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클래식 삼국지 1강 후기

봄날
2021-03-06 01:07
530

벌써 재작년의 일이다. 한시 몇 편을 읽고 무모하게 나선 한시기행의 행선지는 삼국지의 무대였던 성도였다. 곳곳에 삼국지가 관광상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유비-관우-장비를 모신 사당이 즐비하고 저자거리에는 장비가 고을백성들과 나누어 먹었다던 육포가 매대를 점령했다. 삼국지는 벌써 30년 전 큰 아이를 임신하고 태교용으로 읽은 것이 고작이고 그것도 이문열책으로 읽었으니, 정사와는 거리가 먼 한낱 지어낸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자작나무 샘의 강의로 삼국지를 다시 만났다. 가녀린 초빈이와 처음 함께 하는 시간!

다행인 건 함께 듣는 친구들이 나 만큼이나 오래 전에 삼국지를 읽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우리들의 수준을 감안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자작샘은 삼국지를 시간/공간을 교차해 입체적으로 불러내 주었다.

삼국지는 후한말 (B.C.200~B.C.100) 약 백년 동안의 전쟁이야기이다. 정사가 아니니 삼국지의 많은 내용이 객관성을 잃고 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혹은 제갈량이지만 싸움의 깜냥이나 시대적 영향력에서는 항우나 유방, 원소나 심지어 조조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왜 변방의 듣보잡 한량이던 유관장이 삼국지의 주인공이 된걸까. 여기에는 원말명초의 시점에 있던 저자(나관중)의 역사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싸움의 능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으로 보면 훨씬 비중이 큰 조조를 천하의 악인으로 그린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유비를 존숭하는 기조를 내내 이끌어간다. 유비는 백성들의 흠모의 대상인 인군으로 받들어진다. 여기에 무력을 앞세우는 패도보다 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왕도가 이상적인 유가의 사상이 중국의 정통성으로 이미 자리매김한 상태에서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갈 이들 의리파에 '과한 조명'이 비춰지는 것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는 진이었지만 단명하고 한나라가 두번째 통일국가로서 전한, 후한을 통털어서 400년동안 이어진다. 그동안 한나라의 문화는 옛것과 새것을 모두 수렴한 섞어짱뽕, 올드뉴 스타일로 정립된다. 한족문화의 정통성은 바로 이같은 혼성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혼성(하이브리드)의 힘은 강하다. 현재까지도 한족, 한자 등의 한(漢)은 중국의 자랑스런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한바탕 한나라 문화/역사공부와 중국지도 그리기까지 했다. 정작 삼국지 내용은 겨우 120권(중) 2권 분량 정도가 나갔단다. 바야흐로 도적의 무리가 날뛰는 국가적 위기에 의리의 돌쇠들이 복숭아 나무 아래 뭉쳤다. 그보다 오늘은 삼국지연의 첫문장이 너무 멋지게 맘에 꽂혔다.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천하는 오랫동안 나뉘어져 있으면 반드시 합쳐지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나뉘어지게 된다."

댓글 2
  • 2021-03-07 15:19

    책을 읽다가,
    "중국 문자가 확장하고 발전해 온 역사에서 한부(漢賦)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휘의 범주를 힘껏 넓히고, 갖은 방법으로 복잡한 외부 세계의 눈부신 풍경을 모두 기록하려 했다.
    그래서 한부는 일종의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띤다.
    최대한 복잡하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요란하게 과시하는 장르이다."
    처음엔 이 내용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한부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겠지요.
    그런데 이번 강의 시간에 한의 문화 특징이 어떠했나 듣고나니 이해가 되었네요^^

  • 2021-03-09 00:24

    삼국지를 읽기 전 한나라에 대한 설명까지 쫙 듣고 나니
    삼국지를 다시 읽으면 느낌이 완전 새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 강의가 더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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