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클래식-숫타니파타 2회차 후기

봉옥이
2021-05-19 21:22
410

오늘은 불기2565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2년전 같으면 종이 연꽃잎 말아 연등 만들어 달고 불기 닦고 관욕불 꽃꽂이에 떡과 과일 준비 하고 비빔밥 준비와

봉축 법요식 리허설과 몇백개 되는 방석 털기... 축제 준비에 들떠 있을 터이다.

이맘때는 붉디붉은 모란이 절 마당에 피어있기도 하다.

마음이 들뜨는 것은 아마도 모든 종교와 철학적 학습에서도 경계하는 일일 터이지만 어쩌랴~

코로나와 온라인으로 재미없는 세상이 되었다.

등 다는 비용도 온라인으로, 등 단 것도 인증처럼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으로 보내주고 봉축 법요식도 온라인으로 참석한다.

 

2강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수행자의 삶) 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가 멋진 말 같았는데 소리(말,언어)라는 것이 엄청 예민하고 무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는 실제 적용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가 훨씬 적합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 비구들의 생활은 걸식(탁발), 분소의(糞掃衣,시체를 싼 옷), 수하좌(樹下座,명상)), 진기약(陳棄藥,보잘것 없는 풀)에

의지하여 생활 하였다.

이중에 걸식은 수행은 혼자서 가는 길이지만 또한 우리의 삶은 마을 공동체와는 분리 할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생존의 절대적인 먹는 것을 얻기 위해 싫은 것, 좋아하는 것의 분별을 내지 않고 주는대로 혹은 주지 않는대로 받는

자기를 내려 놓는 수행의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당시의 출가수행자들은 한군데 머물러 있으면 집착이 생겨 이것을 막기 위해 유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수행처는 마을에서 탁발하기 좋은 그러나 마을 사람, 마을의 일에 번다하게 얽히지 않는 적당한 거리에 두었다.

이것은 재가 수행자들이 법을 들으러 오는 것을 고려 한 것이기도 하다.

유행자 붓다는 깨달음의 설법으로 왕족과 장자들의 시주로 수행생활을 할 수 있는  수행처 가람을 얻게 된다.

가람은 상가(승가)와 다르마(법)의 합성어이다. 지금의 사찰이다.

죽음을 앞둔 붓다의 마지막 유행길.

 '대반열반경' 에는 죽음을 앞둔 노년의 붓다의 마지막 몇개월의 여정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는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의 가르침이 있다.

법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부처님 당시의 보통 사람들의 귀의처는 보통 '베다'의 신들(인도는 신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무쟈게 신이 많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재미 있다. 애니미즘과 토테미즘과 심지어는 멋진 파괴의 신까지 있다. 파괴의 신이 없다면

아마도 창조의 신도 없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거나 길흉화복의 제를 주재하는 있는 사제계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육신은 사라지는 것이니 붓다의 가르침을 귀의처로 삼으라고 하신다.

마치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 처럼. 이것이 복음(福音)인 것 처럼.

붓다의 가르침을 귀의처로 삼는다는 것은 아무리 깨달은 자 붓다가 가르친 것이라 해도 각자 스스로 苦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지

깨달은 후에 따르라고 했다. 심지어 <맛지마 니까야>의 '뗏목의 경' 에서는 강을 건너면 뗏목에 집착하지 말고

버려야 하는 것 처럼 법조차 버리라고 하신다.

이 자등명 법등명은 부처님 열반 하실 때의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계 정 혜 삼학이며 이것은 이미 수행중에 반복하고

반복하셨던 것이고 수행을 통해 주체화 되는 나가 되는 자등명이 되는 것이다.

그 유명한 무소의 뿔 경을 적어 본다.

 

흑단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영웅으로서 재가 생활의 특징들을 없애버리고,

재가 생활의 속박들을 끊고,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만일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새김(sati)을 확립하여 그와 함께 가라.

 

어질고 단호한 동료 수행자,

현명하고 성숙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복을 기린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를 사귀되,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음을 즐기며,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금세공사가 잘 만들어낸

빛나는 한 쌍의 황금 팔찌도

한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것을 보면서,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사교적 모임에 탐닉하는 자는

일시적인 해탈에도 이를 수 없으니

태양의 후예가 한 이 말씀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재산도 곡식도, 친지들도,

모든 욕망의 경계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다. 여기에는 행복이 없다.

이곳에는 만족은 적고 괴로움이 많다.

이것은 낚싯바늘이다' 라고 현자라면 알아,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물에 사는 고기가 그물을 찢는 것처럼,

모든 장애들을 끊어 버리고,

불꽃이 불탄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닦아

적의가 없이 무엇이나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위험을 극복하여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해탈(vimutti)로 이끄는 자애와 연민과

기쁨과 평정을 올바른 때 실천하며

모든 세상으로 부터 방해 받지 않고,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 경을 잘 읽어 보면 고립과 은둔의 생활이 아니다.

열려 있는 공동체에서 잘 살 수 있는 수행적 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살아 있는 존재들이건,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조그맣거나 거대하거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태어난 것이나 태어 날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여라.

 

'자애의 경' 중 일부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한량없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게송이다.

스리랑카 등에서는 수호경으로 애송되는 '자애의 경'은 한량없는 마음, 즉 사무량심(四無量心)수행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사무량심은 마음을 무한히 넓히는 수행이다.

그 네가지는 자애(慈 metta), 연민(悲karuna), 기쁨(喜mudita), 평정(捨upekkha) 이다.

 

그릇된 견해를 따라가지 않고,

계행을 지키고, 통찰을 갖추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arma)을 버리면

결코 다시는 모태에 들지 않는다.

 

'자애의경' 의 마지막 절이다.

탐진치를 버리고 계정혜 삼학으로 모태에 들지 않는 해탈의 경지를 말하는것 같다.

 

댓글 4
  • 2021-05-19 21:55

    와, 봉옥샘!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봉옥샘 후기에서 한 가지만 정정할게요.

    승원의 어원은 sangharama인데요. 상가+라마를 한자어로는 음차하여 승가람마(僧伽藍摩)로 옮겼답니다.

    번역어가 네 글자나 되니, 승가람마를 줄여서 승가람이라고도 하고  가운데 두 글자를 따 와서 가람이라고도 합니다.

    sangha는 길드, 모임, 화합의 뜻이고, rama는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승원(僧園)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승원은 상가라마를 음차(상가)+뜻(정원)으로 조합한 단어가 되겠네요.

    불교교단 혹은 출가자들의 집단을 일컫는 한자어 승가(僧伽)는 상가(sangha)를 음차한 말이고요.

    승가를 줄인 말이 또 승(僧)이니, 승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우리는 지금 스님 개인을 뜻하는 말로도 쓰고 있으니..

    말이란게 번역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미망을 만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 2021-05-20 09:36

    봉옥 보살님의 후기를 읽으니 요요샘 강의시간이 저절로 떠오르네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무엇인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 기대어 생각해본 시간

    오랫만에 경을 읽는 소소한 기쁨도 좋아요

    제대로 읽거나 아니거나 

    그저 그 시간만이라도 차분해지는 내 마음이요 ㅎㅎ

  • 2021-05-21 08:34

    제게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혼자서 가되 함께 사는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삶이 탁발로 자신의 의식주를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맡기되 홀로 수행을 이어간다는 것. 

    자칫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의미를 공지영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혼하고 자기 삶의 찾는다고... 해석할 뻔 했습니다... ㅎㅎ 

  • 2021-05-21 14:58

    아...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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