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두번째 강의 후기 : 과거의 역설 - 기억이라는 이름의 과거

영감
2021-02-07 17:02
360
 

질 들뢰즈 : 차이와 반복 2장 대자적 반복

 

응시-수축-기대의 순환 작업을 통해 시간을 일차 종합하는 습관은 현재의 틀 안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이 현재는 시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현재 속의 습관을 포괄하는 시간의 두 번째 수동적 종합이 바로 기억(하고 있는 사물)이다. 기억은 시시각각 수축하여 현재에 편입되어 있는, 과거라는 시간의 종합이자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수축되어 있는 수동적 기억은 아직 경험이 섞이지 않은 ( 써먹지 않은 ) 과거로서, 현재에서 능동적으로 시도하는 기억(하는 행위)과 회상의 조건이 된다. 그것은 잠재화된 형태로 현재에 수축되어 있는 본연의 기억이며 순수 과거이다.

 

과거는 현재에서 분리되지 않고 현재 속에 수축되어 합쳐진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기억이다. 나는 나의 과거가 응축된 기억의 총합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이때 과거는 나 개인의 시간에 그치지 않고 지구 상 생명 탄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명이 기원하고, 복제를 거쳐 진화한 인류의 역사를 순수 과거로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통상적인 과거 개념을 부정하는 역설이 불가피하다.

 

과거의 역설

1. 현재는 계속 움직이며 새로운 현재로 대체되고 있다. 그렇다고 흘러가버린 현재인 과거가 새로운 현재와 분리되지는 않는다. 과거가 된 현재는 새로운 현재와 동 시간적으로 존재한다. 실존하는 시간은 현재 밖에 없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건 과거로 가는 게 아니고 그 잠재적인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실존하는 시간은 현재 밖에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2. 지나간 현재들, 즉 각각의 모든 과거는 현재와 공존한다. 계속 생겨나는 현재는 과거가 되어 현재에 끝없이 수축된다. 그래서 과거는 독자적으로 실존하지 않고 현재와 현재형으로 내內속하고 ( insist), 공共속하고 (consiste) 있다. 同시간적이란 표현은 현재와 과거의 선후先後관계를 부정하므로 과거가 한때 현재였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도 없다.

 

3. 한때 현재를 경험한 과거들은 현재와 공존하지만, 현재였던 적이 없는 본연의 과거가 여기서 상대적으로 시간의 기준을 잡는다. 이 본연의 과거는 현행 회상에서 재현할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4. 베르그손의 원뿔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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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은 현재 ( 원뿔 그림에서 꼭짓점 S)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서 양적인 부피가 커지고 이완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현재로부터의 거리와 수축의 단단함(기억의 구체성)은 반비례한다. 대상에 따라 현재와의 거리에 관계없이 이완되지 않고 있는 충격적인 기억도 있다.

 

원뿔 속에 수축되어 있는 과거는 현재의 일부이다. 그 과거들은 여러 방법으로 현재를 원격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다만 과거를 현재에 소환하는데 선입선출先入先出 같은 질서는 없다. 어느 과거를 어느 수준에서 반복하느냐는 현재의 자유이고 그것이 운명을 결정한다.

 

 


 


qudCkjDmmFKoz6AIXujnUrxKWog© geralt, 출처 Pixabay
 

대학에 들어가니 교양과정부 첫 학기에 철학개론이란 과목이 있었다. 첫 시간 수업 십 분 동안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현재에 '수축'되어있다. 젊은 전임강사는 교탁을 가리키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색즉시공의 역설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 순간 나와 친구는 즉시 일어서서 교실을 나왔다. 있는 것 만 생각해도 벅 찬 삼월 중순의 청춘이었다. 나의 철학 흑역사는 그렇게 수축되어서 오늘날 나의 빈약한 철학적 상상력을 결정하고 있다.

 

만만한 현재가 만능의 시제로 남고 과거의 실체는 기억이라는 기능성 개념으로 치환되었다. 진작 얘기했으면 중학교 때 영어의 불규칙 변화 과거, 과거분사 외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과거의 뜻은 현재에 앞선 때나 그때의 사건들이다.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이라는 게 과거라는 개념의 핵심이다. 들뢰즈는 과거를 계속 인용하면서 현재와 동시점임을 주장하고 있다. 사각형인데 둥글고, 술은 마셨지만 음주는 아니라는 얘기와 같다. 저자가 역설이라고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의 경박한 홑 겹의 사상 지각 능력은 이런 심층적인 ( 그냥 문학적 수사라면 몰라도 ) 논리적 모순에 이미 비등하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다. 여기서 굴복하면 나는 ( 교양을 상실한 ) 그때 교양과정부로 회귀한다. 자구책으로 이 모순을 보완할 가설을 세워본다. 검증이 없는 무책임한 가정들이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현재와 과거를 나눌 수 있는 정의가 없다는 말은 과학적이다. 그렇다고 공간 개념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가깝고 먼 과거의 존재를 무시하고 모두 현재에 수렴시키라는 주문은 과격하다.

