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여름특강 시몽동의 개체화이론과 기술철학 3강 후기

가마솥
2021-08-05 16:41
410

    문탁에서 듣는 Off-Line 강의는 한 강의실에서 '인디언'님과 함께 듣지만, Zoom 강의는 각자의 노트북으로 1층 여자, 2층 남자가 따로 듣는다. 두 대의 노트북에서 Zoom 영상이 동시에 작동되지 않고 약간의 시차가 있어서 소리가 메아리되어 강의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1층에는 에어컨이 있다 !”     지난 강의에서 대 여섯명이 함께 소개했으니 누군가(특히 1층 여자) 후기를 쓰겠지 했는데....... 급기야, 1층 여자가 봄날님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과학은 당신이 잘 하지 않느냐’는 근거없는 논리로써 이제 철학 입문자인 내게 후기를 강요한다. 난 이 대목에서 상급자의 갑질을 느낀다. (고발은 절대 아님 !)

 

    사실, 1강에서 향후 이야기를 전개할 때 필요한 많은 개념들이 소개 될 때에는,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인 이야기로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익숙하지 않는 서양문체(?)로 전개되는 서양철학사와는 다르게, 손에 잡힐 듯한 개념들이어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전개체적인 것, 무규정자로 이해하고 있는 아페이론, 에너지의 과포화 상태(포텐셜), 양립불가능성, 그리고 드디어 포텐셜로 가득한 초기의 양립불가능성의 해소 양태로써 시작되어 최초의 긴장들을 해소하고 이 긴장들을 구조의 형태 아래 보존하는 것으로 생성을 정의하고, 개체화로 나아간다. 하지만 개체는 어떤 자기동일성 형태로 단번에 구성되지 않고 끊임없이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일정한 구조화를 지속하며(준안정성), 항구적인 변화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열린체계로써 개체의 외부인 다른 개체, 환경과 끊임없이 관계하기 위하여 상전이, 전개체적 에너지 포텐셜 개념이 등장한다. 물질의 생성에 대한 아리스터텔레스의 형상질료설을 비판하면서 내적공명이라는 개념으로 형태갖추기 과정을 도입하여 물질, 생명, 정신, 사회 등의 개체의 생성에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물질과 생명의 관계는 에너지적 측면에서 그리고 물질의 분자적 ‘조직화’의 측면에서 연속적이고, 개체화의 양상에서는 단절된다. 물질에서 생명으로 이행하면서 (물리화학적) 조직화과정은 보존되지만 개체화과정은 변형을 겪는다. 생명의 개체화는 “물리화학적 개체화 이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에, 그것의 완성 이전에 일어난다”. 그것은 물리적 개체화과정이 “그 안정적 평형에 도달하지 않은 순간에 그것을 중지하면서 그것으로 하여금 단지 반복될 수 있는 완벽한 구조를 되풀이하기 이전에 확장되고 전파될 수 있게 만든다.” 알쏭달쏭? 뭔가 조금 부족하다. 생명적 개체화에 필요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할 듯하다. 유형성숙이 등장한다. 유형성숙(neoteny) - 동물이 어린 상태로 성장을 멈추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생식기능만 작동하여 자손을 번식하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특이성은 문제상황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물질의 개체화에서는 결정에서 특이성은 씨앗으로 단 한 번 주어지지만, 생명체에게 문제상황은 무한할 수 있고 문제들이 나타나는 과정은 특이성들이 증폭되는(amplifiant) 과정이라는 것이다(유형성숙).   생명이 물리적 개체처럼 자신의 에너지적 균형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잠재력을 소모하고 안정화되는 대신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계속 새로운 특이성을 받아들여 이를 증폭하면서 완전한 구조화를 지연시키는 것을 일종의 유형성숙으로 본 것이다.   선생님의 ppt에서 생명적 개체화는 물리적 개체화의 유형성숙, 동물적 개체화는 식물적 개체화의 유형성숙, 식물적 개체화는 화학적 합성체들의 유형성숙, 정신적 개체화는 생명적 개체화의 유형성숙으로 나타난다. 는 내용을 느낌적으로 이해하면서 ‘오호 ! 이제 정신의 개체화(존재화)가 나왔으니, 이제 강의가 끝나겠구나’ 했는데, 그 뒤로 많은 생물학 공부가 이어진다.   통합과 분화, 구조화(원자-분자-세포-조직(Tissue)), 생명체의위상학(막-membrane), 인과성의 회귀, 히드라의 군체, 생식의 종류, 하등생명체, 생식세포, 신경계, 고등생명체, 드디어 ‘인간’을 탄생시킨다.   2강, 마지막 장표를 보자. 분리된 개체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존의 지위를 가지고 성숙하는 존재”이다. 성숙(maturité)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두 극단적 현상의 중심에 있다. 집단적인 것의 탄생은 개체에게 제 2의 탄생이며 의미 창조의 기반이다. 성숙한 개체는 ‘집단적인 것’(le collectif) 안에서 “지금, 여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구현한다.

