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퀴어링!> 3회차 후기: 배게 천사 애슐리와 고양이

고은
2021-08-30 17:02
258

 

 

 

1.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어쩌면 이상한 몸>을 다 읽고 새로운 책 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이 세미나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게 했던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입니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가 부제인 이 책은 타이완의 자유기고가인 천자오루가 장애인 당사자, 당사자의 가족과 애인, 사회복지사, 교사 등의 이야기를 엮어 쓴 책입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많은 사람을 화자로 등장시키면서 천자오루 자신도 화자로 종종 등장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때로는 과감하게 축소시키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드러낼 때는 물론이고 과감하게 축소시키는 경우에도 저자의 태도가 깊게 묻어납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회에서 장애인의 욕망은 들릴 리도, 보일 리도, 의식될 리도 없기에 존재할 리도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장애인은 그저 살아있는 것만을 원하지 않으리란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외부세계가 욕망을 아무리 봉인하더라도, 욕망은 스스로 자신의 출구를 찾는다. 왜나하면 성은 일종의 인간관계이자, 신체 접촉을 통해 온기를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갈망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성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존재감을 부여한다. 

  이 책은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다양한 입장, 즉 장애 당사자, 부모, 사회복지사,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제 3자의 입장을 다룬다. 또 이 책은 한 가지 관점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몇 가지 쟁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쟁점들은 금기처럼 다뤄지는 장애인의 사랑과 성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준다." - 발제문 중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인지, 함께 세미나를 하시는 분들은 어떠셨을지 궁금했습니다. 세미나를 시작하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번 책보다 읽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저번 책이 비교적 술술 읽혔다면 이번 책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 중간중간 생각하느라 속도가 더뎠다는 것이었어요. 

  지난번 시간에 시도한 방식 중 발제가 아닌 발췌를 해간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워크시트로 한 시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뒤에 발췌/발제로 한 시간 이야기 나누는 건 좋았습니다. 이번에도 워크시트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2. <암흑의 나라>

 

  세미나는 책을 읽으며 잘모르겠는 부분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누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만복님이 질문을 워크시트에 적어주셨는데, 책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는 좋은 질문이었답니다.

 

추만복: “마음은 우리가 비교적 정확한 방식으로 아이와 동행하도록 이끌어주죠. 빛에는 기교는 있어도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삶의 희망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41)” 이 문장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 문장의 바로 앞 문장은 이렇게 써져 있어요. 황리야가 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들을 "돌보는 나날은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맥이 빠지고, 떄로는 명쾌하고, 때로는 심오했다. 다양한 층차의 빛과 그림자가 넘실댔다. 황리야는 마침내 (...) '그림자'를 보면서 동시에 '빛'의 존재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문장의 구조로 미루어보건데, 빛만 보아서는 삶의 희망을 지켜낼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비로소 기교에 가까운 꾸밈이 아니라 진정한 희망을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 책은 한국에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는 멋진 제목을 가지게 되었지만, 타이완에서는 본래 <암흑의 나라>라는 제목이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빛과 어둠은 책 곳곳에 종종 쓰이는 비유인데요. 서문격인 1장에 보다 잘 설명되어 있답니다.

 

  "성은 어려운 문제이자 금기다. 장애인은 신체의 온기와 쾌락을 갈망하지만, 불공평한 이데올로기에 결박된 채 암흑의 나라에 감금되어 영원히 환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처지와 같다. 문학과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희열은 (...) 마치 딴 세상의 불빛처럼 은은하게 빛을 내보낼 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 그들은 그것이 자신에게도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26)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성과 사랑이라는 빛이 장애인 앞으로 비춰져오지만, 실제로 장애인은 암흑의 나라에 감금되어 영원히 빛이 나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로 가서 만복님이 물어보신 파트를 보면 빛만 보아서는 제대로 무언가를 볼 수 없고, 어둠까지 볼 수 있어야 우리가 진정으로 앞날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암흑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볼 때야 비로소 우리는 조금 다른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이 부분은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애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책의 가장 앞부분에 김원영 변호사가 써놓은 '읽기 전에' 파트가 인상깊었습니다. 김원영 변호사는 이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고 있거든요.

