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오이디푸스] 3강 후기

히말라야
2020-01-29 14:52
495

설연휴가 끝나갈 무렵... 머리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강의를 두 번이나 들었는데두 왜 책의 글자들은 계속 매직아이가 되는 걸까? 그런데 저만 그랬던것은 아니었나봅니다. 같은 세미나 조원이신 씀샘이 이번 주에 결석할까 고민하셨다고, '나 어디 아프지 않나?' 막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하셔서 함께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분량에서 씀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인 "사회기계는 삐걱거리고 고장 나고 작은 폭발들을 터뜨리면서만 기능한다.... 부조화나 기능 장애가 사회 기계의 죽음을 알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누구도 모순으로 인해 죽은 적은 없다." 를 읽으면서 다시 나올 마음이 나셨다고요. 다 알면 뭐하러 나오겠나...모르니깐 나오는 거고, 선생님도 할 일이 있는 거지...라면서 나오셨다는 말씀에 저는 감동이 울컥~ ^^

 

이번 시간 강의는 책의 3장 <미개, 야만, 문명>의 전반부에서 주로 원시 영토기계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3장은 역사에서 보편사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데,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이고 이는 역사의 대상인 '욕망'을 공통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헤겔 같은 경우는 역사란 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다...라는 식으로 일관성있는 보편사를 만들었지만, 들/가는 역사란 인간의 욕망을 관리하는 유형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는 변화의 보편사-변화하는 게 당연한건데, 뭐 때문에 안 변하고 있을 수 있나를 탐색하는-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하신 듯한데, 맞나요?

 

저자들은 이런 보편사는 또한, 자본주의의 조명 아래 회고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흐름들을 탈코드화하는데, 거꾸로 생각해서 탈코드화가 되지 않은 사회체란 어떤가를 대립 추론을 통해서 탐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보편사의 첫 유형인 원시영토기계에서도 모든 흐름을 탈코드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싹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시영토기계는 혈연과 결연이라는 절편기계를 작동시켜 탈코드화된 흐름을 배제하는 사회체였습니다. 세미나 시간에 모든 사회체가 자본주의의 음화라는 말에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들/가의 기본적인 관점은 싹~다 갈아엎는 혁명은 없다는 것이고 '~한 조건하에, 어떻게 할까?'라고 묻는 것이죠. 자기가 처한 조건을 정확하고 미세하게 들여다 보고 오래 시간을 들여 내 앞의 '벽을 줄로 갈아 넘어가는' 스타일입니다. 

 

저자들은 사회기계를 순환을 본질로 하는 교환의 터전이 아니라 표시하고 표시되는 것을 본질로 하는 기입의 사회체로 봅니다. 성기현 샘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에 대한 반론제기라고 합니다.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사회를 등가교환에 의한 평형과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는데 저자들은 이와 반대로 비평형 속에서 변화를 야기하는 역동적이며 열린 현실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자본주의의 음화로서의 원시영토기계는 비평형적인 부채의 사슬로 교환을 최대한 막으려고 합니다.   

 

원시영토기계까지 거슬러 가 오이디푸스의 계보를 보여주는 <오이디푸스 문제>에서는 도곤족의 신화와 마리셀 그리올의 텍스트가 흥미로웠습니다.  도곤족의 창조신은 눔모라는 8쌍둥이를 낳았는데 이들은 양성인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례에 의해 성을 선택한 후에 도곤족의 조상들이 된 것이죠. 신화 속에는 혈연이나 가문이 얼마나 인위적인(코드화된)것이지에 대한 의미가 숨어/억압되어있습니다. 모두다 한 배에서 나온 인류라면, 사실상 우리는 모두 다 근친상간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문화를 만들려는 '인간'은 그런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태곳적의 기억은 억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혈연과 결연을 통해 관계와 문화를 확장해나가야하므로 근친상간은 금지됩니다.  그러니 프로이드가 주장했던 것과 같은 태곳적의 근친상간은 행해진 적이 없습니다. 근친상간은 만들어지자마자 바로 금지된 것이었는데...중상모략을 받았다고 ㅎㅎㅎ. 저자들은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는 오이디푸스의 계보학을 이렇게 뒤집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은뎀부족의 사례를 들어, 원시영토기계에서는 정신분석이 아니라 분열분석이 이미/현실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의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 K를 치료하는 은뎀부족의 의사와 점쟁이는 엄마/아빠를 묻지 않습니다. 그 대신 영토와 그 근방, 족장제아 부족장제들, 가문들과 분파들, 결연들과 혈연들에 관한 사회 분석에 착수합니다. 그들은 정치/경제의 관계 속에서 욕망을 밝히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부족들이 식민화되면서부터 무의식까지도 식민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현재 오이디푸스화된 우리들의 무의식이, 자본주의적 생산구조 속에서 내밀하게 식민화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오이디푸스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원인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것이죠.

