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ぎらい』5장 후기

당근
2021-05-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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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ぎらい』(우에노 지즈코)

 

이제까지 남성이 생산한 여성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여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욕망, 즉 남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남성의 정체성은 남성의 발화를 통해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곧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곳엔 자신은 여성이 아니라는 다짐만 있기에.

 

5. 아동성학대자의 여성혐오.

아동 성애자에게 동정과 이해를 보이는 후시미 노리야키에게 우에노 지즈코는 말한다. 섹스엔 그저 공적섹스와 사적섹스가 있을 뿐이라고, 자기 안에서 욕망이 완결되는 사적섹스와, 섹스를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공적섹스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섹슈얼리티는 ‘다리 사이’가 아니라 ‘대뇌 안’의 작용이며, 무엇이 성욕의 장치가 되는 가는 문화마다 개인마다 다르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오리지널 할 수는 없다. 그저 각 개인의 문화에 의해 학습된 ‘기성품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기 식의 버전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리고 욕망이 ‘연예’라는 관계 망상을 판타지로 수반하고 있을 때조차 욕망 그 자체는 개인 내에서 완결되는 것이기에,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 수 있다.

 

‘성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에 대한 깊은 동정 뿐 아니라, 범죄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억누를 수 없다’던 후시미는 범죄자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면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 사건의 용의자 K군에 대해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누구든 상관없으니 나이가 어린 아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었던 아동 성애자에게 여전히 동정심을 가질 수있을ᄁᆞ.

 

욕망을 행동으로 옮긴이들은 바로 아동 성학대자들, 성범죄자들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어린아이를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까? 자신을 학대한 남성의 동기를 이해하고 싶은 뿌리 깊은 욕구가 작가 슐츠를 움직였다. 그들이 적어도 피해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것을 자각하길 바랬다. 그러나 가해자들 대부분은 피해자의 고통을 과소평가하려했고, 사실은 피해자가 그것을 반기고 있다는 ‘고의적인’ 착각을 하려 했다. 사실 이것이 그들이 죄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긴 하다. 그들의 동기는 섹스와 사랑과도 관계없었다. 단지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던 거다. ‘죽일 것인가, 섹스할 것인가’하는 선택밖에 없었고, ‘성 학대에 집중한 덕택에 살인 같은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됐다’고 생각하는 가해자들도 있었다. 왜 그 대상이 아이들일까? ‘아이들한테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니까. 쉽게 꼬여내고, 뜻대로 할 수 있으니’였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무력한 타자의 신체를 이용하고, 집착하고, 지속적으로 제압하며, 심지어 아이가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믿고자 했다. 어디에서 많이 본 관계이다. 강간이나 성추행, 가정폭력에서. 그리고 이성애 남녀 사이에서도. 후시미가 ‘28세, 남성 소년애자’와 자신의 차이가 ‘종이 한 장’의 차이며,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고 했을 때, 정확한 표현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성욕, 성행위, 성관계는 ‘보통’의 성관계에 한없이 가깝다. 남성 지배적 성관계 말이다.

앞에서 세지윅은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는 남성 간 연대를 성립시키는 분리하기 힘든 한 쌍이라고 했다. 남성이 남성임을 인정을 받으려면, 호모소셜한 집단의 일원이 되어, ‘여자가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성을 소유’하는 것. 여성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성적 주체가 되느냐, 성적 객체가 되느냐 하는 비대칭성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점하는 것’ 즉 성적객체가 되는 것은 ‘여성화된 남성’의 기호가 된다. 즉 동성애자 남성이다. 동성애자 남성이 호모소셜한 집단에 섞여 있다는 것은 성적욕망에 의해 대상화될 위험, 즉 남자가 ‘남자됨’으로부터 전락할 위험을 내포한다. 그래서 남성 집단 내에서 호모포비아는 지켜야할 엄격한 룰이 된다. 하지만 호모소셜한 집단이란 동시에 호모 에로틱한 집단이기도 하다. 남성이 여성화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동성애 행위를 실천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소년애’이다. 소년들은 쾌락이 아니라 존경과 애정에서 연장자에게 자발적으로 신체를 바쳤다고 여겨졌다.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는 아동 성학대자의 판타지와 상당히 닮아 있는 듯하다.

 

남성됨이라는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침범당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타자를 성적으로 제압하는 것, 그것을 위해 무력하고 저항하지 않을 상대를 고르고, 심지어 상대가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믿으려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동 성학대자이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소심하면서 취약한 남성됨의 아이덴티티 소유자들이다. 자신의 남성됨을 입증하기위해, 자신의 지배력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은 아동 성학대를 통해 여성혐오와 호모포비아를 실천하고 있다. 여성혐오, 호모포비아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댓글 2
  • 2021-05-30 20:54

    댓글이 늦었습니다. 처음엔 어려웠었는데 다시 보니 정리가 좀 됩니다. 감사합니다.

    • 2021-05-31 22:39

      인류가 문명을 가진이래  힘과 부의 집중은 남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계층이 생기고 그리고 계급간의 결혼으로 부와 권력은 계승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억압받고, 그나마 그중에 조금은 경제적 여유를 가진자들에 의한 변화는 곧곧에 혁명과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자들은 화초처럼, 꽃같이 사는것이 아니고  ,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제손으로 일하고 돈벌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젠 잘못된 가정구조, 사회구조를 변화하고 인간으로서 여자도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인간답게 대접받고 대우하며 살고자

      하는 분위기가 곧곧에 일어나고 있네요. 여자가 투표권을 가진것도 얼마 되지 않은 역사이니 이만큼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고 사회를 보는 눈이 생기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여자들이 곳곳에 있으니 이제 함부로 여성혐오, 아동성학대등 변태적인 행동들은 점차 줄어 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한 일들도 일어나지만 예전에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에 비하면 지금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미니즘이 여성해방운동이 아니라 인간됨에 남성 여성 구분없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서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일임을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옆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변화해야 할 일이니 멈추지 않고 계속되길 바랍니다. 

      애쓰셨어요.  다들 힘들고 어려운 시기 멈추지 않고 줌으로 함께해서 좋아요. 모두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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