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강독시즌1>2강 후기 - 모래성을 쌓는 이유

청량리
2019-06-04 04:26
362

중론 강독 두 번째 시간 역시 흥미진진 했으나, 긴가민가 아리까리한 부분도 없진 않았다.

모든 걸 수치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세상에, 눈 먼 사람이 안개 속을 더듬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안개 속에서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결국 난 눈이 멀었기에 어차피 안 보인다.

그건 다행일까, 아닐까?


다르마(dharma)’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번 중론 강독에서는 현상으로 해석한다.

혹은 성질, 특수한 속성 등으로 파악한다.

, 이런 개념들은 맘에 든다.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 것들.

  

개념이나 정의가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는 연기실상의 모습을 개념이나 정의를 통하지 않고서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연기실상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서로 다르지 않음에도 다르다고 본다.

이건 마치 길쭉한 분홍색 소세지를 비엔나 소세지처럼 끊어서 보는 것과 같다. 두 소세지는 같거나 혹은 같지 않다.

, 그날 점심 반찬으로 나온 소세지 볶음은 참 맛있었다.

 

이번 시간에도 일체무자성이 곧 연기, 그것이 ()’이라는 공식을 몇 차례 반복을 했다.

자성이라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속성인데, 그런 것이 없다는 말이 일체무자성이다.

그거 아는가? 영화 신세계에서 결국 두 개의 폭력세계,

즉 조직폭력배와 경찰집단을 통합하는 인물이 바로 경찰이었던 자성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경찰도 아니지만, 경찰 아닌 것도 아닌 무자성으로 나아간다.

그 사태를 보고 자성을 조직폭력배에 꽂아 넣었던 수사과장은 고정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닫고  탄식한다.

~ 이러면 완전히 나가리(=)’인데....”

그렇게 수사과장은 ()’사상을 깨우치지만, 안타깝게도 조직폭력배에게 당해 요절한다.

 

인도에는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개념이 참 신선했다. 즉 그들은 있는 것만 다룬다.

없다라는 ()’라는 개념이 없다. 그래서 있는 것=()’있지 않는 것=비유(非有)’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러한 맥락에서도 연기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담배연기가 사라지는 건 눈에 안 보이게 될 뿐, 없어지는 게 아니다.

연기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의 긍정, ‘있음이다.

그래서 ()’을 아무 것도 아닌 ()’로 읽으면 안 된다.

 

()’사상을 다루는 중관학파는 먼저 쌓고, 그리고 논파하여 그것을 다시 부순다.

그리하려면 먼저 쌓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이유가 부수기 위해서인 것과 같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부술 때 더 재밌어한다.

 

, 이제 중론의 각 품으로 들어가보자.

 

1품은 ()’에 대한 고찰이다.

그 중 귀경게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언가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을 연기라 하고 뒤이어 8가지의 부정을 알려주는데,

불멸 불생 / 불단 불상 / 불출 불래 / 불이 불일 이다.

중론 본문에서는 불래()와 불거()가 쌍을 이루는 걸로 번역되었는데, 한문 경전에서는 불출()로 바뀌었다

여하튼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재밌는 것은 이 서로의 반대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 대립적 개념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앞서 인도에서는 없다()는 개념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와 부()는 어떻게 다른가?

책에는 없다아니다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여 있다.

그러나 무()에 부정의 의미는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불멸(不滅)’소멸함이 없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용수의 공사상은 위와 같은 8불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사구부정이다.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논파에 포인트가 있는 중관사상은 부정의 방법론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본 영화 '패터슨'을 보면서 주인공 패터슨을 리액션의 삶을 사는 인물이라고 누군가 평을 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삶, 그러나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중론도 무언가를 주장하는데 힘을 쏟는게 아닌 점에서 리액션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1) 존재한다(A).

2) 존재하지 않는다(~A).

3)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A and ~A).

4)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A and ~(~A)).


재밌는 것은 위의 4가지 경우가 따로 놓인 개념인 듯 보이나, 위에서 보면 만다라처럼 하나라는 사실이다.

결국 (평면으로 보이는) 만다라는 사실 입체로 보아야 하는 그림인 셈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일체무자성=연기=) '()'에는 다만 이것과 저것 사이(공간(空間))가 있지 않을까?

'이것과 저것 사이' 이전에 '이것'과 '저것이 존재할 수 없다.

사이가 없는 이것과 저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은 그래서 또한  공간(空間)’이다.

