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않고 행한다는 것...

오영
2019-11-2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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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장자 26편 <외물>에서 29편 <도척>까지 읽었습니다. 

잡편은 후한 시대의 자료라서 유가와 뒤섞인 혼합주의적 면모가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헷갈리는 지점이 많이 있습니다.

내편의 변주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잘보라는 문탁샘의 당부가 있으셨지만 집중력있게 읽고 세밀하게 질문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문탁샘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에세이에서도 자기 질문을 예각화하지 못하고 너~무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이야기만 하고 만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잡편 중 황로파에 해당하는 응제왕, 대종사 와 같은 편들은 군의 통치를 전제로 무위가 가장 이상적인 통치이다라 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와 달리 외편은 원시주의자들, 무군파에 해당하므로 결이 다릅니다. 양주학파는 보신, 전생과 같은 단어들이 의미하듯 '자기배려' '양생'이 키워드입니다. 

발제를 맡아 양생의 키워드로  <양생주>나 <달편>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며 <외물>부터 <도척>까지 꼼꼼하게 읽고 정리하려라는 문탁샘의 당부가 있었으나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외물> 편에서 말하는 외물은 '밖에서 내 몸에 미치는 것'을 통칭합니다. 

저는 이것을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들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자면 정념이 생기는 것은  외부사물과의 마주침 때문이고 인간이 신과 같은 자기원인이 아닌 이상 피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장자가 '양생'의 맥락에서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는 잘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 살려면 지나치게 부, 명예, 지식과 같은 외물에 얽매이지 말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무엇인 중헌지 잘 살펴야 한다는 식의 일반론으로 흘렀지요.

스피노자를 가져와서 장자를 독해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장자가 말하고자 한 장자만의 독특함을 놓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구태여 장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만 하고 만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외물을 좇지 않고 외물과 거리를 둔다는 것, 시비를 넘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장자의 텍스트에서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자가 '치언'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 즉 날마다 생겨난다. 언제나 어디든 있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화이천애'는 비규정적인 것을 뜻한다고  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의 고원>에서 말한 언어가 생각났습니다.

규정된 언어 이전에 잉여가, 무한히 흘러넘치는 소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규정된 언어가 생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장자가 시비를 넘고 외물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과 치언을 연결해보면, 인식의 문제로 풀려는 서양철학과 달리 인식이나 합리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는 게 아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무엇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막막해지곤 합니다.

장자는 외물에 얽매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고도 알고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 한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지 와닿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제 질문이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냐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것 같네요.  ㅋㅋ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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