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철학학교Q&A⑤] 군-닐* 『서양철학사』를 고른 이유

정군
2021-02-05 00:04
237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

앞선 글에서 힐쉬베르거판 『서양철학사』(상, 하)에 관해 말씀드렸지요? 네 그 책은 읽은 지 거의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제 마음을 양가감정으로 채웁니다. ‘너무 재미없어’, 그리고 ‘참 뜻 깊은 책이었지’ 하는 두 가지 감정입니다.(다시 보니 ‘양가감정’은 아니었네요.) 네, 어쨌든 그 책은 정말 재미는 없고 의미는 충만한 그런 책이었습니다.(그걸 무려 두 번이나 읽으신 아렘샘 respect!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도 당시의 제 입장(남은 두 학기 모두 4점대 평점을 맞아야 8학기 평점 2대 중반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입장) 덕에 어거지로 생겨난 ‘의미’에 가깝습니다.(그렇지만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는 내용이 정말 충실한 ‘서양철학사’입니다) 역시 공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잘 되는 법이지요.(‘절체절명의 수능시험’ 썰도 있는데, 이건 세미나에 들어오시는 분들에게만 풀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그래서 그 내용 충실하고, 의미 있고, 재미는 딱히 없는 책을 세미나 텍스트로 고를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워낙 오래된 책이고, 어느 시점 이후로는 ‘구판절판’, ‘품절’이 일상적으로 뜨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책을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입니다.(특히 근대철학을 다룬 ‘하권’이 그렇습니다. 알라딘 중고 최저가가 80000원이네요.) 그렇게 일단, 그 책을 제외하고 나니까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책만 놓고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러셀 선생님께서 워낙 글을 잘 쓰시는 분인지라, 번역된 글을 보아도 ‘달인’의 풍모가 물씬 풍겨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이미 원숙기에 접어든 시점에 집필된 책이어서 그런지 어느 면에서 보자면 ‘철학사가’가 아니라 (분석)‘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러셀의 입장이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물론, 어느 책이든 쓴 사람의 ‘입장’이 개입되지 않은 책은 없겠지만, 문제는 정도의 차이, 용도의 차이에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러셀 판 『서양철학사』도 탈락했습니다. 그 다음에 틸리 『서양철학사』, 슈퇴리히 『세계철학사』(문탁샘이 83년도에 감옥에서 읽으신 그 책!) 등을 살펴보기도 하고, 아예 각 시대별로 각기 다른 책을 보는 방법 등을 고민해 보았지만, 군-닐판 『서양철학사』를 보자마자 다른 건 고려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일단, 무엇보다 지금까지 조금씩이라도 떠들춰 본 그 어떤 ‘서양철학사’, ‘세계철학사’보다도 재미있었습니다. 게다가 쉽게 읽혔고요. 그리고 정말 빛나는 장점은, 당대의 철학-담론으로부터 ‘문제의식’을 쏙쏙 뽑아내 보여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장에서 그런 예시를 보여줍니다. 이 예시들을 통해 담론에서 문제의식을 추출하는 방식을 배운 다면 이후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다른 ‘서양철학사’들이 당대의 철학 담론들을 ‘지식화’ 하는데 비해 군-닐판 ‘서양철학사’는 당대의 담론을 ‘문제화’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통독해가다 보면 굉장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말인즉, 우리가 세미나를 재미있게 진행하는 데 최적화된 텍스트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막상 세미나를 했는데 그렇게까지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하죠. 그걸 생각하면 저는 하프라인을 넘어 달려오는 상대팀 공격수를 바라보는, 어저께 유스팀에서 콜업되어 올라온 신인 센터백의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뭐, 그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이미 저희 팀에는 그런 애송이를 커버해줄 베테랑들이 계신데요. 일단, 공을 굴리다보면 골도 넣고, 골도 먹고, 반칙도 하고 그렇게 될 겁니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어야 ‘인생 경기’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계속 비유가 계속 축구장으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세미나를 함께 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서양철학사’ 한 번 읽어두면 절뒈로 손해 볼 일 없습니다.” ^^

 

아 맞다. 『새로운 철학교과서』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일단, 서점에 등록된 책 소개를 한 번 보겠습니다.

