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실천이성비판>2강 후기

새털
2021-01-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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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할 것인가? 내 거짓말로 누군가에게 해로움이 돌아간다면, 내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도 머뭇거리게 된다. 이러한 갈등상황에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진다고 이수영샘의 1강 강의안에 써 있다.(1강 결석자로 강의 없이 강의안만 읽어봤어요T.T 눈 돌아가네요!!) 이때의 머뭇거림은 우리에게 도덕법칙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도덕법칙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 머뭇거림 속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순간에 우리는 '주체'가 되고 자유를 행사한다. 도덕법칙과 자유, 실천 그리고 주체는 이렇게 묶여진다.

 

2강에서는 고대그리스의 신탁이 예로 나왔다. 오이디푸스신화에서 신탁의 내용은 이러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그러니 어떻게 해라는 내용이 이 신탁에는 빠져 있다. 신탁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는 자식이 태어나자 광야 버리는 실천을 한다. 이때 그는 어떤 판단을 하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주체가 된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듣고 아버지를 죽일까 두려워 집을 떠난다.(이 실천이 결국 신탁을 완성한다) 신탁은 두 사람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각자가 판단하에 자유의지로 어떤 행동을 선택했다.

 

그럼,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인가? 우리가 고등학교때 칸트를 배울 때 동기의 중요성을 배웠다.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동기이지 결과가 아니다. 결과와 무관하게 동기의 선악여부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이때 그 자유의지가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의 수립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실천함으로써 주체가 될 수 있는데, 그때 그 의지의 준칙이 정념에 휩싸여서(원수를 갚겠다! 복수하겠다! 영리를 추구하겠다!) 하면 안 되고, 이성의 도움으로 도덕법칙에 맞게 판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아! 그럼 뭐가 보편적 도덕법칙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디테일한 내용을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은 말해주지 않는다. 반토막난 신탁처럼, 내용 없는 형식의 형태로 반만 들려준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이 형식만 있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채워가야 할 부분이다.

 

이수영샘은 이 형식만 있는 칸트의 정언명령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형식만 있는 정언명령일 때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진다고. 그 내용까지 채워질 때, 광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내용이 궁금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 쌈박하게 구체적으로 콕 찍어서 말해줘야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것이 항상 헷갈린다. 어떨 땐 이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땐 저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헷갈리고 준치을 세우기 힘들었다. 원칙이 없을 때 사람은 참 힘들다.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준칙으로 삼으라 한다. 그러면 좀 덜 헷갈릴까? 결과에 상관 없이, 의지의 준칙에 따라 살아가는 삶! 멋져 보이기도 하고, 아직은 입에 붙지 않는다.

 

진은영의 책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에서는 이 의지의 준칙을 입법성과 위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뭔가 입법한다는 것은 위반한다는 것과 동시적이고, 계속해서 갱신해가는 자기입법성이라고. 도그마가 되지 않는 자기 입법성과 자기윤리는 도달할 수 없는 끊임없는 갱신으로만 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이럴 줄 알았다. 쉬운 건 없다.

 

 

