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중등인문학교 S1 <마을이란 낯선 곳> 다섯 번째 시간 후기

명식
2020-07-27 13:44
266

 

  2020 중등인문학교 시즌1 <마을이란 낯선 곳>의 다섯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연주, 한영이, 가람이와 함께 『원미동 사람들』 연작을 마지막까지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연경이도 꼭 함께 했으면 좋겠네요!

 

  『원미동 사람들』의 후반부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여섯 개의 에피소드들을 함께 하나씩 차례차례 쭉 살펴보았는데요. 그 중 중점으로 다룬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는 주인공 가족이 ‘임씨’에게 욕실 수리를 맡기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연주가 고른 인상 깊은 에피소드이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주인공 부부 모두 ‘임씨’가 일이 서툴 것 같다는 이유로 그리고 수리비 바가지를 씌울 것 같다는 이유로 차갑게 바라보는데요. 어쩌다 보니 임씨의 일을 거들게 되면서 그것이 정말 힘든 일이란 걸 깨닫게 되고, 또 오히려 처음 불렀던 수리비의 반값도 안 되는 돈을 부르는 임씨를 보면서 부부 모두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부가 대접한 술을 마시던 임씨의 힘겨운 인생사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게 되지요.

 

  우리도 때때로 집에 에어컨이나 인터넷 등을 수리하러 기사님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세 사람 모두 기사님이 용건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방에 들어가 있다고 했지요. 낯선 사람인 기사님을 대면하는 게 어색하고, 딱히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혹여 집에 혼자 있기라도 할 때면 좀 낯선 기사님이 좀 무섭기도 하고요. 실제로 가끔 뉴스를 통해 그런 사건들을 접하기도 하니까요.

 

  사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낯선 타인은 우리에게 두려운 미지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러한 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잘 알지 못하는데, 만일 그 사이에 ‘돈’이 끼어들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쉬워지기도 합니다.. 돈은 어떤 특정한 인간관계를 지시하는 기능을 갖고 있거든요. ‘나는 돈을 냈으니까, 내가 고객이니까’ 하는 단서가 붙으면 뭔가 상대를 대하는 게 좀 더 쉬워집니다. 『비 오는 날…….』 이야기의 주인공 아내가 그렇지요. 아내는 어차피 적지 않은 돈을 수리비로 임씨에게 줄 것이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고된 일을 하는 임씨를 보면서도 살짝 양심에 찔려할지언정 여전히 임씨의 흉을 보고 의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임씨가 반값도 안 되는 돈을 받겠다고 하니, 아내는 놀라고 부끄러워하면서 어떻게든 임씨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더 챙겨주려 하지요. ‘돈’이라는 게 갑자기 빠져버리니 상대를, 성실하고 묵묵하게 고된 일을 해준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겁니다.

 

  꼭 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며, 때문에 어떤 정해진 규칙이나 일반적인 인식에 따라 관계를 정의하고 맺으려 합니다. 가람이가 인상 깊은 에피소드로 골랐던 『찻집 여자』에서, 주인공 엄씨는 찻집 여자를 사랑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딱한 처지의 그녀를 동정한 걸까요? 동정은 사랑이 아닌 걸까요? 그 사랑이란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는 걸까요? 남녀 간의 사랑과 부모자식의 사랑,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 친구와의 사랑은 또 뭐가 다를까요? 우리는 꽤 많은 관계를 ‘사랑’이라는 한 마디로 줄이고, 또 그에 대한 많은 사회적 규칙들을 만들지만 사실 ‘사랑’이라 퉁쳐지는 관계에도 수많은 선들이 있으며, 또 그 선들은 변화무쌍하게 바뀌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타인들이 함께 살아가며(『지하생활자』), 또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수많은 형태의 ‘관계의 잠재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이미 사회적으로 익숙한 형태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의 관계를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익숙한 형태의 관계는 안정적이고, 편리하며, 깔끔하지요. 마치 전통시장에서 에누리하고 감정을 소모하며 물건을 사는 것보다 마트에서 깔끔하게 돈만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게 더 편한 것처럼요(『일용할 양식』). 그에 비해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맺을 때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때로는 내가 상처 입을 수 도 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한영이가 고른 『한계령』 에피소드처럼, 단지 먼 미래에 지금을 돌아보며 다시 생각해볼 수는 있겠지만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역사는 결국 관계의 역사이자, 공동체의 역사이며, 거기서 비롯되는 수많은 형태의 삶들을 품어왔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책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를 통해 그것을 살피고, 에세이와 함께 이번 시즌 『마을이란 낯선 곳』을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요!

 

댓글 1
  • 2020-07-27 19:15

    멋져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50
[사회학 세미나] 『언어와 상징권력』2회차 자료 (1)
우현 | 2024.03.25 | 조회 31
우현 2024.03.25 31
549
[사회학 세미나] 『언어와 상징권력』1회차 후기 (3)
우현 | 2024.03.19 | 조회 54
우현 2024.03.19 54
548
[사회학 세미나] 『언어와 상징권력』1회차 자료 (2)
우현 | 2024.03.18 | 조회 60
우현 2024.03.18 60
547
[월간-한문이 예술 모집] 세상을 이루는 여덟가지 기운들 (3월-11월)
동은 | 2024.02.29 | 조회 186
동은 2024.02.29 186
546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6회차 후기 (1)
우현 | 2024.02.13 | 조회 78
우현 2024.02.13 78
545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6회차 자료
우현 | 2024.02.13 | 조회 72
우현 2024.02.13 72
544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5회차 후기 (1)
우현 | 2024.02.08 | 조회 80
우현 2024.02.08 80
543
한문이 예술 겨울캠프 <형설지공> 후기!! (4)
동은 | 2024.02.08 | 조회 105
동은 2024.02.08 105
542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5회차 자료
우현 | 2024.02.05 | 조회 78
우현 2024.02.05 78
541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4회차 후기 (1)
우현 | 2024.01.23 | 조회 130
우현 2024.01.23 130
540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4회차 자료
우현 | 2024.01.23 | 조회 92
우현 2024.01.23 92
539
[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3회차 후기 (3)
우현 | 2024.01.16 | 조회 135
우현 2024.01.16 13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