     이제 지난 강의의 주제인 ‘정신적 개체화’를 시작한다.  눈치챘겠지만, 앞에서 본 물질적 개체화에서 생명적 개체화 과정을 참고하면 큰 줄기는 동일하다. 정신적 개체화는 생명적 개체화의 ‘유형성숙’으로서, ‘지연’으로서 발생하며, 정신은 이미 이루어진 생명현상을 재료로 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기 전의 생명현상에 개입하여 규제를 완화한다. 생명은 계속되는 문제상황(특이성)에 대한 해결(해소)로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절대적 완성이 없는 개체화들의 연속이며 정신적 개체화는 그러한 생명적 문제상황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해결이다. 무엇이 독특한가 ? 전개체적 퍼텐셜은 정념적인(affectif) 양태를 매개로 생명, 정신, 집단에 공통적인 에너지 퍼텐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후의 강의는 정념, 지각, 감정, 행동, 정보적 과정을 통하여 정신적 개체화(주체의 탄생)를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잠깐, 철학책을 읽다가 보면 가끔 드는 생각, 나는 누구 ? 나는 어디 ? 시몽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지 ? 첫 강의 ppt를 다시 열어 보았다. "전개체성이라는 무규정자로부터 출발하여 결정의 형성, 생명체와 그 환경, 정신의 활동, 집단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연속과 불연속을 결합하는 존재자들의 탄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정신의 탄생을 항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들 잘 따라가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

 

그나저나, 1층 여자는 나에게 후기를 쓰라고 숙제를 주고는 올림픽 여자배구가 터키를 극적으로 이기는 장면을 선수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응원을 하면서 보고 있다. 그 소리를 지각하고 있는 나의 정념이 부글부글 포화상태에 이르러 감정이 행동으로 옮겨 지기 전에, 어서 어서 후기를 마치자.

 

댓글 4
  • 2021-08-05 18:33

    아.. 지금까지의 강의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으셨네요. 언제나 재미있고 유익하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가마솥샘의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굉장히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어.. 그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깨버리네...) 또 굉장히 익숙한 것 같은(어..그래.. 다 맞는 말 같아....) 시몽동의 사유가 놀랍고 신기하고 그렇습니다. 

  • 2021-08-05 19:39

    2층 높은 곳에서 강의를 들으셔서 높게 이해하셨나 봅니다 분명 같은 강의였을 터, 저는 20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들었음에도 후기를 읽고서야 '아 그런 말이 있었지.' 하며 휘발해 버리는 맞장구만 치고 있습니다 사람내 나는 문탁 궁금하기도 부럽기도 합니다 오늘은 직강은 어렵겠고 낼 되감기해가며 들어볼 참입니다 

    -심옹동-

  • 2021-08-07 07:58

    와~ 오늘에야 차분하게 가마솥님 후기를 읽었습니다. 대단하세요. 저는 가마솥님께 후기를 양보한(?) 1층 여자를 칭찬하고 싶네요.ㅋㅋㅋ

    시몽동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몽동의 철학이 전통적 존재론의 대상인 개체가 아니라 개체화를 다룬다고 했을 때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가마솥님의 후기를 읽으며 지난 강의를 복기해보니 개체화이론을 세운다는 게 얼마나 야심찬 시도인지... 새삼 깜짝놀라게 됩니다.

    시몽동은 개체화를 물리적 개체화, 생명체의 개체화, 정신적 개체화, 기술적 개체화 네 범주로 이야기하는데

    그 각각을 생성철학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또 각각을 일이관지해서 하나의 존재론으로 꿰어야 한다니!! 

    서양철학사 전체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 더하여 나오는 이야기들은 지구물리학인가 하면 생물학이고,

    생물학인가 하면 심리학이고, 심리학인가 하면 기술학인데, 베르그손도 알아야하고 메를로뽕띠도 알아야 하고.. 으악!!.

    게다가 지난번에 자누리샘이 질문한 중추신경계와 산만신경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시몽동 이후의 과학적인 발견과 새로운 해석도 보충되고 수정되는 존재론이어야 할테니, 과제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아무튼 시몽동의 존재론은 개별과학이 아니라 융합의 관점에 철저해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게 철학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뜬금없지만^^ 정희진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융합에 대한 글을 찬찬이 챙겨보고 싶어지더라고요.)

    • 2021-08-07 14:35

      인터넷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나름의 세상보기가 된지 쫌 되었습니다.    특히 한겨레 오피니언, 칼럼..등으로.........

      "정희진의 융합 " 컬럼도 재마았게 읽어 보는 글입니다. 

      올해 봄쯤인가, 혼자서 할수 있는 유일한 인생사는 공부 뿐이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ㅎㅎ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87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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