 

“이와우치 쇼타로는 이 『새로운 철학 교과서』에 두 가지 목적을 설정하고 있다. 그 하나는 21세기에 들어서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실재’로 향하고 있는 현대철학의 ‘실재론’에 주목함으로써 ‘인간 이후’의 세계를 사유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철학에 일정한 전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실재론’의 의의를 현대의 실존 감각에 비추어 ‘실존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합니다. 문탁에서 열리는 철학 강의 때마다 ‘주체 어쩌고’ 하는 질문을 하는 저를 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만, 저는 ‘주체’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저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주체성을 벗어나는 것’에 정말로 관심이 많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제가 비-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SF소설을 무진장 좋아하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로 제가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이런 저런(자기자신의 것까지 포함한) ‘주체성’에 피로감을 느끼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후자가 더 근본적인 이유죠. ‘주체성’에 피로감을 느끼는 ‘주체’이다보니 ‘잘만 하면 로봇이 될 수도 있어’랄지, ‘인간지능이 인공지능화되면 어떨까?’ 같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이제껏 제가 읽고 공부해온 ‘철학’하고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물론 들뢰즈에게서 거기까지 가볼 수 있는 ‘상상력’이 분명, 아주 뚜렷하게 있기는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존재론’을 혁신한 시쳇말로 1급 철학자시다보니 어떤 의미에서는 ‘구체성’이, 아 잠깐만요. 이 글의 목적과 의도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고 있네요. 정신 좀 차리고요. 그러니까 『새로운 철학교과서』는 최근 철학의 최신의 흐름인 이른바 ‘포스트 휴머니즘’을 개괄하는 ‘입문서’ 격의 책입니다. 큰 구상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부터, 가장 최근의 서양철학까지를 다룬다는 느낌으로 끼워 넣은 셈입니다. 여기에 저의 야망을 한 스푼 보태서, 나중에 좀 더 본격적인 ‘포스트 휴머니즘’ 세미나까지 가는 사전 포석과도 같은 의미가 있답니다. ^^

 

아.... 이제 장장 5회차를 꽉 채운 연재가 끝났네요. 그 동안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ㅠㅠ 
제가 워낙에 초반에 힘 빼고 막판에 허덕이는 스타일이라 점점 지루하셨을 거에요. ㅠㅠ 

자... 이제 신청하러 가셔야죠? http://moontaknet.com/?page_id=167&mod=document&uid=3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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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냥 끝내기 아쉬우니 음악 한 곡 띄웁니돠, 마지막이니 느낌상 희망적인 걸루다가 골라 보았습니다. ^^

 

미국의 현대음악가, 미니멀리스트 스티브 라이히가 작곡한 'duet'이라는 곡입니다. 

'겨울'에 듣기에 참 좋슴다~

 

댓글 6
  • 2021-02-05 07:59

    하하...마지막까지 내가 첫 댓글이네요.
    내가 sf를 매우 좋아하죠~~
    (그런데 소설 말고 영화. 난 소설은 거의 안 보니까...)
    무협과 sf가 나의 최애 장르^^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그대와 나 사이에 비슷한 것 찾기가 나의 댓글 주제였었던 듯.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유

  • 2021-02-05 09:57

    서양 철학사 세미나에서 뵐게요.
    글 끝까지 재밌게 잘 읽었어요~

  • 2021-02-05 10:09

    연재를 기다리며, 끝까지 재미있게 잘 읽었네요. 하나도 안 고생, 안 지루했다는~

    제가 공부근력이 아직 미약하여 얼굴 뵐일은 기약 없으나,
    정군님 글은 자주 뵙길 바라며, 댓글 예약 합니다! ㅎㅎ

  • 2021-02-05 10:31

    신청 링크를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서점에서 군* 닐* <서양철학사> 를 주문하는 클릭 소리가 들리는군요.ㅋ
    여러분! 철학학교 신청링크 클릭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책주문하실 때는 이왕이면 온라인 서점에서 클릭하지 말고 동네서점 우주소년에 주문해 주시길!! ㅎㅎㅎ
    (문탁네트워크라고 꼭 말해주세요~~)

  • 2021-02-05 12:27

    급 정군님과 공부하고 싶어지네요...
    내 코가 석자라...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음악 좋아요~~

  • 2021-02-05 12:30

    정신차리고 보니, 한버트면 제가 세미나 신청을 할 뻔했어요.
    정말 세미나 같이 해서 정군샘 연주에 올라타고 싶네요. ㅎㅎㅎ
    그동안 글 재미있게 잘 읽었고,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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