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5강 후기: 도식론과 원칙론

호수
2020-08-04 07:02
928

작년에 이수영샘의 책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을 통해서 스피노자를 처음 접했는데 칸트 역시 이수영샘의 강의로 만났다. 이번에 후기를 써볼까 싶어 백종현 역 <순수이성비판 1>을 펼쳐보니, 지난 시간까지의 강의로 이 책이 거의 다 끝났다(헉). 사도 안 보게 될 공산이 크다기에 진은영의 주석서만 읽으며 따라가다 궁금해져서 지지난주에 산 것인데, 찬찬히 보자니 시간 잡아먹는 귀신입니다... 아무튼 “아시겠습니까?” 들으며 따라가다 보니 칸트 책을 띄엄띄엄이라도 읽게 된 것이 뭔가.. 그 영험하다는 사교육을 받은 기분...?

 

도식론을 찬찬히 보는데 어느 샘이 말씀하신 “개념의 홍수”가 몰려온다. (아님 집중포화였나요?) 이 개념들에 푹 빠져들지는 못하고 칸트가 담보하려고 하는 “객관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꾸 떠올려보게 된다. 칸트는 관념과 대상이 일치하는가 아닌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제쳐놓는다. 그러고는 ‘보편성’과 ‘객관성’을 이야기한다. ‘물 자체’가 아닌 ‘현상’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외부의 질서가 아닌 인간이 인식하는 규칙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은 외부의 질서를 우리가 직접 따져볼 수는 없다는 것이지 이 외부 질서가 흔들림 없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그 질서 자체에 직접 닿을 수 없지만 이 질서가 인간에게 드러나는 모습(현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식하며, 그 방식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다. 즉 보편성이 있다. 이게 되려면, 인간에게는 필히 경험에 앞서(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능력과 규칙들이 있어야 한다. 그게 뭔지 새로운 방식으로 파헤쳐보겠다는 게 칸트가 하려는 걸 거라고 짐작해보고 있다.

 

  1. 도식론

도식론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칸트가 보기에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핵심은 ‘시간성’이다. 지난번에 다룬 연역론에서는 칸트가 한 번에 하나씩만 하려고 (친절하게) 슬쩍 빼고 얘기한 게 있었는데 그게 도식이다. 도식이 왜 필요할까? 범주를 사용한다는 것은 ‘판단’인데, 직관한다는 것은 ‘그냥 보고 아는 것’이다. 이 (이종적인) 둘이 만나려면 ‘초월적 도식’이라는 매개가 필요하다는 게 칸트의 생각이다. 도식은 앞서 나왔던 ‘구상력’이 만든 것으로 ‘이미지에서 표상하는 방법’의 ‘표상’이다. 예시로 삼각형의 도식과 개의 도식이 나오는데 언뜻 플라톤의 이데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데아는 인간 밖에 존재하고, 칸트의 도식은 인간의 사유 속에 존재한다. 인간의 것이고 인간의 방식이다. 그런데 개나 삼각형의 도식은 경험적 도식이다. 우리가 찾을 것은 선험적 도식이고 그건 범주의 도식이다. 분량범주는 언뜻 공간이 중요해보이지만 그건 이미지(도상) 차원에서 그렇고, 수나 양을 지각하려면 더해나간다는 시간성이 필요하다. 다른 도식들도 결국 다 시간 “규칙들에 따르는 선험적인 시간 규정들”이다.

 

나름대로 느긋하게 꼼꼼히 본 건 도식론까지네요, 나머지 부분은 복습이 필요해 읽으시는 분들을 위한 요약정리 노트입니다...

 

  1. 원칙론

도식론에서 봤듯 범주는 도식을 통해 적용되고 그 결과 현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원칙도 범주 따라 네 가지다. 1) 분량의 범주에서 ‘직관의 공리’, 2) 질의 범주에서 ‘지각의 예료’(이 두 가지는 ‘수학적 원칙’), 3) 관계의 범주에서 ‘경험의 유추’, 3) 양상의 범주에서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이 둘은 ‘역학적 원칙’). 지난 시간에는 세 번째 원칙까지 갔다. 정리하면,

 

<수학적 원칙>

원칙 1. “모든 직관은 외연량을 갖는다”: 분량의 지각. 우리는 부분들을 합성해가며 전체적인 양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현상을 경험한다. (시간의 지속과 관련)

 

원칙 2. “모든 현상은 내포량(度, degree)을 갖는다”: 성질의 지각. 추위나 더위 같은 감각의 대상은 순간적인 방식으로 질적 성질 전체가 주어진다.

 

<역학적 원칙>

원칙 3. “경험은 지각들의 필연적 결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지각들을 연결하는 방식. “오성은 앞의 두 수학적 원칙에 따라 경험을 구성하고 나머지 역학적 원칙들에 따라 경험을 정돈 즉 규제한다.”(진은영)

이 원칙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뉩니당.....

>경험의 유추 1. 실체의 지속: 현상이 아무리 변해도 실체는 지속하고 자연에서 실재의 양은 증감이 없다.

(네, 질량보존의 법칙입니다.)

>경험의 유추 2. 인과성의 법칙에 따른 시간성: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법칙에서 생긴다.

(인과란 건 없고 인간의 심리적 습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흄에게 충격을 받은 칸트가 공들여 인과성을 되살리는 장면. ‘집’에 대한 지각과 ‘떠내려가는 배’의 예 등장. 집은 위치의 변화가 없지만 배는 위치의 변화가 있다. 바람이 없는 날 무동력의 배가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것을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화가 있는 현상의 지각에는 늘 필연적인 인과성의 규칙이 발견된다.)

>경험의 유추 3. 상호성에 따르는 동시 존재: 공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지각되는 모든 실체는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는 모두 고립된 존재들이 아니다~)

 

원칙 4는 다음 시간에.....

 

새털샘 눈길이 맨앞에 앉아있던 저를 향해 있어서.....덕분에 복습을 열심히 했어요.

혹시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친절의 최종판, 이주의 암송과제입니다.

“수학적 원칙은 ‘구성적’ 원리, 역학적 원칙은 ‘규제적’ 원리~”

댓글 5
  • 2020-08-04 07:07

    오매...

    99.jpg

  • 2020-08-04 09:03

    호수님 덕분에 지난 주에 들은 이야기를 복기하게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내일이 마지막 수업인데 잘 마무리하게 되기를!!
    이후를 기약하며...ㅋㅋ

  • 2020-08-04 10:29

    아!! 제 뜨거운 눈빛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저도 진은영샘책 뒤적여보고 있어요. 언젠가 칸트도 읽게 되겠죠^^

  • 2020-08-04 10:40

    이제 마지막 강의를 앞두고 있는데, 호수샘이 언급했던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상을 인식하는 인간에게 보편성이 어떻게 가능하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칸트를 '직접'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점들을 듣게 되어 좋았다는.
    마지막 시간도 기대되네요.

    • 2020-08-04 11:33

      인간을 통으로 보고 ‘자기만의 방식’=인간만의 방식?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하니 보편적. 저는 지금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가령 칸트는 돌멩이가 어떻게 사유할지까지는 관심이 없는 듯요.. 다만 ‘객관성’은 아직도 알쏭달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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