 

1품의 두 번째 게송은 4연에 대한 설명이다. 인연/ 연연/ 차제연 / 증상연.

인연은 어떤 결과를 낳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원인을 말한다. 뜻 자체는 쉬우나 알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연연은 대상의 과 주체의 을 나타낸다. ‘차제연은 우리의 감각에 맺히는 이다. 흥미로운 건 증상연인데 상호연관 없이, 상호영향 없이 생기는 으로 무력의 증상연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어느 하나의 대해 증상연이 된다. , 너무 무서운 말이기도 하고, 한편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부터 인연이 있는 존재라니...반대로 나도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세상의 인연이 되는 셈이다. 흡사 나비효과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비효과는 인연으로 귀결되기에 다르다.

 

열 번째 게송에는 사태라는 말이 나온다. 무자성한 것들의 존재가 바로 사태. 이것은 보편적인 개념으로의 존재가 아니라, 감각기관에 포착된 존재 즉, 우리가 파악한 존재들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식하는 주체의 능동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것을 알 때에만 유의미해진다.

 

2품은 가고 오는 ‘motion’에 대한 고찰이다.

논박자가 묻는다. 움직이는 것, 거기에 가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용수는 그 역시 결국 두 개이니 과실이라 답한다. 여기에서는 가는 것가는 자가고 있는 행위에 대해 묻고 있다. 스물두 번째 게송에는 가는 것가진 자이지만, ‘가는 것가는 자가는 것

댓글 2
  • 2019-06-04 05:43

    15.jpg

    아... 이런...부창부수...아니, 청출어람!..이라니...ㅋㅋ

    스모킹과 방씨 집안의 가장 유명한 자식, 바로  '편교설'을 사랑하는 선생에

    소세지 볶음과 '자성'을 떠올리는 제자라니... 

    (그런데...'스모킹'이 空이라고 설명하는 선생보다 '나가리'가 空이라고 이해하는 제자가 더 똘똘하지 않는가!! 푸하핫)

    444.jpg

    팔불중도나 사구부정을 몰라도...<중론>수업이 재밌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 2019-06-04 16:54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연기 혹은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저것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요?

    원인 속에 이미 결과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원인에는 아직 결과가 없는 걸까요?

    만일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면 원인-결과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원인 속에 결과가 없다고 해도 원인-결과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과를 발생시켜야 원인이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타나는데..

    결과가 원인 속에 미리 있었다는 것도 

    결과가 원인 속에 없었다는 것도 사태의 실상이 아닙니다.

    미리 있었다면 원인이 아니고,

    미리 없었다면 그건 원인도 아니고 뭣도 아니라는 거지요.

    이것, 저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함정에 빠집니다.

    변화의 흐름을 원인과 결과라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순간 마찬가지로 그물에 걸립니다.

    차제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차제연은 모든 법의 무상성을 찰나멸론으로 설명한 것인데요. 

    어떤 법이 찰나멸하고 이어서 그다음 찰나에 다른 법이 발생하는 인과관계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은 찰나찰나 변하니까 고정불변한 것은 없잖아, 

    바로 그것이 무상 아니겠어? 아비달마도 그랬지만 우리 역시 이렇게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용수는 이미 찰나멸한 것에서 무엇이 생기겠느냐, 

    이미 멸한 것이 다른 법의 발생의 조건(연)이 된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차제연은 말이 안된다고 논파합니다. 

    이미 사라진 것이 원인이 된다는 것, 말이 안되지요!

    흠.. 이렇게 아비달마의 찰나멸 이론을 깨버리는 사람, 그가 용수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도

    세상 모든 것은 찰나찰나 변화한다는 것도 다 논파해버리면..

    그럼 무엇이 남는 걸까요?

    저는 지난 수업에 희론으로 번역된 쁘라빤짜라는 산스크리트어의 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인간은 세간관습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 인식할 수밖에 없음에도

    그렇지만 세간적인 인식 방법만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쁘라빤짜라는 말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감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붓다가 이미 가르쳤다고 용수는 귀경게를 통해 말해줍니다.

    그것이 바로 불생불멸, 불상부단, 불일불이, 불거불래, 곧 팔불중도라는군요.

    인과가 실체가 없는 것처럼 생멸도, 상단도 일이도 거래도 그렇다는 이야기이겠지요.

    하여 팔불중도야말로 희론을 적멸케하는 상서로운 연기의 가르침이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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