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 강독 시즌1>5강 후기-연기로 세상을 볼 준비가 되었는가?

도라지
2019-06-26 11:14
305

후기를 쓰겠다고 책을 받았는데, 문탁쌤이 올리셨다. 아. 안 쓰고 싶다. 격렬하게!
그러나 이미 책장 위에 디피된 이 책의 색이 너무 곱다. 내 향초와도 아주 케미가 좋다.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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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층 작업장에서 오디쨈을 담고 있는데 기린쌤이 비염으로 인한 재채기를 계속하며 힘들어하셨다.
나 : 쌤! 그 재채기의 원인이 뭘까요?
기린 : 아무 이유가 없어~! 절~대 재채기가 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니깐!
나 :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로) 우리 싸부님이 5주에 걸쳐 '연기'를 말씀하다가 가셨다니깐요;;;

붓다 사후, 불법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 구사론이었다.  중론에 의하면 구사론자들은 희론이 없으면

그들의 인식론이 성립할 수 없다는 기본 모순으로인해 용수의 도장깨기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논리의 힘은 세다!라고 감탄하기보다
왜  용수보살이 (후생들 머리에 쥐가 나는)중론으로 구사론에 맞섰는가?

그 맥락을 보는 것이 신상환쌤의 강의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을 본다는 것은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신상환쌤은 5주 강의 동안 '연기=공'에 조금 못 미치게 저 말씀을 하셨다.

중론을 통하여 우리가 키울수 있는 지혜의 눈이란,
형이상학적 착각으로 인해 갖게 되는 집착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 
언설의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코 베이기 십상이라,
우리는 어법상 '주어'에 해당되는 어떤 것이 마치 하나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범하기 쉽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이 만들어내는 탐진치 삼독을 알고 매순간 방일하지 않게 사는 것. 그런 삶을 사는 지혜가 바로
연기를, 공성을 깨우친 자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5주에 걸쳐 중론을 통과해 나오는 분열하는 문장들을 부여잡고 우리가 봐야했던 이면은 '공'이었다.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연기의 참된 의미를 아는 것이다. 내가 갇혀 있는 좁은 사고의 함정을 깨닫고,
확장하여 내가 속한 한 시대가 갇혀있는 표상을 깨닫는 것. 이것이 연기의 의미가 아닐까?
그동안 해온 짧은 불교 공부로 연기의 의미를 아주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중론 강독을 통해 연기의 의미가 제법 구체적으로 살아났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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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을 받아 적던 노트 한 귀퉁이에는 화엄. 꽃바다. 삶이라는 기적. 이렇게 적혀있었다.

어떤 작은 것이라도 무시이래 무변(邊)의 공간에 연결되었다고 이해하는 순간 세상의 사물들은 꽃이 된다.
어쩌면 신상환쌤이 논리로 중무장한 용수의 사유를 우리에게 이해시키려 애쓰면서 기대한 것은
우리가 이번생에 그 꽃 바다를 보는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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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 아들이 온 집안을 구석구석 뒹굴며 관찰하다가 한 권 책을 집어들었다.
'코스모스(칼세이건)' 몇 장 넘기더니 책 속 사진 한장을 나에게 보여준다. 

아들 :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서 한 점에 'ㅈ'도 안 되는 존재로 산다는 게 참 허무하지 않아요?
나 : 저렇게 스케일이 큰 우주에 한 점에 뭣이라도 되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감사하지는 않냐?
아들 : (뭐래?라는 표정을 짓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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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간의 중론 강독을 빽빽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에겐 가을 학기가 꼭 필요하다.
우리 가을에 꼭 다시 만나요~ 제발요~~~ㅎㅎ

5주 동안 시골농사는 쑥대밭이 되었고. 오디도 앵두도 복숭아도 새들과 벌레들에게 보시하고야 말았다.

공부=선업

그리고.

마지막 수업을 듣고 다소 은혜롭던  그 타이밍에
나는 여우로 변신한 기린쌤과 진지한(?) 대화를 하였고, 주방에서 함께 일하겠다고 오케이를 하였다.ㅋ
주방일이 어렵다고... 다들 선뜻 하겠다 마음 내지 않는다는...

그 언설의 세계를... 과연 나는 어찌 해석하게 될런지. _()_

댓글 4
  • 2019-06-26 18:31

    우와, 공부=선업이 시비의 세계, 언설의 세계, 표상의 세계를 넘어서려는 발심으로까지

    이어졌군요.  

    중론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통 몰랐던, (지금도 모르는;;;) 저로서는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 원동력으로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네요. 

    앞으로 두 분이 구성해갈 주방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 2019-06-26 19:21

    ㅋㅋㅋ 난 여우였어~~~ ㅋㅋㅋ

  • 2019-06-26 22:12

    이틀 동안 신체를 대상으로 한 온갖 검사를 다 받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다 집으로 왔습니다.

    병원의 시스템 안에서는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에 대해 내가 알던 지식은

    참으로 무력하기만 하여 내 어머니에게 아무 도움이 못되더군요.ㅜㅜ

    신체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는 온갖 촬영의 피사체가 되어야 하는 어머니를 보니

    사진술의 궁극은 두 가지 방향, 하나는 거대한 우주를 향하고, 

    다른 하나는 외과적 절단과 해부를 대신하여 인간의 신체 내부를 향하는 것이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심란한 가운데 이틀을 보내고 나서 홈피에 들어와보니

    문탁님이 쓴 자발적 후기 하나와 도라지님이 쓴 예약된 후기 하나가 사이좋게 올라와 있네요.^^

    5주 간의 집중 중론 강독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두 분의 후기, 모두 고맙습니다. 

    하하.. 저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불생불멸 불거불래, 중도의 이치를 새기며 이 시기를 잘 보내야겠습니다.

  • 2019-06-27 12:36

    여우로 변신이라... ㅋㅋㅋ

    우린 변(신)하는 존재이니까...

    최근 제 공부(중론-양명학-장자)가 하나로 모이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중론 공부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동학들 그리고 신샘한테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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