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영성 시즌 3> 5회차 후기

메리포핀스
2020-10-10 03:11
335

<도시와 영성 시즌 3> 5회차에서는 『곰브리치의 불교강의』 4장, 5장, 『디가니까야 께왓다경』이 진행되었다. 불교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이 ‘업’이지 않을까? ‘업’이라 하면 보통 ‘행위’에 대한 결과로 그것에 대한 응징의 문제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붓다는 ‘내가 업이라 할 때는 의도를 의미한다.’며 좀 더 밀고 나가 행위 자체 보다는 업은 그 매개가 무엇이든 정신적인 것으로 행위자의 의도의 문제이며 행위자의 정신적 상태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로 전환한다. 또한 각 마음 상태는 다음 순간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이생은 다음 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당시 브라만교의 제의나 자이나교의 고행은 둘 다 외적인 것만을 다루는데 붓다는 이를 모두 부정하며 모든 중요한 것들은 마음에서 일어난다며 방향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붓다는 이렇게 업의 초점을 의도로 전환함으로써 이러한 통찰은 선업이나 악업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 대칭 구도를 갖추고 중도를 설한다. 악한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선한 행위 또한 묘한 끄달림을 만든다. 붓다는 이러한 마음의 갈등을 깨끗하게 씻고 업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청정의 길을 개척했으니 과히 혁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붓다는 깨어난 자라는 뜻으로 깨어남이란 깨달음의 본질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 한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열망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똑바로 볼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이 자신을 좌지우지되도록 한다. 그러나 붓다는 존재란 없으며 존재에 깃든 의식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 존재가 어떤 물체가 아닌 작용인 것과 같이 의식 또한 작용인 것이다. 붓다는 우리의 경험을 항상 변화하는 과정으로 의식의 흐름으로 본다. 이런 흐름은 모든 것은 무상하며 결국 ‘아뜨만이 아니다’로 귀결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작용은 흘러가는 것을 잘라내어 분별하고 고정시키므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동시에 지성을 훈련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불교의 명상이라고 한다.

『디가니까야 께왓다경』에서도 지혜의 성취야말로 가장 뛰어난 기적임을 말하고 있다. 신족통이나 타심통은 우리를 감화시켜 놀람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믿고 따르려 한다. 하지만 붓다는 이를 오히려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는 위험함으로 본다. 진정한 신통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이며 붓다는 계·정·혜의 기적을 설한다. 요요샘께서는 께왓다경에서 ‘식이 사라지면 명색이 사라진다’는 붓다의 대답은 세간의 분별지로서의 식이 사라지면 지혜가 나타나고, 지혜가 생기면 명색 즉 우리의 경험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과 정신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는 뜻이라 한다. 우리의 일상경험에서 의식의 작용은 표상으로 또 한계로 나타난다. 이 의식의 분별이 사라지면 개념적 구별도 사라지고 그러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한다. 바로 이러한 지혜의 성취야말로 가장 뛰어난 기적이라는 것이 께왓다경에서의 붓다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오이도샘께서는 자이나교가 궁금하여 MBC의 인도 자이나교 소개 영상 다큐를 보셨다고 한다. 자이나교 수행승의 고행과 그들을 따라다니며 지원하는 몇 배 더 많은 신자들의 ‘기묘한 공생’에 대한 메모글은 너무도 리얼하여 다큐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좀 끔찍할 것 같아 사실 굳이 보고 싶지 않다.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도 불교의 붓다도 ‘건널목을 만드는 자’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붓다의 건널목을 건너고 싶다. 그리고 붓다의 건널목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다음 주는 『디가니까야 대인연경』과 『곰브리치의 불교강의』 제 6~7장입니다. ^^

댓글 3
  • 2020-10-10 23:38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본다는 것!
    똑바로 보고 똑바로 살아야 되는 줄 아는,
    분별만 하는 저의 의식으로는 그것이 정말로 신통과 같은 기적일 듯요~^^

  • 2020-10-11 17:18

    곰브리치는 자이나교의 티르탕카라((tīrthaṅkara)를 '건널목을 건너는 자'라고 번역했는데요.
    저는 다른 곳에서 본 번역, '여울을 건너는 자'가 더 마음에 든답니다.^^
    이름을 뭐라 부르든 중요한 건 탐욕, 증오, 어리석음을 건너가는 것이겠지요!ㅋ

  • 2020-10-11 23:01

    이번에도 식과 명색을 붙들고 씨름을 했네요.
    의식의 분별이 사라지면 개념적 구별도 사라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다는데.
    가능은 할지 모르겠지만 한발짝씩 내딛여봅니다.

    우리 붓다의 건널목을 함께 건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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