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클래식 12월] 맹자 3강 후기

토용
2020-12-17 00:46
406

맹자는 공유지의 사상가

 

 

『맹자』에는 인상 깊은 문장들이 많다. 그 중 맹자가 왕도(王道)를 언급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습니다.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습니다. 도끼와 자귀를 가지고 제철에만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습니다.”

 

3년 전 『맹자』를 공부할 때는 맹자의 현란한 말솜씨에 넋을 놓고 읽느라(특히 양혜왕편은 더 그렇다) 이 문장이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반박할 여지없이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닌가?

그런데 문탁 선생님은 여기에 나오는 웅덩이, 연못, 산림을 공유지로, 이루 다 먹을 수 없고, 쓸 수 없음을 공유지의 무한성으로 정의하신다. 공유지는 함께 잘 보살피기만 하면 우리 삶에 무진장한 혜택을 주기 때문에 공유지의 삶을 훼손하지 않는 것에서 정치는 출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양생상사(養生喪事) 즉 살아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데 후회가 없도록 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정전제(井田制)가 있다. 사전(私田)과 공전(公田)을 적절히 분배하고, 함께 공전을 가꾸며 서로 돌보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왕도이자 인정(仁政)이다.

보통 맹자의 정치를 민본주의, 여민동락의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공유지의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맹자를 공유지의 사상가로 정의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사(士)의 탄생

 

춘추시대, 그 혼란스러운 시대에 士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한다. 사는 원래 하급관료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일정한 직업이나 생업이 없는 ‘백수’였다. 당대의 사람들도 이들의 정체성을 궁금해 했는데, 사의 대표주자 공자는 스스로 ‘호학자’라 자임한다.

사들은 세상을 근심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간다. 공자는 천하에 도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사줄 사람을(예로써 등용하는 사람을) 기다렸다. 자로는 벼슬하는 것을 의를 행하는 것이라 했고, 증자는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들은 언제 나아가고 언제 머무를 것인가. 공자는 세상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고(出) 없으면 머문다(處)고 하였다. 맹자는 천하에 도가 없을 때는 죽음으로 도를 사수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에 대해 생각할 만한 인물들은? 논란이 분분한 백이와 맹자의 롤모델 이윤이 있다. 그리고 공자. 맹자는 공자에 대해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나고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며, 은둔할 만하면 은둔하고 벼슬할 만하면 벼슬한 분’이라고 했다.

 

문탁 선생님은 강의가 끝날 무렵 이런 질문을 하셨다. 도가 없는 세상에서는 벼슬하지 말고 도가 있는 세상에서 벼슬하라는 말이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고.

당연히 이상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마지막 강의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댓글 6
  • 2020-12-18 11:46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공부의 가장 큰 화두는 정치적 실천과 윤리적 실천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입니다. 80년대의 운동권, 혁명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도 내놓겠다던 그 청년들은 왜 ‘자기구원’이라는 문제계가 없었을까? 뭐 이런 거?

    그래서일까요? 저에게는 <논어>나 <맹자>가 지당하신 말씀을 늘어놓은 텍스트가 아니라 士계급(지식인)의 출처와 관련된 텍스트로 다가옵니다. 흔들리는 공자와 맹자 속에서^^ 그들의 고뇌가 매우 생생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ㅋ

    강의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더 이상 세습 전문 관료가 아니게 된 사계급, 2500년 전의 백수들. 그들은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했고 인간다움에 기초한(혹은 인간다움을 보살피는) 정치를 꿈꿨습니다. 가장 윤리적인 실천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천이 된다고, 혹은 그 반대로 급진적인 정치적 실천이야말로 가장 윤리적 태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의 고민은 처음에는 아주 상식적이고 초보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천하유도즉현, 천하무도즉은” 음, 천하에 도가 있다면, 즉 치국지도가 있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는 것이고 (이게 요순시대 아닌가요?) 그렇다면 왜 굳이 정치를 해야 하지? 지식인이라면 천하에 도가 없을 때, 다시 도를 세우기 위해 출사하는 거 아냐? 뭐 이 정도? 그리고 공자도 맹자도 자신들의 시대가 난세라고 말하면서도 또 계속 출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아냐? 그러면서 왜 천하유도즉현, 천하무도즉은...이러면 모순 아냐? 실제 이들의 고민은 천하무도일 때의 현과 은 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하무도라는 것은 이미 어떤 군주도 요,순이 아니라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그들은 숨지 않고 세상에 나아가고자 합니다. 왜냐? 천하가 무도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으니까요? 그리고 차마 그것을 외면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생각은 늘 지금 여기의 정치적/윤리적 실천과 연결됩니다. 지식인의 현실참여란 무엇일까? 박정희 때 출사한 지식인들은 다 어용지식인인가? 그런데 유시민은 문재인 정부 이후 스스로 “어용지식인”을 자처하지 않았나? 혹은 6411번 버스의 여성노동자 삶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 (불인인지심 혹은 측은지심 혹은 공감 혹은 先憂後樂의 자세^^)으로 출사했던 노회찬 전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치자금을 받았을까? 불가피했을까? 아니면 ... 나아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저한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혹은 지금 문탁네트워크에 모여 있는 우리는 출사한 겁니까? 아닙니까? 하하....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은 무도한 세상에서 어떻게 정치적/윤리적 실천을 이어갔을까요? 정몽주의 길, 이성계의 길, 정도전의 길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더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공자는 무도한 세상에서 출사하지 않고 수양산으로 숨어버린 ‘백이’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면서요. 그런데 (역시 강의에서도 말한 것처럼) 백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맹자도 사마천도 한유도 연암도 (기타 등등 많은 사람들이) 계속 백이를 평가하고 해석합니다. 백이야 말로 사대부들의 처신 - 경도와 권도, 명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끝없이 다시 읽히고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사대부 출처의 아이콘이죠.

