-04-07 23:25
90

어느새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 절반 가량을 읽었습니다. 1권은 다음 시간에 다룰 한 챕터만 남았네요. 지난 시간에는 근대의 합리주의 철학자 3명과 경험주의 철학자 3명을 봤습니다. 언제나처럼 어마어마한 라인업이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에서 ‘회의’만큼 중요한 것이 ‘방법적’이라는 부분이다, 라는 말을 전에도 어렴풋이 듣긴 들었지만 이번에 그 뜻을 더 확실하게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 끝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코기토 에르고 숨과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다시 찬찬히 생각해봤어요. 우리는 세미나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만 시작할 때의 계기나 마음가짐은 달랐으리라, 그렇게 짐작했던 것 같아요.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 가능성이 컸을 듯해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존재’라는 것이 실재하는 사건이라는 확신은 애초부터 그에게 분명했을 겁니다. 필요한 것은 이 자명한 사실을 믿지 않는 저들을 설득시킬 명제를 찾아내는 것이었을 듯해요. 데카르트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 역시 아우구스투스처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 책의 저자들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명제를 찾아내면 철학의 그 모든 혼란을 가라앉힐 수 있으리라고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으니까요. 어쩌면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직접 그렇게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면에서 어쩌면 데카르트 역시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진 결론으로 향해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의심 가능한 것’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고, 심지어 악마까지 등장하는 사고 실험을 동원해 어떻게든 최대한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려고 한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는 정말이지 ‘방법’에 무척이나 철저했습니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명제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명제를 ‘발견’한 뒤 자명한 진리는 존재한다는 믿음을 확보한 뒤 그 전에 의심 가능하다고 여겼던 다른 명제들을 자명한 명제로 복권시킵니다. 그 과정은 어쩌면 성급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세미나에서는 일단 코기토 에르고 숨이 정말 그렇게 자명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각하는 나’에서 이제 존재하는 주체를 전제한 꼴이라는 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이 명제로 존재가 인식하는 주체로 좁혀지면서 이후의 철학은 인식론이 중요해졌다고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고요.

 

스피노자를 애정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여겼는데 정군샘이 스피노자에 굉장한 팬심을 드러내셨어요. 제 경우 뭐가 뭔지 모르고 시작했던 스피노자를 통해 실체니 속성이니 질료니 형상이니 하는 수많은 생소한 용어들을 접했고 그 뿌리가 몹시 궁금했는데 이번에 철학사를 같이 읽으며 그 부분이 조금씩이나마 해소가 되어가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참으로 오묘한 구석이 많다고 느꼈는데 특히나 그 논란이 많은 3종 인식은 어쩌면 인간은 절대 가닿을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합리주의 라인업에 들어가선 안 되었겠지요. 우리 책을 통해 스피노자를 보면서 합리주의의 계열에서 보았을 때의 일반적인 해석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라이프니츠는 이번에 좀 더 알아두고 싶었는데 우리 텍스트 설명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우리 텍스트에는 명시되지 않지만 저는 다른 텍스트에서 단자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것이므로 연장성을 지닐 수 없고 따라서 단자는 영혼 내지 의식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의 세계관이 조금은 납득이 되었어요. 정군샘은 이러한 단자론이 어쩌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닐까 추측하셨어요. 아마 심신평행론에서 말하는 모든 물질에 대응하는 관념이 있다는 주장 떄문이겠지요? 그런데 어디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스피노자가 실체를 하나로 보고 인간의 영혼을 그 일부분으로 본 것에 반대해 단자라는 개별 실체들을 떠올렸을 거란 해석을 봤는데 그것도 설득력 있게 느껴졌어요.

 

아무튼 저 안에 들어가 있으면 덕분에 철학사 책 한 권을 다 읽기는 하겠지, 하며 들어온 세미나인데.. 역시나 숨가쁘네요. ㅎㅎ 절반이나 왔지만 앞으로 남은 길도 만만치 않아서... 아무튼 안에 있으면 읽기는 하겠지요? 게다가 매주 내리는 책비는....... 아..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일단 접수해두고 있습니다. 

 

 

댓글 3
  • 2021-04-08 10:26

    후기를 보니 지난 시간에 나눴던 이야기들이 좌라락 떠오릅니다! 게다가 마치 호수샘이 말씀으로 해주시는 듯한 문체로군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방법적 회의'에서 '방법적'이라는 부분은 정말 중요한 듯 합니다. 이를테면 그와 같은 방법은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자들이 공유하는 '공통지반' 같은 느낌도 있고요. 말하자면, 데카르트 이후로 '방법적 회의', 다른 말로는 '반성'하지 않는 이성주의자는 없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요.(물론 세부 사항들은 따져봐야 하겠지만요)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스피노자 선생님의 팬이 아니라 '성도(聖徒)'랍니다. ㅎㅎㅎ

  • 2021-04-11 10:25

    아, 저는 방법적 회의의 목적이 '이성적으로 정당하게 의심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을 찾는것이다'라는 문장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고 있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요놈의 이성이 참 아리까리하네요.ㅎㅎ

    경험주의자들 역시 이성은 저편으로 미뤄두더라도 논리는 소중하니까 '논리'로 자신들의 주장을 구성하는 거잖아요.

     뒷북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성'이란 대체 뭘까요?^^

    • 2021-04-12 09:24

      저도 요며칠 비슷한 질문을 갖고 있어서 요요님의 '뒷북치는':) 댓글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네요. 정군샘이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라는 표현에 대해 고민하는 말씀을 주신 것도 그런 생각을 자극했어요. 나가봐야하는 시간이라 자세히는 못 쓰겠지만... 철학사를 읽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철학에서 쓰이는 여러 개념들에 익숙해지고 정교하게 이해해가는 과정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성적'과 '합리적'과 '논리적'에 대해 정리해보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자세히 얘기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제가 재작년 3월에 보냈던 번역원고를 최근에 교정지를 받아 다시 읽는데 뒷부분에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가 나와요. 스토아주의 부분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rational을 합리적에서 이성적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지나치게 합리적'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이상했던 것이 결정적...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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