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49 택화혁> 후회의 도와 혁면

자누리
2019-08-05 23:46
685

택화혁괘 ䷰

1. 변혁에는 후회가 따라 다닌다

주역 49번째 괘는 변혁의 괘이다. 변혁을 생각하면 가깝게는 촛불혁명이나 멀게는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하나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 역성혁명 같은 정치적 혁명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프로-혁명가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던 20대 이후로 변혁은 새 시대의 싱그러움으로 가슴이 뛰는 장밋빛 이미지였다. 그런데 혁괘의 괘사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가 지나야 믿으리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워서 후회가 없다(革 已日乃孚 元亨利貞 悔亡)” 하루가 지나야 믿는다는 것은 변혁에 사람들이 동의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니 이해가 되지만 그 후회가 없다고 하는 부분이 뜻밖으로 여겨졌다. 물론 변혁이 그 만큼 어렵다는 뜻이려니 하다가도 ‘저 장밋빛 이미지는 어디에서 찾아야 돼?’라는 의문이 들었다. 정이천은 혁괘에는 ‘후회의 도’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올바르게 해야 간신히 후회를 면한다고 말한다. 뒤집으면 후회하기 쉽다는 말이다.

괘의 상은 물과 불로 구성된다. 재미있는 것은 혁괘를 뒤집으면 어긋난다는 의미의 규괘이다. 불이 물 위에 있으면 물 따로 불 따로 논다는 것이다. 반대로 불이 아래에서 위로 가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가려고 하는 혁괘에서는 서로 만난다. 그 둘의 상반된 성질로 만나니 서로 끝장내고 새로움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만나고 부딪히는 상황이라면 장밋빛 이미지를 버려야 될 것 같기는 하다. 그 새로움은 이전의 것을 완전 단절하고 오는 그런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변혁은 단절과 동시에 연속성을 내포한다. 그것은 한 순간의 단절이기보다는 이행의 연속이고, 머뭇거림과 후회까지 내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미지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혁괘의 괘사에서 ‘후회 없음’으로 ‘후회’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이렇게 생각이 바뀌어갔다. 변혁이란 ‘후회’의 작은 소란스러움에서 시작해서 다시 그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기존 것에 대한 후회가 없으면 바꾸려 하지 않을 테지만, 바꾸는 과정에서나 그 후에도 ‘괜히 했어’라는 후회의 끈이 길면 되돌아가려는 반혁명의 경향도 강할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그 후회의 끈을 너무 팽팽하게 당겨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안된다는 메시지이다. 오히려 적당히 놓아 주는 것이 갈무리를 잘하는 것이다. 이것은 혁괘의 완성을 말하는 상구효의 이야기이다.

