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58.중택태괘-굿바이, 어리바리주역

기린
2019-10-08 09:19
61

굿바이, 어리바리 주역

 

 태(兌)괘는 8괘중 연못을 뜻하는 태(☱)괘가 겹쳐 있는 상으로 기쁨을 뜻한다. 연못과 연못이 붙어있어 서로 적셔주니 이로움이 불어나게 된다. 또 두 개의 양효가 아래에 있고 한 개의 음효가 위에 있어서 내면에서 점차 차오른 기쁨이 밖으로 드러난 상이다. 상전에서는 “군자가 보고서 붕우들과 강습한다.” 고 풀었다. 나와 벗이 함께 배우기를 거듭하는 동안 서로 충만해진 기쁨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남이다. 이 때 함께 배우기를 거듭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문탁에 와서 고전공부를 접하면서 이문서당에서 고전 원문을 읽기 시작했다. 원문을 읽는 소리가 리드미컬한 우응순샘의 매력은 첫 시간의 긴장감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어렵기 마련인 원문을 최대한 쉬우면서도 일상과 연결시켜주는 친절한 우샘의 강의는 싫증이 나지 않는 매력이 있다. 그러니 한결같은 배움을 베풀어주시는 스승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공간을 청소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공동체 식탁의 밥당번을 하는 등의 의례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례를 통해 공간을 함께 꾸려가는 감각을 익힐 수 있다. 또 소풍을 함께 가고 축제에서 그 해에 배운 내용으로 콩트를 공연하기도 했다. 손품을 모아 만두를 만들어 문탁의 회원들에게 팔기도 했다. 텍스트만 읽는 사이가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공유하면서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더 풍성하게 경험도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지고 시간이 쌓이면 배움이 ‘저절로’ 드러나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서당 공부를 어떻게 드러낼까를 고민하던 끝에 글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해마다 바뀐 텍스트가 마침 『주역』이어서 문탁에서 고전공부를 하는 동학들이 주축으로 꾸린 고전공방팀에서 64괘로 괘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리바리주역’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수준을 드러냈다. 64괘의 첫 괘인 건(乾)괘로 쓴 글을 홈피에 올린 날은 2018년 5월 17일이었다. 한 사람씩 차례를 정해 한 괘씩 맡아서 썼는데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뭘 써야할지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난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터라 꾸역꾸역 쓰면서 내 차례를 넘겼다.

 

 그렇게 2018년이 끝났을 때 괘에 대한 좀 더 완성된 글을 쓰자면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와중에 나는 괴발개발 쓰더라도 64괘 끝까지 써보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2019년에 들어서서 나와 의견이 같았던 친구와 함께 같이 괘 글쓰기를 할 다른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이문서당에서 네 사람이 더 합류해서 괘 글쓰기를 계속 이어갔다.

 

 2018년의 경험을 거울삼아 좀 더 완성된 글을 올리자는 뜻으로 초고를 쓰고 수정고까지 피드백 하는 과정을 빠짐없이 거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에 없던 일정이 끼어들면 그 과정을 거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또 서로의 글을 피드백 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괘 글쓰기를 끝까지 하겠다는 인원이 줄기에 이르렀다.

 

 64괘 끝까지 써보겠다는 마음을 냈을 때는 하다보면 좀 더 알게 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괘에 대한 이해는 기대만큼 깊어지지 못한 채 차례가 돌아오면 꾸역꾸역 쓰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글을 쓰고 친구들과 합평을 거치면서 더 모르겠는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 혼란은 글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으니 함께 읽고 쓰는 친구들의 고충도 깊어졌다. 그럼에도 남은 네 사람은 끝까지 쓰자는 데는 흔들림이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배운 것을 ‘저절로’ 드러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자는 글쓰기의 의도는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 기쁨이기는커녕 터지기 직전의 지뢰를 넘겨받는 고역 같기도 했다. 그러나 괴발개발 써 가면 어떻게든 내용에 도움을 주려는 친구들이 있어 겨우 터뜨리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넘기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이제 ‘어리바리주역’ 글쓰기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쨌든 아는 만큼 쓸 수밖에 없는 어리바리함으로 무모하게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끝’을 기다리자니, 저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하는 기쁨 또한 어쩔 수 없다. 아, 내 차례는 끝났구나! 어쩌면 친구와 함께 배움에서 얻는 태괘의 기쁨은 ‘끝’이 주는 후련함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그 후련함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또 무모하게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끝’이 라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쉬지 않음? 이것이 바로 자강불식(自彊不息)? 이렇게 건(乾)괘를 다시 만났다. 또 시작할 수 있겠지? ㅋ

댓글 2
  • 2019-10-11 18:11

    짝짝짝!!

  • 2019-10-13 17:41

    어리버리 주역 글쓰기 :풍수환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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