    공자는 자기를 팔려고 했지만 사실 팔리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어땠을까요? 저는 맹자가 공자보다 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식인들이 엄청 팔렸던 시대니까) 맹자 역시 당대가 무도하다고 그렇게 주장하면서 동시에 당대의 군주에게 발탁되어 그 군주를 가르치면서 그 군주와 파트너쉽을 형성해서 왕도정치를 펴고자 했습니다. 마치 탕임금과 이윤의 관계를 리바이블 시키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탕임금은 현군이어서 이윤을 발탁한 것일까요? 아니면 이윤 때문에 현군이 된 것일까요? 양혜왕과 제선왕은 탕임금과 같아질 수 있을까요? 아닐까요? 어쩌면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맹자는 공자가 그렇게 높이 평가한 백이를, 성인이지만 협애한 성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 협애한 성인....이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 같은 거 아닙니까? 맹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지요.)

    하지만 낼 강의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하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성/심/운명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너~~ 무 많아서. ㅋ

    • 2020-12-18 11:47

      제가 후기를 너무 허술하게 썼나봐요. ㅋ
      보충강의를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2020-12-18 11:47

    빵 터졌습니다.
    긴이야기의 끝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네요!
    전 전주에서 인문학 공간을 운영하면서 여기저기 프로젝트를 내고 50페이지 가까운 회계정리를 하면서 지자체에 빌붙어 살아보고자 애쓰고 있어요. 사실 도는 멀고 제가 공부한거 떠들고 싶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운영하는 사람과 지향이 다른 것 같지만 맞춰보지 않아요. 그럼 저희 공간운영자는 한명만 남아야 하거든요. 10명도 넘는 분들이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떠났거든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출사라고 한다면, 지자체 공간에 세들어 있으면서 달마다 회비는 딱박딱박 받는 '♡☆'......(차마 쓸수가 없어서ㅎㅎㅎ)
    그래서 문탁은 제가 도와 너무 멀리 가지 않게하는 기준입니다. 언제나 그리워요.
    토용샘 보고싶네요. 목소리를 듣는 듯 합니다.

    • 2020-12-18 11:48

      저두 보고싶어요. 풍경샘의 넉넉학 품이 ㅎㅎㅎ
      코로나로 바뀐 세상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네요.
      이렇게 강의를 같이 듣고 얘기도 할 수 있어서요.

  • 2020-12-20 22:58

    호연지기를 생각하면 맹자는 백이를 협애한 성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태백처럼 멀리멀리 떠나서 오나라를 세운 정도가 되면 협애를 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명분론과 현실론의 더 절절한 事는 병자호란 때의 김상헌과 최명길이죠
    정몽주의 길, 이성계의 길, 정도전의 길을 생각하니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學을 같이 해도 道를 같이 할 수 없으며
    道를 같이 해도 立을 같이 할 수 없으며 立을 같이 해도 權을 같이 할 수 없다. 정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되는.
    隱하면서 출사하는 것은 향악 같은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문탁네트워크도 출사? 출사!!

    • 2020-12-21 15:23

      와...쌤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거군요. 태백정도는 되어야 협애하지 않다!! ㅋㅋㅋㅋㅋㅋ 내 반드시 어딘가에서 써먹어야쥐~~
      맞아요. 유학자들은 명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늘 흔들렸을텐데...그래서 저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탐구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샘, 우리 같이 탐구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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