 

언제나 그렇듯이 강의시간이 부족하여, 4절까지만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5절은 각자 읽어보신 후 세미나와 질문을 통해 해결해 주시면 될것 같고요. 다음 강의는 6절 <야만 전제군주 기계>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세번이나 강의를 들었으니 이젠 좀 읽어질까요? 기대해보며 C조의 후기를 마칩니다~   

댓글 3
  • 2020-01-29 15:23

    강의안 맨 위에 써있던 보편사는 기관 없는 신체와 욕망의 생산이란 말이 지난 강의의 키워드였던 것 같아요. 3장 첫문장이었는데 왜 그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본주의는 보편적인가? 라는 질문에 더 눈이 쏠렸는지....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네요! 친절한 후기 잘 읽었어요~

  • 2020-01-29 15:40

    씀샘의 깨달음에 이마를 탁 치고 고개를 숙입니다.
    그래 난 고장난 신체였어 ㅜㅜ

  • 2020-01-30 17:56

    불친절하고 난해한 이 텍스트가 사실은 너무 논리적이고 치밀한 문장에서 연유한다는 성기현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에 걸쳐 어떻게 그들의 논리가 전개되는지 차근차근 풀어주셨습니다. 아 이런 말이구나... 사칙연산 겨우 배우고 미적분에 달려든 꼴인 저는 그제야 알아듣습니다.ㅎㅎ
    저자들의 논지나 주장은 기존의 주류 관념에 반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텍스트를 읽으며 깜짝 놀라거나 감탄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구나... 그리고 저의 기존의 관념들이나 생각의 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저자들의 논지에 수긍이 가는 일이 늘어납니다. 그럴 때는 잠깐이지만 독서의 즐거움도 누리긴 합니다. 저자들의 글이 기존의 인식을 뒤집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구성해내기 위해서는 논리가 치밀하고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수많은 다른 분야의 텍스트를 통해 증례를 가져와야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이도 샘께서 이런 저런 배경 설명과 함께 글의 맥락과 논지를 잡아주시니 흩어져 있던 내용들이 많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저자들이 무엇과 왜 대결하려 했는지, 어떻게 풀어가려 했는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잡혀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수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교환’을 왜 원시 공동체는 그토록 치열하게 회피했는가? 였습니다. 들/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교환을 통해 부가 축적되면 공동체의 자율성과 힘의 균형이 깨지고, 공동체 내부의 고유성이 침해당할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공동체적인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교환을 통해 사유재산과 축적이 생기면 공동체성이 훼손될 것이라 예견하고 그것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토지위에 결연과 혈연으로 직조되어 생산과 재생산을 반복하는 원시 영토기계의 사회체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이 분열적 욕망보다 우세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코드화, 영토화 하는 힘과 탈코드화, 탈영토화 하려는 힘의 밀고 당기기에서 기존의 코드를 유지하려는 힘이 더욱 강했던 것인가? 그것이 교환을 그토록 회피하게 만든 이유인가? 기존의 코드를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의 분열증적인 욕망이 형성되어야 탈코드화가 진행되고 다른 사회체로 넘어 가는 것 일텐데... 그것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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