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소.문. 4강 후기] "당신의 소송은 무엇입니까?"

노을
2020-08-28 12:05
400

1.줌 강의 풍경 스케치

 코로나19의 재확산 기세에 부응하여, <프카 수적인 학을 위하여> 강좌를 줌으로 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에는 전혀 없던 생각이었으나, 강의진행 준비팀과 참가자들은 매우 신속하고 유연하게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보기로 결정하고 실행했다. 그저 몇 번의 클릭으로 강사님이 만들어 놓은 방에 접속하자, 반갑고도 익숙한 얼굴들이 노트북을 가득 채웠다. 사실 비디오 기능은 꺼도 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비디오를  끄고 강의를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문탁의 '예의 바른' 친구들은 감히 비디오를 끌 생각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 뿐만 아니라 서로의 배경도 마주하는 낯선 배치에 매우 어색해하면서, 바른 자세로 책상에 얌전히 앉아, 강의를 듣는다.

 화면에 얼굴의 반만 걸친 기린샘, 줄곧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록만 내려다보고 있는 새털샘, 고개를 아주 열심히 큰 폭으로 끄덕거리는 둥글레샘, 선풍기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눈을 가늘게 뜬 씀바귀샘, 잠깐씩 눈을 감아 조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기도 하는 봄날샘, 사진을 붙여놓은 것 마냥 꼼짝도 안하고 열심히 강의를 듣는 정군샘과 르꾸샘.... 사람들 구경도 재미있고, 강의 시간에 비공개로 몰래하는 채팅도 재미있고...여러가지로 흥미진진했다.

 멀리서 왔다갔다 하던 성기현샘은 그 절약된 시간 만큼 많은 질문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밤이 깊을수록 바로 옆에 있는 침대가 자꾸만 나를 끌어당겼다. 처음 예의바르게 곧추 세웠던 척추가 어느틈엔가 삐딱하게 사선이 되어있었다. 음... 그래도, 그리해도 된다는 게 뭐 좀 포근한 느낌이랄까.

 

2.강의내용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

 1)  "권력에 대한 욕망은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이 바로 욕망이다 "

  (카프카 소설 속) 모든 인물은  '항'으로써, 항들의 연속체인 계열을 구성한다. 각 항들은 절대적 의미가 아니라 계열의 배치 속에서 부여된 위치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 속에서 만약 누군가가 권력을 욕망한다면, 그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에 대한"이라는 관념은, 마치 그것이 지금 없기에, 결여되었기에 갈급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욕망은 어떤 주체 속에서 결핍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 그 자체의 내재적 힘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에 대한" 욕망처럼 보이는 것은 욕망 그 자체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권력이 욕망으로써 작동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권력에 대해 갖는 욕망이란 기계적 배치 속의 톱니바퀴와 부품에 대해 '매혹'된 것이고, 그 톱니바퀴와 부품이 되도록 스스로를 작동시켜보고 싶은 욕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배치 속에서 다른 접속구를 만나면 또 다른 계열로 언제든지 이탈한다.

<<성>>의 처음부분에서 성을 향해 가던 K는 마치 위계화된 구조 속에서 수평적 권력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위가 아니라 옆 쪽으로 사방으로 열린 선분을 그리며 돌아다닌다. 사실 성은 어디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가 만나는 모든 마을 사람들 각각이 성을 이루는 톱니바퀴이자 부품이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K가 취하는 태도와 욕망은 달라진다. 욕망은 언제나 다의적!!

 

 2) "비판은 전혀 쓸모가 없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실재적인 잠재적 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카프카는 자신을 혁명가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문학적인 표현기계의 톱니바퀴이자 기계공으로써, 작품 속에서 잠재적인 모든 계열의 선분들을, 그 선분들의 생산성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주인공으로 하여금 주파하도록 만든다. 그는 욕망기계인 시스템 전체를 보여주기위해 기계를 아주 빠르게 주파한다. 여기서  '잠재적인'이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재적인' 것이다. 이는 지난 3강에서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다루며 이야기했던 '도주선'과 연결된다. 카프카는 글쓰기로 도주한다. 그것은 도망이나 도피처가 결코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현실정치의 구체적인 문제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그의 도주선은 현실의 모든 정치와 경제, 사법과 제도를 끌어당기고 가속화하여 아직 잠재적인 것들을 예언한다.  

<<실종자>>와 같은 소설 속에서는 아직 오지는 않았으나 이미 '문을 두드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학기계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닌, 시대를 앞질러가는 시계가 되어야 하며, 억압하고 억압받는 자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욕망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그것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거나 막아내거나 싸울 수 있는 무기로 작동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카는 철저하게 홀로 살아간 '독신기계'이지만, 자기방에 처박힌 그 '독신기계'는 사실상 세계를 대면하고 아직 그 조건들이 현실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소수적인 문학은 재현이 아닌 예언이고, 사회와 연결되지 않은 개인적인 문제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내보여주는 그런 상태의 표현기계다. 강도량이 가장 높은 욕망은 고독을 바라는 동시에 모든 욕망 기계들과 접속되기를 원한다.  

 

3. 성기현 샘

 문탁에서 3번째로 들뢰즈를 강의하시는데, 나는 첫 번째 강의를 듣지 못했었다. 밤에는 쉬어야지 강의는 무슨 강의. 강의는 늘 들을 때는 아는 것 같지만 끝나고 나면 무얼 들었는지 남는게 없어... 그러면서. 그런데 친구들 왈~ "너무 잘생긴 선생님이 강의도 너무 잘하신다"고 하는 거다. "으응? 공부도 잘하는 사람이, 잘생겼다고?" 그 "잘생겼다는" 강사를 만나보겠다는 욕망이 지난 번 <앙띠 오이디푸스> 강의를 듣게 했다. 성기현샘은....소문처럼.... 잘생겼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또 막 그렇게 잘생긴건 아닌데... 왜 보면 볼수록 자꾸만 더 잘생겨보이는 걸까? 

강의를 할 때 이 분은 막 근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꽤 겸손하지도 않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되 그렇지만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자신있게 펼친다.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듯 하다가, "제 친구 얘긴데요..."라면서 현실의 리얼한 이야기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나는 강의를 듣는 내내 또 언제 성기현샘이 친구이야기를 해주려나... 계속 기다리게 된다. 강의가 끝나면 강의내용을 복습하는 대신에 샘이 언급한 음악을 찾아 들으며, 내 친구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게 진짜 중요한건데, 성기현샘이 강의하는 내내 샘의 눈이 계속 아주 사알짝 웃고 있다. 아마도 들뢰즈에 대해서 더불어 카프카...라는 문학기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우신 듯하다. 아마 그래서... 내게도 그 즐거움이 전염이 되어, 샘이 더 잘생겨보이는 게 아닐까? 아무튼 잘생긴 남자들은 언제나 내게 '소송'을 걸어오고, 나를 자꾸만 다른 강도량으로 이동시키는 '접속구'들이다. 마지막엔 성기현샘 사진을 넣고 싶었으나 사진이 없는 관계로, 요즘 제일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 사진으로 대신했당다라당당! ㅋ

         

 

댓글 2
  • 2020-08-28 12:45

    애매모호한 여자 인물들처럼 노을도 쉽게 사랑에 빠지는구나!!

  • 2020-08-28 21:45

    성기현샘과 친구들!
    친구들이 큰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
    매강의마다 출연하는데 뭐라도 드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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