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여름특강 시몽동의 개체화이론과 기술철학 1강 후기

정군
2021-07-16 21:40
223

저는 새로운 유형의 '존재론'을 만날 때면, 톨킨의 <가운데 땅 시리즈>, 부졸드의 <보르코시건 시리즈>, 르 귄의 <어스 시 시리즈> 같은 (이른바) 장르 소설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러한 '장르 소설'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려낸 '세계관'과 그 '존재론'이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이 방법적으로 비슷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장르 소설과 존재론 모두 (상식적인 수준에서 정의된 의미에서) 이성과 감성을 직조하여 특정한 '세계'를 설명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다만, 어떤 원사를 더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세계가 달라지는 셈이고요.

목요일 저녁에 만난 '시몽동의 세계'가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개체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이 세계와 인간 자신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개체의 대모험'입니다.

 

"개체는 개체화 작용으로부터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그 특징들에 있어서 개체화 작용의 전개와 체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의 양상들을 반영한다. 그때 개체는 상대적인 실재이자 존재의 어떤 상phase으로 파악될지도 모른다. 이 상 이전에 존재는 전개체적 실재성을 가정하고 개체화 이후에도 단독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개체화는 전개체적인 실재성의 퍼텐셜들을 단번에 고갈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개체화가 보여 주는 것은 단지 개체만이 아니라 개체-환경의 쌍이기도 하다." (시몽동, 황수영 옮김,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서론, 그린비, 41쪽)

 

그렇다고 합니다. ㅎㅎㅎ 그러니까 '개체화'가 중심 개념이고, 이로부터 '전개체적인 것', (실재성의) '퍼텐셜들'과 같은 개념들이 딸려 나오는 구도입니다. 논리적 선후를 따져보면, '전개체적 장'이 있고, 여기서 '과포화', '내적 공명'과 같은 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개체화'가 있고, 그러고 나면 '개체'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중요하냐고 하면 이건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퍼텐셜들을 단번에 고갈시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요. 강의를 들을 때에도, '전개체적인 것'이라는 게 모든 발생들의 맨 앞에서 있고, 그때 최초의 발생이 단 한번 일어난 게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말하자면, 모든 '개체'는 현존하는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이행 중이라는 점에서 '전개체적인 것'임과 동시에 '개체'이고, 항상 '개체화' 과정 중에 있는 셈입니다.(이건 당연하게도 제 뇌피셜입니다 ㅎㅎㅎ) 더불어서, 더 봐야 분명해지겠지만, 이 철학은 '환경', 그러니까 개체들과의 관계맺음 속에 있는 조건으로서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시몽동의 대단하가고 느껴지는 점 중 하나는 이 모든 '상상력'이 빗어낸 듯 보이는 '발상'을 실증적으로 규명하려고 한다는 점인 듯 합니다. 강의 때 이미 확인 한 것처럼 그는 당대의 과학적 성과들을 '이론'을 증명하는 실증 사례로 사용합니다. 부논문으로 제출된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는 아예 '기술'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덕력이 높아야 그럴 수 있는 것인지 그저 감탄만 나올 따름입니다.

 

또 한가지 제가 나름 철덕으로서 '이거 재미있네' 하고 느꼈던 점은, 사유의 동기랄지, '대결'하고자 하는 대상이랄지 그런 것이 의외로 하이데거와 비슷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정태적으로 있는 '존재자' 중심의 사유를 넘어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자는 거의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 보이기는 합니다만, 뭐랄까요 '시작'이 좀 비슷한 느낌입니다. 강의에서도 나온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 개념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더 그렇습니다. '정태적인 존재자'로부터 출발하는 사유의 대표격이라 할만한 것은 아마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일텐데요, 이 철학의 '사고방식'이 이른바 '서양철학' 안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런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레퍼런스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이데거가 『아낙시만드로스의 금언』을 통해 '진정 사유해야할 것'을 환기시키는 것이나, 시몽동이 '아페이론(무규정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나, 모두 20세기 초 중반의 '진지한 사유자'들에게 제기되었던 모종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듯 보입니다. 자원으로 환원된 '존재자'나 마치 그 자체 동일성을 유지하며 정태적으로 머물러 있는 듯 보이는 개체에 관한 가상을 넘어서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두번째 뇌피셜입니다)

 

이렇게.... 또 어쩐지 '강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있나? 없나? 싶은 후기를 작성하고 말았습니다만, '강의'는 기록영상을 통해 다시 환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이쯤 되니, '하이데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아래 링크를 눌러보셔요. 철학학교 2학기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읽기가 절찬리 모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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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2021-07-17 19:03

    제가 목요일 줌강의에 참석을 못해서 오늘에야 늦깍이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황수영 샘의 책도 여러 권이라 어떤 책을 사야 할지 혹은 여러 권 사면 못 읽는다는 핑계로 

    강의가 시작되고도 어떤 참고도서도 없는 상태입니다. ㅠㅠ

    그런데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시몽동의 개체화이론이 정말 매력적이네요. 