 

  "장애를 주제로 하는 많은 논의가 그렇듯 이 책도 장애인과 관련된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사랑과 성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성적 자기 결정권의 온전한 실현이란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정상적인 성과 비정상적인 성은 누가 규정짓는지 등 여러 근본적인 질문을 성찰하도록 돕는다."(13)

 

  우리는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대한 글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혹은 우리 사회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3. 베개 천사 애슐리와 고양이

 

  이번에 읽은 파트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베개 천사 애슐리 에피소드였어요. 애슐리는 선천성 뇌변병장애를 가져 신체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해요. 말하지도 걷지도 못할뿐더러 스스로 음식을 먹지도, 몸을 뒤집지도 못하고 음식은 관을 통해 섭취하죠. 아픈 것을 무서워하고 미소를 잘 짓는 애슐리를 베개 천사라고 부르는 건 그가 베개에 늘 기대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애슐리가 성장하자 애슐리의 몸집이 커지는데에 반해 부모님의 체력은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해요. 여러 차례 고민 끝에 부부는 애슐리가 6살이 되던 해 호르몬을 주사해 성장을 억제하고 자궁과 가슴을 들어내어 애슐리를 영원히 135cm-29kg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요.

 

천유상: '베개 천사' 애슐리의 사례가 인상에 남는다. 애슐리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제한한 부모의 행동은 물론 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고,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그럴 권한이 없다고 생각한다.그렇지만 사회적인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부모가 지녀야 할 모든 책임과 희생을 감안한다면 과연 비난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한켠에서는 들었다.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저자의 대안이 인상 깊었다.

 

  만복님은 이 부분을 읽으며 하나의 실험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옳고 그름에 따라 뭔가를 정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난다면, 애슐리는 오히려 누운 채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저희 세미나에서 이게 이슈가 되었던 건 이것을 보고 만복님이 워크시트에 적었던 내용 때문이었어요.

 

추만복: 여섯 살의 아이를 더 자라지 않도록 수술을 시킨 애슐리의 가족 이야기(85)가 인상 깊었다. 이렇게 연결하는 것이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우리 고양이들을 중성화시킨 것이 생각나면서 이야기에 몰입이 되었고 여러 감정이 일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복님은 애슐리를 보며 자신이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을 떠올렸다고 해요. 만복님은 고양이를 쉽게 키우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했고, 덕분에 고양이가 난동부리는 일이 줄기는 했지만 당사자들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에요. 주연님은 만복님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만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해요. 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 보자면, 미성년자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힘든 것처럼 지적 장애인 역시 비슷하게 봐야하는 게 아닌가 싶으시대요. 또 다른 한편에서는 중성화가 고양이를 위한 것이란 입장이 있기도 하구요. 반면 유상님은 만복님 워크시트를 보며 고양이 중성화 문제와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둘 다 자기 표현을 잘 하는 것이 어렵다는 부분에서 비슷할 수도 있다고 말이에요. 소연님은 피임하도록 시키는 것보다 당사자가 기다리고 직접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위험을 동반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고양이를 키울 때에도 고양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것이 자기결정권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하고 말이에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성적자기결정권과 양육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들이 꽤 오갔는데 이곳에 실기보단 제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옮기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책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1주 내지 2주가 남았어요. 다음주부터는 생각을 갈무리하고 조금 좁혀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다들 다음 시간에 만나요!

 

 

 

 

 

 

 

 

 

댓글 3
  • 2021-08-30 17:03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세미나 중간중간에 각자의 경험담이나 솔직한 의견들을 듣는 것도 무척 좋았어요.

  • 2021-08-30 17:03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에서부터 출산과 양육권 그리고 이어진 출산과 양육에 관한 자격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이 주제가 ‘이것이 옳다 혹 저것이 옳다’ 혹은 ‘이렇게 해야한다’ 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다. 워낙 다양한 의견과 입장이 존재하고, 그 입장과 의견들에는 각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 저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많은 대화와 논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그 많은 논의와 대화의 결말이 결국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면....그 때는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은님이 언급한 공동체의 역할에 관한 부분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장애인을 포함하여)에게 어떤 의사 결정에 있어서 안전한 사회적 울타리 혹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지나간 경험이지만 예전에 장애인 남성과의 만남과 느꼈던 거부감이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경험과는 다른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 2021-09-01 09:54

    더 깊숙하게 들어가서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이번 시간에는 장애인을 무성애자, 욕구가 없을 것이라는 단정지음이 정말 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구나를 계속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황리야와 위위의 짧은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는 나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야하는가라는 고민을 제 스스로에게 오래오래 물으며 답을 찾아나갈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이번 시간에는 끝나기전 5분의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첫시간에 들었던, 이 곳은 안전한 공간일 것 같다는 예감이 틀리지 않았구나! 이러한 만남들이 내 삶을 잡아줄 힘이구나! 희망에 푹 젖으며 인사를 건넸던 그 밤을 앞으로 많이많이 떠올릴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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