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우승을 차지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 (<아젠다> 16호/ 2021년09월 / 뭐든지리뷰)

관리자
2021-09-2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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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전태일 힙합 음악제>.

전태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힙합 음악제로,  재작년의 1회에서는 1차 온라인 예선 때 탈락했었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의 10주기를 추모하며 그분의 말씀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를 주제로 한 올해에는 온라인, 실연심사, 본선을 뚫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집에 올 때마다 보이는 트로피 덕에 아주 헤벌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래퍼들의 현실

 

 

우승도 좋지만, 나에겐 여러 동료 래퍼들을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총 12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본선 진출자들이니만큼 실력은 모두 출중했고 19세부터 3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으며 음악 스타일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 음악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이건 아마추어 래퍼들이 처한 현실의 조건이다. 주 6일 알바를 뛰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작업하거나, 쌀국수집 매니저로 있으면서 매일 9시에 퇴근하고 새벽까지 작업하는 일상. 아니면 빚을 져가며 앨범을 만들고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안정한 직업이고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돈 많은 래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언젠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트렌디 래퍼’, ‘언더 래퍼’, 그리고 ‘아마추어 래퍼’

 

음악제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을 쓰게 했는데 그 소개 문구에 ‘반년 뒤에 성공’이라고 적어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 포부만큼이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탈색한 머리, 팔 쪽에 살짝 보이는 타투, 새하얀 재킷 위로 흔들거리는 화려한 목걸이……. 마치 이미 ‘성공한 래퍼’처럼 보였다. 그는 홍대 쪽에 살며 크루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주로 ‘오토튠’을 사용하는 ‘요즘 스타일’의 래퍼였다. 랩도 음계를 잘 사용하며 트렌디하게 뱉고, 그의 친구는 본선 무대에서도 ‘오토튠’을 사용하는 등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마치 홍대 소공연장이나 <쇼미더머니>에서 볼법한 스타일이었다.

 

반면 소개 문구를 ‘053’이라고 간결하게 쓴 분도 있었는데, 자신의 출신인 대구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래퍼였다. 그는 자기가 유일하게 나온 컴피티션(대회, 경연)이 <전태일 힙합 음악제>라고 말하며, <쇼미더머니>를 보이콧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랩이라든지, 화려한 기교와 퍼포먼스보다는 정말 ‘랩’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듯한 가사가 인상적인 분이었다. 그 분은 또 대구의 많은 ‘언더 래퍼’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거나 회사 없이 스스로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등 이미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모습에 제일 가까웠지만, 벌이는 활동에 비해 수입이 거의 없으니 빚을 내가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래퍼는 ‘용산에 용 산다’라는 소개 문구로, ‘아재’스럽다며 놀림 받은 래퍼다.(사실 난 되게 재밌는 라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홍대에 몰려다니는 래퍼들과도 알고 지냈지만 트렌디한 스타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른 동료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좀 더 솔직하고 담백한 가사들을 담은 앨범을 만들었다. 나이 서른 먹고도 알바를 하며 음악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이라든지, 래퍼들이 비싼 차를 자랑할 때 친구들과 렌트카를 빌려 여행 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이야기라든지, 친구들과 옥탑방에 모여 떠들고 고기를 구워먹는 이야기 등등……그러나 여전히 알바로 연명하는 삶이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같이 도와주고 힘내주는 동료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이번 음악제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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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포함해 경연에 결선에 올라온 열두 명 모두 각자의 자신만의 특성(차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어떤 래퍼로 정의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트렌디 래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우직하게 힙합의 멋을 추구하고자 하는 ‘언더 래퍼’,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한국 힙합 담론에도 낄 수 없는 ‘아마추어 래퍼’들이다. 이런 분류와 명칭을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구분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힙합의 이분법을 벗어나, 다양성의 힙합으로

 

이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힙합씬에 작용하는 일종의 권력구조나 분위기, 이데올로기 같은 게 분명히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래퍼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특정한 방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오글거린다고 말하는 래퍼가 힙합퍼에겐 멋있어 보이는, 힙합에서만 통하는 ‘멋’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래퍼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힙합’이라는 문화가 가진 특성을 통해, 이미 성공한 래퍼들의 선례를 통해, 그 ‘멋’을 재현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게 되고, 그게 곧 ‘원래의 자신’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특정한 ‘멋’만 힙합의 담론으로 이야기되고, 랩이나 힙합을 새롭게 해석한 무언가는 ‘힙합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면서 그 담론에조차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한 긱스의 ‘Officially missing you’는 대중들의 입맛을 의식했다는 이유로 힙합 취급을 받지 못했고, 긱스의 래퍼 ‘릴보이’는 ‘언더 래퍼’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따돌림을 받았다. 그런 맥락에서 <전태일 힙합 음악제>는 ‘언더 래퍼’나 ‘아마추어 래퍼’들에게 조금 더 유리한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이라는 키워드가 갖고있는 어떤 진중함이나 가사의 메시지가 중요해 보이는 분위기는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었지, 결코 절대적인 실력에서 월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힙합씬에 깔려있는 권력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소수자들의 화합과 저항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게 힙합이니만큼, 우리는 계속해서 ‘힙합이 아닌 것’이나 ‘아마추어’라고 퉁쳐오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그들도 떳떳하게 ‘힙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정된 ‘멋’이 아닌 각자들의 차이를 녹여낸 음악들을 만들고, 들어야 하며, 그들이 특정한 래퍼로 포섭되거나 음악을 포기하지 않도록, ‘아마추어’들끼리 뭉쳐야 할 것이고, 그들을 주목할 수 있는 미디어나 대회가 더 많이 열려야 할 것이다. 내가 받은 상금도, 열두 명의 래퍼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근근이 살아가는 만큼 상금 전부를 쏟을 순 없겠지만, 상금 일부가 마중물의 역할을 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IMG_9672.JPG

 

 

 
 
 
길드다의 리뷰 코멘트!
 
└ 김고은(고은) : 언더 래퍼였기 때문에 <전태일 힙합 음악제>에서 유리했다는 평가가 날카롭네요. 그런데 '언더 래퍼'라... 생중계를 보며 코코팰리 코인을 탑승하려던 길드다의 꿈은 저 멀리...(?)
 
└ 그냥명식(명식) :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의 ver. 코코펠리는 지금부터 시작! 
 
└ 석운동(지원) : 이게 힙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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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21-09-22 16:33

    힙합~!!!

  • 2021-09-23 14:08

    오~ 상금 일부를 마중물로..

    <증여론> 읽은 코코펠리!!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멋져요!! 👍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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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20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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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18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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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조회 167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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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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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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