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4강후기(메멘토처럼 살 수 없잖아~)

여울아
2020-07-27 20:56
445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를 기억하시나요?

10분마다 기억을 잃는 주인공과 그의 이런 기억상실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이야기.

주인공의 유일한 기억은 아내가 살해됐다는 것, 그리고 그는 살인자를 쫓기위해

자신의 몸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기억의 실마리가 될만한 문구를 새겨넣습니다.

가령, 누구는 거짓말장이 등등..

하지만, 10분마다 초기화되는 그의 머릿속은 정말 끝까지 믿을 수 없다는 게 결말이죠^^

관객들은 주인공의 기억상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가슴을 졸이는데, 

아내의 살인자는 결국 주인공 자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기억이 우리 모두를 속인 셈이 되죠. 

저는 사실 이 영화 보는 내내 머리가 아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칸트에 의하면 우리가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잡다한 것들의 통일성을 포착하고 종합하여 개념화하는 작업입니다.

그는 초월적 연역의 방법으로 감각의 포착, 기억의 재생(구상력), 재인지(recognition) 3가지 방식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메멘토의 주인공 사례를 보면, 대상 인식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기억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기기억상실증을 앓는 주인공을 쫓는 감독의 카메라 앵글에 비친 그의 일상은 마치 파편 조각처럼 흩어져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까지 도무지 recognition! 갸가 갸가? 우리가 생각했던 인물들의 동일성을 종합하는데 실패합니다.

도대체 아내의 살인자는 누구고 주변 인물들은 누구 편인고야?

심지어 주인공조차 어떤 인물인지 파악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시공간을 포함한 주관적인 기억들이 어떻게 객관적 타당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칸트는 인간은 대상 그 자체,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 현상을 인식할 뿐입니다. 

이러한 잡다한 현상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종합하는 의식능력을 "초월적 통각"이라고 합니다.

칸트에게 초월적이란 모든 경험에 선행하면서도(선험적), 경험 인식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종합하고 하나의 경험 대상으로 의식하는 것을

주관적 경험을 넘어 객관으로 초월한다...  즉, 대상이란 우리 주관의 바깥의 객관이 아니라,

주관의 초월성에 의해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아닐까요??

그에게 객관이란 우리를 초월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주관)으로부터 나아가 규칙을 갖는 것이라니!!

 

다시 메멘토로 돌아가보면, 주인공의 기억들은 잡다할 뿐 어떤 규칙성(동일성)을 만들지 못합니다. 

초월적 연역이 불가능한 인간은 결국 주변인물들을 파멸로 이끌고 말죠. 

영화 제목 메멘토는 기억의 증표라는 의미로,

그가 기억을 대신해서 잊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새겨놓는 행위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새겨둔 증표들로 인해 오히려 주인공은 사건의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된 셈이죠. 

최근 저는 새털님으로부터 조기치매라는 인문처방전을 받았습니다~

아직 병으로까지 진행되지 않았지만, 기억력 쇠퇴가 가져온 파멸의 맛을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탄밥, 탄국, 탄냄새.. 등등.. ㅎㅎ

메멘토 주인공처럼 저도 여기저기 메모장을 펼치고, 스마트폰 달력에 득달같이 기록하지만 말입니다... ㅠㅠ 

 

 

댓글 2
  • 2020-07-27 22:15

    오! 영화 <메멘토>로 칸트의 초월적 연역을 설명해주다니!
    여울아의 기억력이 문제일지 모르지만 종합적 인식능력은 브라이트하네요^^
    대상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에 있다는 내용도
    지난 강의에서 인상적이었어요. 우리의 오해의 대부분이 대상에 문제가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는데, 그것을 관계를 파악하는 '개념'으로 옮겨올 때 사태는 분명
    달라지겠지요.
    포착/재생/재인/통각이라는 용어들이 어색하지만......남은 두 강의 동안 좀
    가까워지도록 노력해볼랍니다.

  • 2020-07-28 19:10

    오! 여울아 후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진은영선생 책도 열심히 읽더니 여울아는 이제 칸트와 친숙해진 것 같군요.
    저도 지난 시간에는 뭔가 이해한 것 같았는데.. 후기를 읽다보니 제가 여전히 잘 모른다는 걸 알겠군요.ㅋ
    강의록 꺼내서 밑줄치며 잘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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