    이전(전개체적인 것들) 상태에서는 양립불가능했던 힘들이 관계를 맺는 것이 개체화라는 설명말이죠^^

    정군님 후기처럼 개체화의 과정이란 개체가 이행 중이라는 점에서 전개체적이면서 동시에 개체라는 설명도 판타스틱합니다. 

    개체화이론이 왜 생성철학이라고 하는지도 단박에 이해가 되었어요!! 존재란 붕어빵틀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이 얼음이되고 수증기가 되는 것처럼 물질의 생성 과정이라는 것. 물론 이런 상(phases) 전이라는 개념이 좀 위험해보이긴 합니다. 

    위계는 없다고 하지만, 단계론으로 폄훼될 가능성이 엿보여서 말이죠. 

     

    무엇보다도 첫 시간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등을 비롯 온갖 철학용어들이 쏟아졌지만 

    제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다 이해하거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학기 철학학교에서 배운 철학사 덕분인 거 맞죠? ㅎㅎ

     

     

     

     

  • 2021-07-17 19:21

    헤라클레리토스 빼먹으셨어요, 여울아님! ㅋㅋㅋㅋㅋ

    정말 철학사 학습효과를 이렇게 대번 경험하다니...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아는 철학자라는 것만으로도...하하하

  • 2021-07-17 19:23

    시몽동의 '개체화'에 대한 인트로 강의를 들으면서 저는 생성의 철학에 뭔가 깊이감이 더 부여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체화와 관계된 모든 사례와 예증이 과학적 용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철알못이면서 과알못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시몽동의 기획은 기존의 철학과 과학을 하나의 원리로 대통합하려는 야심찬 철학적 기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군님의 표현을 빌리면 이 역시 저의 뇌피셜입니다. 강의를 듣다보면 이것이 그저 저의 순진무구한 상상인지 아닌지 밝혀지겠지요.^^

    새로운 개념을 배우다 보니 이건가, 저건가,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기는데, 앞으로 그런 의문이 어떻게 풀릴까 무척 기대됩니다.

  • 2021-07-19 10:06

    갑작스런 궁서체 등장에 깜짝 ㅎㅎ

    베르그손의 생성철학은 전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줄줄이 저까지 지난 철학사 세미나를 얘기해서 죄송합니다만ㅎ) 전에 같이 니체를 다루면서 같이 생성이나 변화, 자기동일성 문제를 생각해봤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을 때 '사유하는 행위의 있음'이 '행위하는 (자기 동일성이 담보된) 존재자의 있음'을  보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미 나왔었고요. 이후 '개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며 '주체의 해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습니다. 다들 이 문제에 생각이 자주 머물렀던 것 같고, 저도 그랬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문탁샘의 금요 클래식 강의 얘기를 잠깐 하자면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 강의를 시작할 때 문제 의식도 분명 여기에 맞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몽동은 사실 생성이 연속적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뜻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그럼에도 여기에는 분명한 단절, 또는 어떤 두드러짐의 현상이 있다고 보고 그걸 개체화로 명명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기 동일성을 갖는 존재자"의 실재성을 설명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안정성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뿐 개체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개체에는 여전히 잔존하는 긴장된 힘(퍼텐셜)이 있고, 이 개체는 환경과 역동적으로 연합되어 있어서 변화와 생성에 늘 열려 있습니다. 생성과 존재를 동시에 설명해내려고 시도하는 시몽동에게 좀 빠져드네요. ㅎ 특히 기존의 질료와 형상 개념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예로 든 벽돌과 주형과 반죽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요. 질료와 형상 개념에서 빠져 있었던 운동. 반죽되는 과정에서 전달되는 장인의 퍼텐셜. 좀 아름답습니다. ㅎ

  • 2021-07-20 07:25

    지난 시즌1 이 참 좋았을 듯 합니다. 부럽 ㅋㅋ

    아직까지 왜 시몽동을 읽어야 하는지 찌리릿 하진 않지만, 확실히 궁금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박후닌 이후 오랜만에 심홍동을 만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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