2. 변혁에는 표변과 혁면이 공존한다

변혁의 결과는 어떠한가 하면, 군자는 표변(豹變), 범처럼 전신을 바꾸고, 소인은 혁면(革面), 얼굴만 바꾼다. 즉 변혁에서  혁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모두가 군자처럼 변혁할 수는 없다. 물론 얼굴만 바꾼 그 소인은 언제든 반혁명의 불씨가 될 수 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그 소인을 모두 군자로 만들겠다고 하면 저 유명한 중국의 문화혁명같은 혁명의 강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나는 표변이 되겠다고 다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혁면의 주인공인 소인이 될 공산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혁면의 불가피성에서 나아가 표변에게는 혁면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문탁에서는 10년 동안 수시로 공간이면 공간, 공부면 공부, 활동이면 활동을 바꿔왔다. 그러는 중에 몇 가지 공통개념들을 정립하기도 했다. 공유지, 삶-정치, 마을경제와 같은 개념들이 있다. ‘삶-정치’는 규모와 무관하게 인간들의 삶의 장소가 정치의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공유지’는 근대성이 잃어버린 ‘같이 살기’의 장소이자 개념 자체이고, 마을경제는 자본주의, 또는 근대성과는 다른 삶의 양식이다. 이런 개념들의 정립과 함께 문탁은 나름 특이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와 이행의 과정은 어떤 소란스러움과 후회로 시작된다. 그것은 변혁의 예시이고 작은 균열이다. 나는 얼핏 혁괘에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그 작은 균열에 대한 어떤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올 초에 공모사업이라는 정부차원의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간 우리는 외부 지원 없이 자력갱생한다는 자립의 원칙이 공통개념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수작> 글 시리즈인 <얄팍한 화장품 상식> 첫 번째 글에서 썼었다. 그런데 그 글이 지금은 없다. 내가 지웠기 때문이다. 공모사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급작스런 제안을 받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간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길드다>에서 공모사업을 하긴 했어도 문탁 차원에서는 동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이미 제안하고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고, 당혹스러웠다. 이 문제는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층위의 논점이 있다. 우리가 그동안 원칙을 지켜오느라고 얼마나 애썼느냐는 주장 대 먹고 살지 못하는 현실에서 타당치 못하다는 반론, 그 원칙이 개인적 차원의 일은 아니지 않냐는 주장 대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적 차원이 그렇게 나뉘냐는 반론 등등. 나는 처음에는 몹시 당황하고 화가 났었는데 어떤 주장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문제는 토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왜 그 일에 그렇게 당황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알아낸 원인은 그 <수작 글>이었다. 내가 친구들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니 섭섭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외부 지원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쓴 그 <수작글> 앞에서 내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한 것이었다. 그 글이 내 발목을 붙잡고  필요 이상으로 나를 경직되게 했다. 내 화는 항의성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고 나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냐고, 내 행동에 또 당혹스러워 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 당혹의 연속이었다. 어쨌든 이미 말과 글이 신뢰가 되고 우정이 된다고 배워온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글을 지우므로써 나는 유연성을 얻었다. 이제 토론할 수 있고, 경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어쩌면 변혁의 시작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당혹과 후회와 혁면이 될 것 같은 쪼잔한 감정 속에서 말이다.

3. 이행은 중론을 모으는 일이다

이 일은 나를 많이 돌아보게 했다. 문탁이 10여년이 되면서 여러 우려가 있다. 아마 경직되지 않을까, 그 결과 이견들에 대해 쫙쫙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하고 상처를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반대의 생각도 든다. 수시로 만들었다 해체하고를 반복하면서 쌓아온 내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주역에서 변혁은 이행의 과정이다. 이상적으로 변혁을 끌어갈 수 있는 육이효에서는 “하루 온종일이 지나야 변혁할 수 있다(六二 已日乃革之 征吉无咎)”고 하여 때를 잘 맞추기 위해 애쓰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혁괘에서 변혁의 이상적인 표상은 호랑이와 표범이다. 주자처럼 털갈이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동물들의 털갈이는 자연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지혜이다. 인간의 시간에서는 털갈이 할 시간을 어떻게 표상할까? 구삼효는 진취적으로 변혁을 주도할 의지가 있는 자리인데 이렇게 당부한다. “변혁한다는 말이 세 번 모이면 믿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중론을 모으고, 그 중론이 모이는 시간이 바로 인간의 털갈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중론을 모으는 일에 돌입하면 된다. 변혁의 때에는 어차피 말이 많아진다. 이미 다 헤진 일들에 대한 불만에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말들이 오갈 것이다. 그런데 그 말들을 세 번 모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들은 갈 곳이 있어야 모인다. 나는 문탁이 십여년 동안 길러온 내공이 바로 그 경청하는 기풍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응대하고 친구들의 판단을 믿어준 그 시간들이 쌓여 있다. 내가 혁면이라면 친구들은 표변이다. 그 기풍에 기대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단지 글 하나였다. 더 많이 고착된 것들이 내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후회가 변혁의 시작이고, 혁면이 표변에게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경험들이 기풍으로 쌓여가는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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