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교-단기세미나]<역사, 눈앞의 현실> 두번째 후기

자작나무
2021-01-18 16:17
465

 

탕누어의 책은 '처음'이 어렵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문체나 사유는 깊어서 그 맛만으로도 사람들을 책속으로 끌고간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처럼 읽기에서 필요한 '문학적 상상력'이 없으면 처음은 아주아주 고되다. 그래서 지난 시간 그렇게 나는 힘들다고 했다.ㅎㅎ

그런데 탕누어의 책은 '처음'만 잘 넘기면, 뒤는 그래도 쉽사리 혹은 줄겁게 읽힌다. 앞에서 밝힌 주제를 문학적으로

깊은 사유로 자알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 나는 재미있었다고 했다.ㅎㅎ 이게 웬 롤러코스트ㅠ

다들 책읽기의 롤러코스트에 같이 탈 수 있기를~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 3장과 4장은 <좌전>에서 '아주 아주 많이' 보이는 '꿈'과 '근친상간'에 관한 이야기다. 

소재로만 보더라도 흥미진진이다. 이른바 '역사'라고 할 때, 점술이니 예언이니 꿈이니 하는 것은 전시대의 미신과 낙후함을 보여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근대사학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탕누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역사에 꿈이나 예언을 썼다고 전근대적이니 비과학적이니 평가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그건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가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 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14)

꿈이나 예언, 그리고 이른바 귀신과 같은 기이한 것들에 관해서 공자는 '말하지 않았다.' 그게 있니 없니 판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것은 불가지의 영역이고 자기가 알 수 없는 바이니 한켠에 놔두고 자기가 아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런 자세는 공자에게만 한정되지 않아서, 탕누어가 <좌전> 속에서 찾은 인물들 가령 정자산이나 숙향, 안영 등등을 통해서 말한다. 사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를 보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만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을 것이다. 또 꿈이나 귀신도 그렇다. 그것들은 "모퉁이만 하나 돌면 또 몰래 귀신 세계와 바로 접할 수 있는"(174) 시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에 굴복해 굿을 하고 점치고 난리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불확실성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고 그것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 가령 가뭄이 든다거나 지진이 나거나 하는 일이 갖는 효력 즉 군중을 동요시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이에 대응해 갔다. 

 

4장에서 탕누어는 하희와 무신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하희는 희대의 팜므파탈처럼 이 남자 저 남자 그 애정사가 다단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얻기 위해 무신은 강철같은 냉철함으로 끝내 그녀를 얻는다. 물론 그 댓가는 나라를 버리고 가문을 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복수로 고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한다. 헐. 이른바 정욕(?)의 승리다. 그런데 이런 무신이 그녀와의 몇 년간의 삶을 보낸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왜? 탕누어는 여기서 정욕과 정감 등등의 문제의식을 끄집어 내어서 설명한다. 

'정욕'은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다. 먼먼~ 옛날 인간의 근친상간은 '생존'이라는 최종목적을 위해서 이뤄졌다. 그런데 이제 조금 먼 옛날이 된 <좌전>에서 정욕은 어떤 식으로든 한계지어진다. 인간은 정욕의 인간human에 정감의 혹은 관계(를 중시하는)의 인간person의 가면을 갖는다(?, 이에 대해서는 공부중). 그래서 무신이 혹은 다른 많은 카사노바들이 집을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어찌보면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최고의 목표였던 시대는 끝나고 인간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부인이자 동생이면 곤란하다. 관계가 꼬이니까. 어쨌든 <좌전> 속 시대는 먼먼옛날과는 달리 정욕과 정감의 비율은 변화가 생겨, 이런 근친상간의 규율이 선다. '가령 '동일한 자궁에서 태어난 남녀의 결합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근친상간을 한 자에 대해서 <좌전>은 "도덕적 질책도 전혀 가하지 않았다."(257) 이에 대한 탕누어의 설명을 보자. 

 

"다만 어떤 혼란이나 어떤 재난의 원인으로 거론할 때만 우리에게 일이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알려 줄뿐이다. 더욱 정확하게 말해서 검토할 것이 있고 질책할 것이 있다 해도 인간의 도덕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지혜롭지 못함과 부당함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즉 근친상간이 인간의 명확한 관계를 어지럽히고, 준수해야 할 안정적인 질서를 파괴하여 재난을 유발한 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257)

 

탕누어는 앞 3장처럼 4장도 '꿈'이나 '정욕' 및 '정감'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탐색을 계속 한다. 그리고 좌전의 세계는 정욕과 생존이 지상과제이니 시절이라기보다 '명확한 관계'로 '안정적 질서'를 따라야 잘 '생존'할 수 있는 그런 세계로의 돌입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세계와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고 <좌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으니, 우리의 세미나 시간을 짧고 우리의 독서깊이는 이렇고 저래서 그가 생각하는 곳까지 혹은 그가 설명해놓은 곳까지 가기가 참 어려웠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그래서 각 장의 뒷부분이 탕누어의 주제이자 결론일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명확히 잘 모르겠다ㅠㅠ 계속 공부할 것이라고 다짐만 쓰고, 후기는 여기까지~

 

 

 

 

댓글 2
  • 2021-01-18 20:45

    "<시경>을 여자가 썼더라도 첩을 들이는 것을 권장하는 구절이 있었을까?"
    이 질문은 1600여 년 전 동진의 재상이었던 사안의 아내 유씨가 한 것이라고 한다.
    좌전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만약 여자들의 입장에서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이번에 하희의 이야기를 읽으며 하희가 어떤 여자였는지보다 하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가 많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신공무신은 참~. 무서운 사람이지 않나요.

  • 2021-01-18 22:34

    탕누어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고전을 가지고 현재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은... 저는 여전히 중국 고전엔 관심이 그닥이지만 탕누어의 생각이 계속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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