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와 사물정치 3강 후기

장지혜
2019-08-25 08:44
767

3강 질의 응답 시간에 근본적인 변혁과 관련하여 논의한 것에 좀 더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후기를 올립니다.

 

나는 지난해 과학세미나에서 ANT를 공부하며서 환희에 차서 부라보를 외쳤다. 나에게 과학기술은 세상의 변화에 중요한 요인이 되면 될수록, 동시에 두려움이 요인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유토피와 디스토피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둘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유토피아적 측면을 다른 상황에서는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선택하는 불편한 느낌 속에서 과학기술을 대해왔다. 그러던 차에 ANT를 만나면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양자택일적 선택을 벗어나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겠다는 근본적이 변혁의 가능성을 보았다. ANT가 과학이 주는 위험성을 설명해주는 것에서, 속이 뻥 뚫리고 세상이 확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라투르는 과학을 통해 하이브리드를 끊임없이 창조하면서도 이들이 가려져 있어,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여러 가지 효과를 내는 비인간 행위자들의 행위에 대한 무지함이, 과학의 위험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목소리를 만들어주고 대표하는 민주주의(사물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주는 근본적인 위험성을 해결하면서 현재의 민주주의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민주주의 대두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이를 김환석 선생님은 사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의 행위성을 인정하는 비근대적 차원의 존재론을 통해 하이브리들에게 적적한 존재론적 위치를 부여해주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표현하였다.

우리에게 ‘사물의회’라는 것이 현재는 희화화 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숲의 대변자로 빈 의자를 두는 우스광스러운 풍경), 이제 겨우 우리는 비인간 행위자로 사물을 주목하지 시작하였다. 김동광 샘이 이원론의 데카르트를 지금의 맥락으로 그 당시의 의미성을 폄하할 수 없다고 했듯이, 비인간행위자로 비근대적 차원의 존재로 자신의 존재성을 부여기 시작한 미래의 사물들을 현재의 맥락에서 폄하할 수 없다. 신에게서 인간을 구원하기 까지 몇 백년이 걸렸듯이 하이브리드사물들에게 제대로 된 존재론적 위치를 찾아주는 전략 또한 백년 단위의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이 과정은 사물의 행위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인간 또한 생명의 지닌 유기물일 뿐이라는 물질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라투르는 하이브리드의 증가현상이 현대세계의 특징인데 하이브리드화 작업을 명시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하였다. 하이브리들을 가시화하면서 어떻게 이들을 대표할 것인가에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홉스와 그의 계승자들이 어떻게 시민들을 대표할 것인가 하는 영역에서, 이제 오존층 구멍 같은 생경한 하이브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집합체(사회)의 내·외부적 협상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아가 라투르가 사물의 의회라고 부르는 새로운 유형의 집합적 의사결정기관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사물정치). 따라서 생태학은 자연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것이고 과학 또한 대표의 문제다. 사물정치는 현대세계의 적합한 새로운 집합적 기획을 위한 제안이다.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자연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회와 자연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위성과 역할, 권력관계를 재분배하는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집합적인 삶 즉 공동의 코스모를 조직하기 위한 근본적인 새로운 모델을 찾기 위한 집합적 운동이다. 즉 코스모스가 다시 한번 정치의 장소가 되어 인간, 동물, 식물, 나아가 신들을 위한 좋은 공동세계를 점진적으로 질서화해야 한다.

우리는 라투르를 안내자로 택함으로써 모든 선험적인 보장과 확실성을 뒤에 남겨두는 대신 상대적인 확실성의 제안은 얻고 우리로 하여금 현대세계의 근본적인 변형을 조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구성되는 동천마을이나 문탁이 필요한 물질적 조건도 만들어가고 사람들 사이에 관계도 만들면서 연결망을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라투르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인식 틀 없이 현장의 경험을 동등하게 두고 분석하는 것이다. 새로운 민주적 집합체(좋은 공동세계)를 건설을 지향하면서 ..

이러한 측면에서 미시적 분석을 통해 처방이 다양해서 분석은 잘하나 처방이 어렵다는(김동광 샘의 요지를 제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김동광샘의 의견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문탁이든 동천마을이든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사실구축)하고 좋은 공동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연관시켜 분산된 행위자들을 결합해 낸 적이 없다. 처방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합적으로 구성(정치행위)해가는 것이다. 이는 미시적 분석을 통해 거시적 세계를 변화시키는 라투르의 미시-거시 관계의 상호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기술과학에 의해 열리는 가능한(다중적)세계들 중에서 어떤 미래를 선택하느냐는 존재론적 차원의 정치에 대한 새로운 확장을 실험해 볼 시기이다. 이 생각을 하면 가슴 떨린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댓글 2
  • 2019-08-26 14:11

    힘을 주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19-08-28 11:43

    이분법적인 사고의 오류를 인식하면서도 그 안에서 라투르의 철학을 따라가자니, ANT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아직은 힘드네요. 라투르가 말하는 진정한 근대인이 되려면, 더 많은 공부와 성찰이 필요할듯요.
    인간이기에 인간의 언어로 비인간의 행위성을 번역할 수밖에 없는 한계 속에서 과학인문학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라트루의 노력의 과정들을 들으며, 지식인들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3강은 이전의 강의내용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셔서 즐겁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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