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고원> 12장 후기

라라
2019-10-20 20:38
475

4분기의 첫 번째 수업은 12장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입니다.

12장은 저자들이 지금까지 펼쳐왔던 개념들이 퍼즐 조각처럼 연결되면서 전체적인 모양새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드디어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건가요?

수업 내용들 중에서 문탁샘께서 콕 집어 강조하신 중요한 개념들 몇 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는 저자들의 논지와 맥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들인 것 같습니다.

 

유목론과 전쟁기계

유목주의 nomadism의 어원은 노모스 nomos입니다. nomos의 사전적 의미는 ‘목초지에 풀어 놓다’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경계나 울타리가 없는 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분배’ 라는 의미로 발전했고, 이 후 그것은 질서, 관습, 규칙이라는 의미로 진화합니다. 그러니까 노마디즘은 ‘초지에 풀어 놓는다’라는 노모스의 초기 의미에서 유래한 것이더군요. 스텝과 사막에는 정해진 길이 없고, 온갖 것들이 울퉁불퉁하게 뒤섞여 있는 곳이지요. 그래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다른 것을 생성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진경샘은 노마디즘을 ‘버려진 불모지에 달라붙어 새로운 생성의 영토로 바꾸어 가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유목’이라는 개념의 근본적 요소를 가져와 현대적 의미로 정리해 본다면 유목은 ‘제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생성의 방식이 ‘전쟁 기계’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것인데 그것이 척도와 규칙, 위계에 의해 작동되는 국가 장치적 요소들과 충돌하게 되면 전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홈패인 공간인 국가가 있기 전에 먼저 전쟁기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목형 보다는 리좀이 먼저이고, 몰적인 성분보다 분자적 성분이 먼저이고... 등과 연결되는 논지라고 보입니다. 전쟁기계는 권력이나 지도력, 가치나 힘이 어느 하나의 중심으로 집중하는 것을 저지하는 국가 저지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전쟁기계는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삶과 가치를 창조하려 하고 또한 그런 능력의 생산을 목표로 합니다.

 

유목적 사유

맑스는 ‘모든 학문은 국가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유를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푸코는 ‘사유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담론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들/가는 사유를 국가적 사유와 유목적 사유 라는 두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저자들의 사회구성체를 설명하는 것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들은 사회구성체가 진화론적, 선형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유형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혼재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국가적 사유란 진리나 법과 같은 초월적 근거를 상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경험적 조사연구나 논리학적 규칙을 따릅니다. 이러한 사유의 형식 자체가 국가적 사유의 내용이 됩니다. 반면, 유목적 사유는 그 사유 형식 자체가 <장자>처럼 우화의 형식이거나 니체처럼 아포리즘의 형식을 갖습니다. 이는 그 어떤 초월적 근거를 상정하지 않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내재성을 바탕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취하게 되는 형식입니다.

 

속도

우선 저자들은 운동과 속도를 구분합니다. 운동은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속도는 방향이 특정되지 않으면서 공간을 전체적으로 장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속도는 양적인 빠름인 속력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먹이를 노려보며 공중에 멈춰있는 매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는 상승속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속력은 없지만 엄청난 속도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속도는 ‘그 환원 불가능한 부분(원자)들이 매끄러운 공간을 소용돌이 꼴로 점유하거나 채우는 신체의 절대적 성격을 구성하며, 어떤 점에서도 솟아오를 가능성을 갖고’있습니다. 그래서 사유의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빠른 사유는 직관적 사유라고 말합니다. 직관적 사유가 빠르게 전체를 통째로 장악해 버리는 사유인 이유가 그 작동 방식이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논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단번에 전체를 편재해 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이 말하는 ‘속도’는 내포적이고 강밀도적인 개념으로 이해됩니다.

절대속도는 전쟁기계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절대속도는 그 어떤 제한, 방향, 크기에 갇히지 않는 속도의 자유로운 변이능력이 관건이 됩니다. 그러나 국가 장치는 여기에 상대적 운동을 부여해 홈을 파려고 하지요. 이렇게 전쟁기계와 국가장치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길항관계에 있습니다.

 

13장은 포획장치와 자본주의입니다. 전쟁기계들이 국가장치에 의해 어떻게 포획되며 자본주의는 이 포획의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 짐작됩니다.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은 전쟁기계적인 모습보다는 국가장치 안에서 일반성, 보편성, 안정성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 복종과 억압을 원하고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스피노자의 질문과 맞닿아 있는 들/가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13장의 공부를 통해 우리는 이 포획장치를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단서들을 찾아 낼 수 있을까요? 궁금...

댓글 3
  • 2019-10-20 22:31

    라라샘, 후기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9-10-21 07:29

    라라샘...존경해유~

    박수.jpg

  • 2019-10-21 12:21

    정말 핵심적인 개념들을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전쟁기계는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감정"에서 형성된다고 말한것에서 비추어보면, 개인적으로 보면 사유형식에 대한 들/가의 논의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표현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통제된다고'는 생각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들/가는 사유의 내용이 아니라 '사유 형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사유 형식'에 대한 논의는 곧바로 이반 일리치의 '정신 공간의 분수령'을 떠올리게했습니다.
    문자, 페이지, 컴퓨터와 같은 도구의 발명이 인간 '정신 공간의 틀'을 구성해왔다는 이야기들.

    들/가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서, 우리의 사유 형식 자체가 '국가-모델'에서 왔다고 강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사유의 이미지가 변할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국가형식의 변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좀 섬뜩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말 '자유로운 생각'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도 생각됩니다.
    라라샘이 이야기한대로, 유목적 사유란 진리, 법과 같은 초월적 사고에 의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그 사람, 그 구체적인 상황에서 내가 온 몸으로 사유하면서 만들어내는 어떤 감응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들뢰즈 철학을 다른 한편으로 '횡단의 철학'이라고 말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다음 고원이 만이 기대됩니다. ^^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10
N [2024 철학학교 시즌2] 순수이성비판2 1주차 질문들 (7)
정군 | 2024.04.24 | 조회 72
정군 2024.04.24 72
809
[2024 철학학교 시즌2] 순수이성비판 : 선험적 변증학 읽기 모집 (4)
정군 | 2024.04.09 | 조회 194
정군 2024.04.09 194
808
[2024철학학교1] 시즌 1 마지막 시간, 방학이다! (3)
진달래 | 2024.04.09 | 조회 172
진달래 2024.04.09 172
807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8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4.02 | 조회 135
정군 2024.04.02 135
806
8주차 번외 질문 (3)
아렘 | 2024.04.02 | 조회 104
아렘 2024.04.02 104
805
[2024 철학학교1] 7주차 후기: 시즌 1이 거의 끝나갑니다. (7)
아렘 | 2024.03.29 | 조회 161
아렘 2024.03.29 161
804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7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3.27 | 조회 137
정군 2024.03.27 137
803
[2024 철학학교1] 6주차 후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0)
휴먼 | 2024.03.24 | 조회 181
휴먼 2024.03.24 181
802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6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3.20 | 조회 191
정군 2024.03.20 191
801
[2024 철학학교 1] 5주차 후기: 쪼그라든 상상력, 불어난 통각 (7)
세븐 | 2024.03.15 | 조회 226
세븐 2024.03.15 226
800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5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3.13 | 조회 176
정군 2024.03.13 176
799
<2024 철학학교1> 4주차 후기 (8)
세션 | 2024.03.10 | 조회 222
세션 2024.03.10 22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