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유가(儒家)적인 삶

가마솥
2020-0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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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 행우(杏雨)· 최락당(最樂堂)· 벽사(碧沙). 한양태생으로 김포지역의 식읍(食邑)으로 생활했으며, 그의 비분강개로 점철된 생애를 이 ‘호’에서 엿볼 수 있다. 영의정 남재(南在)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남준(南俊)이고, 아버지는 생원 남전(南恮)이며, 어머니는 도사 이곡(李谷)의 딸이다. 즉, 사대부 집안의 자손으로 과거급제하지 않고도 성균관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첫 시간의 점필제 김종직(金宗直)을 사사(師事)했으며, 자연히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과 함께 동무하였다. 단종 2년에 태어났으나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었다. 이는 육신전(六臣傳)을 지어 사육신(死六臣)의 명예를 되살린 것에 기인한다. 주계정(朱溪正)·이심원(李深源)·안응세(安應世) 등과 친교를 맺었다.

 

1478년(성종 9), 4월 1일 성종이 자연 재난(흙비가 내림)으로 여러 신하들에게 직언을 구하자(求言制度-이때 말하는 것은 죄를 묻지 않음), 왕족인 이심원(李深源)에 이어 25세의 나이로 논리정연한 상소를 올렸다.
첫째 남녀의 혼인을 제때에 치르도록 할 것(남녀 평등한 상속을 해치고 있음), 둘째 지방 수령을 신중히 선택, 임명하여 민폐의 제거에 힘쓸 것, 셋째 국가의 인재 등용을 신중히 하고 산림(山林)의 유일(遺逸: 과거를 거치지 않고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학식이 높은 선비)도 등용할 것, 넷째 궁중의 모리기관(謀利機關)인 내수사(內需司)를 혁파할 것, 다섯째 불교와 무당을 배척하여 사회를 정화할 것, 여섯째 선생 좀 잘 보내서 학교 교육을 진작시킬 것, 일곱째 왕이 몸소 효제(孝悌)에 돈독하고 절검(節儉)하여 풍속을 바로잡을 것, 여덟째 문종의 비(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을 복위할 것 – 세조가 현덕왕후의 신위(神位)도 종묘에서 내렸고, 소릉을 파묘(破墓)한 상태임.

 

소릉 복위는 세조를 옹립한 정난공신(靖難功臣)들이 집권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공신 명분을 직접 부정한 것으로써, 당시로서는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 훈구파(勳舊派)의 노여움을 사서 도승지 임사홍(任士洪), 영의정 정창손(鄭昌孫) 등이 의금부를 통하여 역모죄로 엮어서 국문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과거 길은 막혔고, 세상을 등지고 미친 선비로 생활한다.
(짱짱한 기득권층에서 이 정도 새파란 서생의 문란쯤이야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쉽게 예상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텐데 왜 ?)

 

김시습(金時習)처럼 벼슬을 단념하고 세상을 흘겨보면서, 술과 시로써 마음의 울분을 달래었다. 산수를 좋아하여 국내의 명승지에 발자취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고 여러 기행문(紀行文)과 시(詩)를 남긴다.

그리고 당시에는 역적으로 평가되어 있는 금기에 속한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6인이 단종을 위하여 사절(死節)한 사실을 「육신전(六臣傳)」이라는 이름으로 저술하였다.

 

38세에 병(술병 ?)으로 죽은 뒤, 연산군 10년 (1504년) 갑자사화 때에는 소릉 복위를 상소한 것을 난신(亂臣)의 예로 규정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하였다.

1513년(중종 8) 소릉 복위가 실현되자 신원되어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성현(成俔)·유효인(兪孝仁)·김시습 등의 문집과 함께 비로소 그의 문집도 간행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1782년(정조 6)에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김시습·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 등과 함께 생육신으로 불렀다.

 

학교에서 배운(유신교육) 사육신의 역사는 우리에게 충(忠)을 교육하였고, 더우기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한 충(忠)이 아닌 국가에 대한 충(忠)을 요구하였다. 추강(秋江)이 육신전을 지어 사육신을 세상에 들어 낼 때, 국가에 대한 혹은 왕(단종)에 대한 충(忠)의 마음으로 목숨을 걸었을까 ? 아닐 것이다. 유가(儒家)로서 인(仁)의 사회를 꿈꾸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통치자들에게 충(忠)을 요구 하였다고 생각된다.

