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스타 책읽기> 숲은 생각한다 5장 후기

곰곰
2022-01-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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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밤사유 세미나에서 <자각몽, 또 다른 현실의 문>(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의식적으로 꿈을 꾸고 그것을 통로 삼아 또 다른 현실들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시 판타지 소설 같이만 느껴져 세미나에선 ‘이게 말이 되냐’, ‘어디까지 믿어야 되냐’ 의견이 분분했던 걸로 기억한다. 멕시코 원주민 부족의 마법사으로부터 우리의 주변 세계를 형성하는 거푸집 역할을 하는 인식의 본질에 관한 특별한 훈련(꿈수행 기술)을 받는 내용인데, 5장을 읽다보니 그 ‘거푸집 역할’이라는 것이 혹시 ‘형식’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도 이러한 꿈꾸기를 통해 ‘형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걸까? 그러려면 먼저 형식을 알아야겠다.

 

“형식은 정신도 아니지만 사물 같은 것도 아니다. … 우리가 형식 안에 있을 때 거기에는 밀어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즉, 형식은 저항하는 방식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형식은 만져보기와 같은 앎의 방식을 통해 다룰 수 없다. 또한 형식은 유약하고 덧없는 것이기도 하다. 물살 빠른 아마존 강 상류에서 종종 형성되는 소용돌이의 형식처럼, 그것을 떠받치는 특수한 기하학적 제약조건이 사라지면 형식도 덧없이 사라진다. 요컨대 형식은 우리의 표준적인 분석 양식들로부터 대개 숨겨져 있다.” (44)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형식은 일반적인 실재의 일종이다. 저자 콘이, 형식은 규칙성, 습관, 패턴의 ‘기이한’ 성격을 가진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듯하다. 5장에서 콘은 숲의 생태학(비생명까지 포괄하는 자연 - 야생)과 인간의 경제학(인간이 그 안에 들어있는 자연 - 문화)이 동렬에 놓이게끔 하는 것이 바로 각각의 체계가 공유하는 패턴 혹은 형식이라고 한다. 생명 내에서 공유하는 것은 사고의 역할이었지만, 비생명까지 포함하는 자연에서는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으로서 ‘형식’을 제시한다. 그리고 1) 가능성을 제약하는 특정한 배치들이 창발하는 방식과 2) 그러한 배치들이 패턴으로 귀결되어 세계 속에서 확산되는 특정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기호작용처럼 형식도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창발하고 순환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1. 창발적 속성으로서의 형식. 창발 현상은 일반적인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성에 대한 제약의 결과다. 아마존 강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소용돌이는 강물의 연속적인 흐름을 조직화하는 순환 패턴을 보여준다. 이 패턴은 더 자유롭고 더 흐트러져 있으며 그래서 덜 패턴화된 강물의 흐름에 비해 더 제약되어 있으며 단순하다. 자신이 유래하고 의존하는 것(강물)과 구별되는 동시에 연속되는 것이다. 이는 형식의 위계적 논리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각각의 형식은 더 높은 수준에서 결합된다. 한 방향으로 겹겹이 중첩시키는 내포와 포식의 원리. 숲의 주재자의 경우, 중첩된 위계적 형식의 최정점에 위치하고, 그렇기에 다양하게 중첩된 형식들을 통합한다. 
  2. 형식의 확산성(공유가능성). 1) 위계는 형식의 확산에 결정적이다. 기호작용의 위계(아이콘<인덱스<상징)처럼 내포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작동한다. 콘은 타입(일반적인 것)과 토큰(예시)의 위계로 설명하는데, 다람쥐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아메리가와 루이사가 다르게 해석하는 모습에서 가시화된다. 아메리가는 새의 울음소리(인덱스)를 더 일반적인 어떤 것(인간적인 메시지)으로 생각한다. 인덱스로부터 상징을 구별해내는 형식의 위계적인 속성에 의거한다. 2) 형식은 리좀적으로도 확산한다. 콘은 형식의 놀이라 부르는데, 형식이 예기치 않은 아이콘적 연합을 창출하면서 노고 없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방식이다. 루이사가 새의 울음소리를 듣는 방식으로, 위로부터 부과되는 방식을 잠시 무시함으로써 그 소리가 다른 이미지와 공명하도록 놓아두어 그 자체의 의미작용을 펼칠 가능성을 열어준다. 콘은 이러한 아이콘적 연합의 연쇄가 (특정한 인간의 정신과 그 특정한 목적에 의한 순치에서 잠시 벗어난) 일종의 세계 내적 사고의 전형이라고 본다.  

그런데 형식은 자기-유사성이 확산되는 과정 속에서만 형식으로 현현하기 때문에 비가시적이다. 그래서 “승당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승당 밖의 사람들이다. 승당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럼 비가시적인 내부를 가시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콘은 차이를 분간하는 의식적이며 목적지향적인 주간 작업이 완화될 때에, 더이상 ‘효율’을 위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형식의 자기-유사성의 반복에 내맡겨진다고 한다. 그는 ‘꿈꾸기’를 이야기하며, 꿈이 내부와 외부 간의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어떤 경계를 소멸시킬 수 있는 방식을 가능하게 하고, 아이콘적 연합의 자발적이며 자기-조직적인 통각작용 및 확산을 수반한다고 한다. 

 

밤과 낮, 빛과 그림자, 내부와 외부, 일과 여가…. 우리는 많은 것에 경계를 짓는다. 이는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세운 경계가 너무 확고 부동해져서 고정된 패턴만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 경계가 진리인양 그것을 기준으로 다양한 많은 것들을 배제하며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콘은 이러한 경계선이 뭉개진 비무장지대 같은 것을 창발시키자고 말하는 것 같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강물의 형식에 맡기면서 증폭될지도 모를 패턴들, 아이콘의 연쇄를 통한 확산들을 자유롭게 탐사해보자고. 그리고 꿈꾸기야말로 자신이 속한 형식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며,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간적인 사고 형식이고 따라서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의 핵심에 있는 사고 형식이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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