 

과거를 현재로부터 분가시키는 절차가 까다롭다고 해서, 과거를 현재네 집에 계속 더부살이시키는 건 본말이 전도되었다. 과거와 관련하여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사정이 있다고 가정하고 알아보았다.

 

시간 이야기가 나오면 (거리나 높이 같은 공간에 비해 ) 아리송해진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시간을 3차원 다음의 4차원 후보로 내세우는 이유를,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한 비겁함으로 의심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통제는 저차원적이다. 차라리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들여다본다.

 

공간에서 직선은 1차원이고 면적은 2차원, 부피가 있는 입체는 3차원이라고 한다. 차원 속의 존재는 서로를 한 차원 낮게 (차원수-1) 인식한다. 사람은 3차원 속의 존재이지만 서로를 2차원인 면으로 본다. 축구공을 3차원 입체로 인지는 하되 공의 뒷면을 보지 못하므로 2차원으로 보는 거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2차원의 존재는 서로를 점으로 인식한다고 볼 수 있다.

 

가설 1: 시간에 관한 한 인간은 시간을 (공간으로 치면 ) 0차원 속의 점으로 인식한다.

0차원은 길이, 면적, 부피가 없는 하나의 점이다. 그 점이 현재다. 계속 과거와 교대하는 현재다. 현재와 분리된 과거라는 또 다른 점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에서 옴짝달싹 못한다. 과거가 있었다는 것과 미래가 올 거라는 걸 대충 알고 있지만 가서 확인해볼 수는 없다.

 

지나간 현재에 일어난 일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며 현재가 기억하고 있다. 들뢰즈 버전으로 얘기하면 지나간 과거가 현재에 차곡차곡 수축되어 있다. 시간에서 현재만 존재하는 이유는 과거를 분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시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설 2: 인간이 시간을 1차원에서 인식하게 되었다면, ( 축하!!!)

공간으로 치면 시간의 선을 이해하고, 선상에서 시간을 하나의 숫자로 지정할 수 있다. - 200 만년, 50 일 따위의 수치로 시점의 좌표를 정확하게 찍고 과거 또는 미래의 그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살면서 일상에 균열이 생길 때 과거의 어느 때를 들러서 가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 놓쳤던 것, 아쉽고 미안한 것도 있다. 이차원에선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과거를 기억할 것 없이 과거로 이동해서 그 과거 시점의 현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타임머신의 딜레마가 떠오른다. 100만 년 전 과거로 이동해서 이미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을 사용하거나 미래에 영향을 미치면 어떡해? 패스!

 

2차원에서 과거와 미래는 단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같은 시점에서 배타적이며 오직 하나인 과거는 땅바닥에 붙어있다. 심심해서 차원을 높여본다.

 

가설 3: 인간이 2차원을 건너뛰고 시간의 3차원에 존재하게 되었다면, ( 헐!!!)

시간으로 입체를 구성할 수 있다. 3차원의 시간을 지정하려면 (공간의 ) 가로 세로 높이 같은 세 개의 수치가 필요하다. 비로소 인간은 시간을 내려다보면서 조감도를 그릴 수도 있다. 별의별 모양의 시간이 만들어지고 거래된다. 부모님 생일 선물로 드럼통 모양의 시간을 사서 택배로 보내드릴 수도 있다. 혹시 아나? 어쩌면 우리가 (아니면 나 혼자) 지금 3차원에 사는 누군가가 던져준 호접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접몽 치고 허접하기는 하다.

 

가설 4: 알고 봤더니 시간은 실체가 없더라.

인간은 자기 공간에서 살아갈 뿐이다. 시간은 인간이 상상에서 만들어 낸 약속이다. 눈에 안 보인다고 입자나 기체를 무시했다가 혼이 난 인간이 지레 겁을 먹고 오버해서 실체도 없는 시간에 지위를 부여했다. 과거의 기억이 있고 현재가 있고 경험에 의한 미래의 예상이 있을 뿐이다. 다시 들뢰즈의 주장과 약간 겹친다.

 


 

과거를 분리하든, 현재에 합치든, 지금의 우리를 과거가 구성하고 있으며 우리 과거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존재하는 기억을 현재에 얼마나 불러낼 수 있냐는 변수이지만.

 

특정한 과거에 집착할 수도 있고, 가까운 과거에 수축된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시간의 원근감에 비례하여 나의 총체적 과거를 끌어다 현재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운명은 선택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 '공소시효' 없는 무한한 책임이 있다. 과거에 의해 보상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한다. 불리한 과거로 인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과거를 부정하고 동시에 자기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기억의 조작과 부정을 거짓말이라고 한다. 거짓말은 지나간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의 과거는 동시대를 사는 남들의 과거에도 분산되어 있다. 거짓말은 남의 삶까지 부정한다. 

 

현재와 과거를 한참 생각하다 보니, 영겁의 시간에서 찰나의 현재를 같이 향유하고 있는 인연들이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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