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즌 3주차 장자-황로학파 후기

진달래
2019-08-12 16:02
655

《장자》 외편 중 황로학파에 속하는 편은 <천지>, <천도>, <천운>, <각의>, <선성>이다. 여기에 잡편인 <천하>편이 추가된다. 이들을 그레이엄은 ‘혼합주의 경향’이라고 불렀으며, ‘절충주의’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앞서 본 ‘무군파가’가 性命之情‘의 문제를 다루며 仁義를 비판하고 반문명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에 비해서 다스림(治)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먼저 황로학(黃老學)에 대해서 살펴보자.

황로학은 전국시대 중후기 이후에 등장하며, 전한(서한)시대에 가장 융성했다. ‘황로’라는 말은 황제와 노자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지만 황제와 노자는 사실 별 연관성이 없다. 황로라는 말이 문헌상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이며 그 이후 주로 한 대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황로학이 절충적, 혹은 혼합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황로학 계통의 문헌들이 대체로 유가, 도가, 법가 등이 섞여서 잡가적인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한시대에 유행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시황에 중원을 통일하고 법가로 통일하면서 엄격한 법의 시행에 피곤함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숨통을 틔게 해주는 역할을 황로학이 하지 않았을까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황로학의 경향은 이미 전국시대 후기, 제나라의 직하학궁 등을 통해서 통합적인 사상을 만들어 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천지>, <천도>, <천운>, <천하>의 천(天)시리즈라던가, 무위(無爲)의 치(治)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무군파와 다르게 볼 수 있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그다지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황로학파의 글들은 天地運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노자적이며, 무위지치를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가와 법가적 경향을 합쳐서 확대된 논의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혼합주의’라는 표현 자체가 일관성을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이 편들을 보면서 정합적으로 풀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고 드러나는 문제들 중 하나를 잡고 질문하는 방식이 좋겠다.

 

예를 들면 유가와 법가의 합치는 가능한가?

이래도 연결이 되고, 저렇게 해도 연결이 되니,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무위의 치는 가능할까?

자연스러운 통치, 공학적이지 않은 통치가 현실에서 가능한가? 유가는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모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가는 법이라는 객관적인 틀을 가지고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이 없이 자연스럽게 정치하면 좋은 정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治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미나 중에는 이 정도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 것 같다. 

 

<천지>, <천도>, <천운>, <천하> 편에서 보여지는 天에 대한 생각들은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 안동림선생은 天을 모두 '자연(自然)'이라고 번역하셨다. - 그러나 이들은 내편에서 볼 수없는 자연의 어떤 흐름, 질서 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수징난 등은 이후 성리학의 발생에 있어서 이치(理)가 이미 장자에 등장한다고 했다.  '자연'에 따라 산다는 말도 너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서 天과 治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혹은 장자에 治가 과연 있는지 잘 모르겠다.  

댓글 4
  • 2019-08-14 12:11

    무위(無爲)의 치(治)와 치(治)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治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 공동체 생활을 무시한다거나 극도의 이기주의를 표상하지는 않을테니까요.
    언어적 표현으로는 治를 포기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3종지의 앎을 가지게 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3종지에서는 어떤 인위도 없고, 무위로서 살아가겠지만 우리는 거의 1종지 상태에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
    무위(無爲)의 치(治)를 2종지, 적합한 관념으로 본다면 근본적으로 무위(無爲)의 치(治)는 治 자체의 포기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 2019-08-14 14:02

    황로학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반드시 짚어야 할 듯 합니다. 그 맥락 속에서만이 왜 천도편은 무위의 치를 이런 식으로 말했는가, 천지편은 어떠한가? 뒤의 편들은 또 어떠한가를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에게 있어 무위의 치란 어떠한 형태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겠지요.

  • 2019-08-15 07:56

    요즘 계속 댓글 달고 있는 뿔옹, 칭찬해요. 늘 꾸준한 우리 반장도 고맙구요. 다른 사람들도 미진한 이야기를 좀 풀어놓으면 좋을 듯~~

  • 2019-08-15 14:28

    황로파의 거창하고 알쏭달쏭한 우주론과 존재론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 운운하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것은 필시 뭔가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로파의 주장은 일종의 통치술, 정치술입니다.
    도가, 유가, 법가, 묵가의 온갖 좋은 것들을 꼴라주 했으나 뭔가 균형과 조화가 이루지지 않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장자의 내편은 치 治에 관한 언급이 없고 심지어 치에 관한 질문을 적극적으로 배척합니다.
    그것은 정치에 무관심해서라기보다는 모든 정치의 출발이 우선 '나'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각성과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형식과 명분에 치우쳐 소외되는 개인이 각성되길 촉구합니다.
    여기에서 출발해 안명과 소요로 개인의 자발성과 존엄성을 주장합니다.
    그다음은... ? 내편에는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나 봅니다.^^

    그런데 황로파는 장자가 그렇게 비판했던 형식과 명분 그리고 서열과 계층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통합과 융합도 안밖 전후 맥락이 연결되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문탁샘과 진달래샘의 보충설명으로 그 시대적 역사적 맥락을 조금 알고 나니 그럴수도 있었겠구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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