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이디푸스>> 깊이 읽기 후기

annalauracho
2020-02-18 19:06
495

  인간성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현재의 인간성 안에는 가부장에 대한 두려움과 끝 간데 없는 욕망의 추구가 뒤섞여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야말로 욕망이 혼재해 있는 공고한 삼각형(들뢰즈가 말한 오이디푸스 삼각형)이 실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타리와 들뢰즈는 그 삼각형 안에서 공고한 구조를 내파할 수 있는 힌트를 주고 있다. 혈연에서 벗어나 방연을 만들려는 사람들, 두꺼운 벽을 뚫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유목민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상’인간, 자본주의적 인간, 가부장적 인간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인간성의 정의를 찾는 사람들이다. 들뢰즈가 제시한 다른 개념으로 말하자면 ‘소수자-되기’를 실천하는 사람들로, 실재적인 예시로 들자면 성역할을 탈피하고자 하는 사람들, 젠더 이분법에 포획되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 채식인들 등이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 욕망이 기입된 신체 기계를 끊임 없이 낯설어하며 다른 방식의 삶을 실험한다. 오이디푸스와 자본주의가 만든 삼각형에 포획되지 않으며, 그램분자의 흐름 안에서 반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미시 입자들이다. 미시 입자들은 스스로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끊임 없이 주변에 또 다른 미시 입자를 끌어들인다는 양자 역학의 발견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주장의 과학적인 증거다. 미시 입자들은 그램 분자 흐름 안에서 보란 듯 더 경계 바깥으로 이동하며 그램 분자의 절대성을 위태롭게 한다. 자본주의나 오이디푸스 신화가 경계를 확장하면서 모두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아니다. 사회적 욕망에 끊임없이 작은 금을 내는 유목민들, 포획되지 않는 미시 입자들은 결국 그램 분자의 절대성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억압해도 미시입자들은 어디서든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창발적인 힘이다. 사회가 그들의 코드에서 잉여 가치를 찾고자 하더라도 그들은 다시 도망치고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미시 입자의 창발성, 그 곁에 또 다른 미시 입자가 함께 하는 힘은 언제나 오이디푸스 신화에 균열을 낼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은 절대성을 내파하는 포스트 휴먼의 인간성을 암시한다.

  문탁에서 처음 들은 강좌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깊이 읽기인 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큰 행운이 되었다. 학교 밖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거나 꾸준히 만나는 공동체를 만나본 경험이 없는 내게 문탁은 아주 낯선 곳이었다. 제도권 교육 기관에 속하지 않아도 오래, 꾸준히 함께 공부하고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공동체가 가능한지에 회의가 가시지 않았는데 문탁은 그 걱정이 참 부질 없음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좋은 책과 똑똑한 철학자들이 사회가 어떤지 개인의 내면이 어떤지 말해주어도 자유롭고 책임지는 개인으로 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세상에서 문탁의 존재와 문탁에서 나누는 공부는 내게 롤모델이 되고 용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도주선을 그으면서 달리는 분열증자가 자본주의를, 그 외 절대성과 정상성을 상정하는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면,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리라 상상하게 만드는 힘은 문탁 같은 공동체가 주는 용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탁 미시입자에 좋은 선생님이 함께하는 것은 양자역학적 증거만큼이나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고! 

 

댓글 2
  • 2020-02-18 20:41

    도처에 오이디푸스가 있고 도처에 혁명이 있다!!
    답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과 감정에 빠져 있던 나를 들어다보는 강좌였습니다.
    미시기계공-되기, 도처에서 구멍을 내고 돌파해보려는 자극을 받게 되네요.
    딸 친구인 예령이와 6주 동안 공부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예령아! 우리 또 보자~
    지난 겨울에 이어 올겨울에도 세미나가 쉬는 농한기를 낭궁민식으로는 스토브리그를
    함께 보낸 성기현샘께도 감사드립니다!!

  • 2020-02-19 16:46

    분열분석은 한주체안에 있는 n개의 성의 다양한 분석이다. 욕망적 혁명의 분열 -분석적 공식은 무엇보다 이럴것이다. 곧, 각자에게 자신의 성들을.

    각자에게 자신의 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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