댓글 3
  • 2021-01-18 21:31

    정말로 어렵습니다. 칸트 윤리학의 내용도 알아 듣기가 힘든 가운데, 대략 알아 들은 그것을 '실천'할 것을 생각해 보면, '아 나는 안 할란다' 싶어집니다. ㅎㅎㅎ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이수영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실천의 방향(?)을 알아채는 것이 가장 쉬운 철학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른바 '자유'가 열리는 '갈등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이른바, 내 마음 속에서 울리고 있지만 사실은 객관화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정말이지 바로 그 점이 대단히 불쾌합니다. 이 철학은 '나' 바깥에서 외경의 대상으로 있던 '신'을 주체의 감시자로, '개인'들 각자의 마음 속에 심으려는 철학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의 효과를 생각하면, 아오 진짜... 너무 싫어요. '정언명령'이 울려퍼지는 그곳에서부터 '죄의식'이 함께 생산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철학'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칸트는 안 변한다고 하겠지만) '보편적 입법의 원리'도 변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저는 18세기 프로이센 사회의 '보편'과 1930, 40년대 대숙청기의 소련에서의 '보편'과 오늘날의 '보편'이 같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칸트는 거기에 '내용'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아무 내용이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하고요. 그러니까 '인식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윤리'란 '인식할 필요가 없는 윤리', 어딘가에서 주어진 '보편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윤리'가 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이를테면 니체의 '초인'이 너무 쉽게 '총통'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인식과 일치하는 윤리'가 만들어낸 비극의 원점에 칸트식의 '보편 윤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각 시대는 저마다의 비극의 가지고 있었지만, 20세기의 가장 큰 비극은 '보편의 비극'이었으니까요.

    물론, 제가 칸트 이야기를 잘 안 듣고 혼자 너무 멀리갔다는 생각은 저도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 도덕법칙' 그게 진짜 있다고 하더라도 뽑아버리고, 내 '준칙'만을 갱신해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경험주의자?) 결론은, 어쨌거나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지난 강의가 끝난 다음에도 약 30분 가량 칸트가 미워서 오래간만에, '도덕법칙 다 파괴해버리겠어'라는 마음으로 헤비메탈을 들었다는....후기였습니다. ㅎㅎㅎ
    (마음 속 어딘가에서 '너 그러다 또 머리 빠진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 2021-01-19 21:41

    새털님 후기가 공감도 되고 재밌기도 해요.

    순수이성비판에서 감성의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었는데... 보편적 도덕법칙이라는 형식을 고려해서 내용은 우리가 채우라니... 이게 동양에서는 예법이 아닐까요... 십계명처럼 돌판에 새겨져있지는 않지만, 지키지 않으면 뒷목이 땡기고, 그렇다고 불법도 아니이어서 형벌은 따르지 않는... 형식만 있고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자율적인 예법으로 끝까지 남았으면 좋았으련만!! 예법이 성문화되고 형벌이 따르는 법조항이 되고부터 "사람 잡는 예교"로 갈 수 밖에 없는 수순이 아니었을까...

  • 2021-01-20 21:19

    오성의 개념이 범주로, 선험적 형식으로 주어져 있는 것처럼(인식의 조건)
    실천이성의 입법원리도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
    이렇게 선험적 주체를 내세우는 것이 칸트의 철학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맞나요?^^
    그렇다면 칸트의 선험적 주체는 온통 형식만으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생각해보니 정언명령은 그 말의 일반적인 이미지처럼 어떤 명령적인 지시, 내용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오성이 양이나 인과성이나 관계성 등을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런 범주가 작동된다고 보는 것처럼
    칸트는 실천이성의 보편적 도덕법칙의 형식도 그렇게 (선험적으로) 작동한다고 보는 것 아닐까요?
    연역은 불가능하지만 또렷하게 있는, 인식을 넘어선 곳에서 발현되는 칸트의 자유는 양심 같은 건가?
    (우리는 언제나 양심적이지도 않고, 어떻게 하는게 양심적인 것인지 모를 때도 많지만, 양심이 있다는 건 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달려가 아이를 구하게 되는 측은지심같은 건가?
    (누구나 아이를 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의 내적 고통이 질료적 세계의 정념적 행복이 실현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인지, 자유롭지 않아서 오는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식은 선험적인 오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경험을 통해, 선험적 종합을 통해 내용을 채워나가는데,
    그 도덕법칙의 형식은 언제나 내용없이 텅빈 형식으로만 있는 걸까요?(뭔가 막혀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답답함!! )
    정군님이 말한 내 의지의 준칙을 갱신하며 살겠다는 결심(내용)이 과연 칸트의 도덕법칙(형식)과 대립하는 것일까요?(아닌 것 같아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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