장장 300년이 지나서 그의 주장이 받아 들여졌는데, 이는 조선사회의 이념인 유가정신(儒家精神)을 구현하고자 후배 선비들이 중단없이 그의 주장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선비정신).   성리학을 사회이념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회에서도, 한 사건을 성리학적으로 재평가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기득권층(훈구파, 노론 등등)들이 권력으로 경제적으로 인맥(결혼)으로 엮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기득권층 못지 않게 ‘자본’을 매개로 수십층으로 짜여 엮어진 견고한 현대 사회 구조 속에서, 조선의 성리학과 같은 통일된 이념도 없는 자유로운 사상이 가능한 현대에서 무엇으로 함께 잘 사는 세상을 ……

 

피에쑤 : 문탁에서 스피노자, 니체 등의 서양철학, 논어 맹자 등의 동양철학 책을 보고 강연을 들을 때에는 주변 지식(인문지리, 당시 시대상 등)이 부족해서 텍스트 그 자체를 가지고  이해하려니 힘들었는데,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는 이미 그 주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재미가 쏠쏠하네요.
문탁에서 고전 강좌를 우리네 조상들의 사상(이이와 퇴계의 사상 등)에 대해서 열면 어떨까요 ?. 성리학의 원문들을 모두 읽었으니(나 말고 !), 학습하는 데 깊이와 재미가 배가(倍加)될 것 같은데…… ㅎㅎㅎ

댓글 3
  • 2020-02-07 15:24

    맨 앞에서 아주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계시더니...이런 촘촘한 후기를~~
    감사합니다.

    버뜨... '노론'은 훈구파가 아니라 조선 중기 이후 세력을 잡은 '사림파'의 한 갈래(소위 '붕당'^^)일걸요? ㅋㅋㅋ

  • 2020-02-07 23:29

    강좌후기 2...바람~편

    가마솥님덕에 가볍게 쓸수있어 행복합니다^^
    어려워서 쓰기 힘든 부분을 잘 정리해주셨으니 저는 소회로다가!

    '생육신' 중 한분인 남효온을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스승의 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핍박을 받더라도 올바르다 생각한 길로 살아가려 애쓰고, 힘겨운 현실의 삶에 초월해보려고도 해보고, 외롭고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그뒤 300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자신이 생각한대로의 복권이 제대로 이뤄진 사람! 제가 만난 남효온입니다^^

    그가 남긴 글들이 후에 역사를 바로잡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고, 성세라 칭해지던 당대를 고발하기도 하고, 역적으로 몰린 인물들과 친구들의 명성도 되찾아주었다니...그는 이름을 후세에 단단히 남긴 셈이네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유교사상을 제대로 실현시키고자하는 젊은 개혁파들을 오히려 죽이다니...권력을 지키려는 자들의 민낯을 발견하게 됩니다. 60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과연 어떤지...생각하게 됩니다.

    300년이 지나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의 결실이 이뤄진걸 보며...아직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많은 굴곡들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겠지요. 누군가라도 기억하고 끊임없이 요구하지않는다면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을 일들이겠지요.

    사육신묘가 칠육신묘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지금은 없어져버린 '압구정' 이야기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노량진과 압구정동에 가면 감회가 색다를거같네요^^

    100명의 평전을 꾸준히 내주시길 바랍니다~
    덕분에 이름만 들어본 남효온을 만나 감사합니다!
    우리 역사를 살아온 우리 선배(=선비)들을 만나는것도 즐겁지만, 그들을 기억해드려야하는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후배의 의무이기도 하지않을까...생각해봅니다.

    정출헌선생님,
    먼길 와주셔서 재밌는 이야기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02-09 23:27

    강의를 듣고나니..
    저도 뭐랄까 잘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낯섦을 느낀 기분이랄까요?
    사육신이 충신으로 인정받기까지 3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300년동안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할 수 있었던 성리학의 힘, 아니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진정한 성리학의 나라로 변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꼿꼿이 정좌하고 시대를 지켜봤던 선비의 힘을 느꼈다고나할까요? (너무 낭만적인가?)
    혹은 거꾸로 바른 것을 바르다고 말하는데 걸렸던 긴 시간들과 그걸 억눌렀던 세력들의 강고함이 참으로 막막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뭘 어떻게 바꿔보려는 싸움을 하려면 한 삼백년은 여유를 갖고 해야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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