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 강독 4회 후기

느티나무
2022-04-07 09:23
111

시작은 그랬다.

지지난 겨울이던가(벌써 아리까리...)

진달래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을 읽자는 공지를 올렸다.

다른 것보다 '역사'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같이 읽었다.  그리고 좌전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또 수 년 동안의 화요일 아침 시간을 채우던 우쌤과의 '고전읽기' 시간이 없어지고 나니

어떻게든 그 시간을 잇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또 또 쉬운 우리의 말로 역사 속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수집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춘추좌전>이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꼬리털 한가닥, 그것도 그 끝을 잡고 더듬거리고 있다.

양백준의 주는 너무 방대하고(이 분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너무 많은 공부를 했다)

좌전의 문장은 그 사이에 뜨문뜨문  돌다리처럼 놓여있으니 유려한 탕누어의 감언에 넘어간 듯 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미 코끼리를 건드렸으니 손을 놓고 공중회전으로 날아가지 않으려면 꼭 붙들고 갈 수밖에...

 

그러다보니 재미가 조금씩 생긴다. 

이번엔 經의 "여름 5월, 정백(정나라 장공)이 단(장공의 동생 공숙단)을 언에서 이겼다." 한 문장에 대한 

傳의 내용을 읽었다. 

 傳은  '정나라 장공이 동생 단에게 경성 땅을 봉해주었는데, 동생 단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장공에게 도발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신하들의 요청을 여러 차례 물린 끝에 결국은 언 땅을 정벌했다. 하지만 그들이 형제의 관계였으므로 經에는 弟를 쓰지 않았으며 장공을 정백이라 칭한 이유는 아우를 잘못 가르친 것을 나무란 것이며 공숙단이 도망갔다(出奔)고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 공숙단에게만 있는 것이 되어 양쪽 모두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을까) 곤란했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좌구명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경의 짧은 문장을 생략으로 그리고 그 생략의 의미를 이렇게 부여하다니 말이다. 전의 해석에 저절로 <논어> 속의 공자가 떠오른다.  정장공의 어머니 무강과 동생 공숙단에 얽힌 한 편의 이야기를 엮어 볼만 한 것 같다. 

여기에 양백준은 상세한 주는

이름 하나에도 쓰인 글자에 대한 해석과 그 글자가 經에 쓰인 예와

두예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주석과 주석이 담긴 책이름과 쓰여진 예와 그릇에 새겨진 내용까지...

이렇게 자세하게 하나하나를 짚어간다. 

우리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한자를 찾아 중국어 사전을 뒤지고 중국어 발음까지 비교하면서,

백과사전 급의 주석에 감탄하다가도 뭐 이렇게까지라며 탄식하기를 번갈아 한다.

그러다 보면 좌전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주객이 전도되어 뒷전이 되고 말기 일쑤다.

그래도 차츰차츰 익숙해지고는 있다. 그러면서 재미도 조금 생기고 있으니 

주구장창 읽다보면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을 알기에 그냥 매주 이렇게 읽어갈 것이다. 

댓글 2
  • 2022-04-07 23:26

    이런 것이 춘추필법일까요?

    경에서 정백이라고 작위를 쓴 것과 克이라고 써서 형제간의 다툼을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표현한 것이요.

    정백과 단을 장공과 동생이라고 쓰지 않은 것은 형이 동생을 제대로 못가르쳤고, 동생도 동생답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공자가 그렇게 강조하던 정명에 위배된 것이죠. 그 결과 형은 동생의 악을 키워준 셈이 된 것이고, 일부러 그걸 기다렸다가 동생을 친 것이죠. 

    그리고 '출분'이라고 경에 쓰지 않은 이유는 만약 출분을 썼다면 공숙단에게만 전적으로 죄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장공의 잘못도 있는데 공숙단만 잘못한 것처럼 쓸 수는 없으니까요.  

    잘잘못을 확실하게 따져서 글자를 선택하네요. 

     

  • 2022-04-11 10:05

    ㅎㅎㅎ 탕누어에 꿰인 게 한 두 개가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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