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3> 히로시마 내 사랑(1959)

청량리
2020-11-22 21:57
1246

<영화와 역사>

잊어야 하는 것을 기억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1959) | 감독 알랭 레네 | 주연 엠마누엘 리바, 오카다 에이지 | 90분 | 청불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된 것이다. 이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여자는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온 히로시마에서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전부지만,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혹은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부부클리닉 드라마가 아니다. 알랭 레네 감독은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시간’이라는 관점을 통해 묻고 있다.

 

히로시마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남자. 그들에게 공유되는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이란 머릿속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실은 몸에 새겨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뒤엉킨 남녀의 몸 위로 (히로시마 원폭)가루가 떨어지는 몽환적인 첫 장면을 기억하자) 그래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불현 듯 ‘죽어있는’ 느베르의 첫사랑을 떠올린다. 여자가 온몸으로 기억하는 시간(사건)은 14년이라는 망각의 껍질을 뚫고 현재로 올라온다.

당시 프랑스 지방소도시 느베르에 살았던 여자의 첫사랑은 아니러니하게 독일군 병사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느베르의 주민들은 그 병사를 잡아 죽이고, 여자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지하실에 감금(보호)한다. 그녀는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절망의 시간 속에서 그 독일병사도 차츰 잊히고 만다.

어느 날, 여자가 독일병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생각한 마을주민들은 그녀를 풀어준다. 지하실을 벗어난 여자는 무작정 느베르를 떠나 파리에 도착한다. 여자가 그곳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느베르의 죽음(개인의 기억)에는 무관심해야 한다. 그때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제 그녀에게 느베르는 히로시마의 죽음(집단의 역사)으로 대체된다.

 

남자 : 당신은 기억력이 좋지 않아.

여자 : 당신처럼 나도 망각과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남자 : 프랑스에서 당신에게 히로시마는 어떤 의미였지?

여자 : 무관심, 무관심이라는 공포.

 

영화 속에서 역사는 선전의 도구이거나 재현적 배경으로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안에 개인적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집단적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영화 <벌새>(2018)에서 1994년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이기도 하지만 중2 은희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물리적 붕괴가 은희의 관계 붕괴와 맞닿아 있다고” 김보라 감독은 말한다.

영화의 초반,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가 ‘기록영상’으로 보이고, 그것을 ‘재현’한 박물관의 모습 위로 여자의 내레이션이 오버랩 된다. 이제는 히로시마를 알 것 같다고 하는 그녀에게, ‘목소리’는 ‘당신은 (아직) 히로시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꾸한다. 이 목소리는 사랑에 빠진 그 남자의 것이 아니다. 원폭 투하 당시 그 역시 징집으로 히로시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것인가?

 

남자는 여자에게 느베르에 대해 묻는다. 14년 전, 독일병사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으나 전쟁 속 비극적인 죽음으로 여자는 느베르를 기억 아래에 묻는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 또다시 운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여자의 느베르는 현재로 깨어난다.

여기서 두 가지 가정을 해 본다. 만일 여자가 느베르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파리에 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영화를 찍으러 히로시마에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여자가 히로시마에서 운명의 사랑을 만나지 못 했다면. 여자는 느베르를 떠올리지 못 했을 것이다. 개인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서 언제나 망각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잊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기억은 기록으로 ‘재현’되지 않고 현재에 되살아난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 앞에서 처음으로 느베르에 대해 말한 것을 듣고 기뻐한다. 그는 무엇에 대해 기뻐하는 것일까?

 

 

그러나 남자와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온 여자의 표정은 이상하다. 여자는 거울을 보며 (남자를 향해) 혼잣말을 한다. “(느베르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자의 독백은 히로시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자에게 말했던 그 ‘목소리’와 같다. 뒤이어 여자는 자신이 망각의 늪에서 느베르를 건져 올렸다는 사실에 놀란다. “당신이 내 안에서 아직 죽지 않았는데, 난 오늘밤 당신을 배신했어요. 우리 얘기를 할 수 있었어요.” 혼란스런 여자는 다시 밖으로 걸어 나간다.

여자는 히로시마의 새벽거리를 헤맨다. 영화는 히로시마의 거리와 당시의 느베르 거리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여기 히로시마에 살 거예요. 너무 슬퍼요.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나 프랑스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여자는 히로시마를 떠날 것이다. 여자는 동시에 자신이 떠났던 느베르를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망각의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자의 마음은 조금씩 차분해 진다. 뒤따라온 남자, 히로시마에 머물러 달라고 애원하자 여자는 뭘 위한 시간이냐고 묻는다. 남자는 알기 위한 시간이라고 답하지만, 여자는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로 알기 위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알게 되진 않는다는 뜻일까?

박물관에 전시된 기록영상과 전시물로는 히로시마를 알 수가 없다. 그건 집단의 기록으로서 역사를 재현한 것이고 그래서 늘 같은 내용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히로시마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불륜이든 운명적 사랑이든) 개인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망각의 순간을 거치게 된다.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잊고 산다. 또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 여자는 살기 위해 느베르를 도망쳤고 잊어야 했다.

 

 

여자가 프랑스에 살면서는 잊었던 느베르의 죽음을 멀리 히로시마에 와서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우연적으로 만난 사건 때문이었다. “저 산 너머에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동물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사는 마을이 있다.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다 잊었지만, 사랑했던 이들은 다시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 수 있다. 기억 못하겠지만 기억해”(영화 <나비잠>(2018) 중에서) 잊힌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기록이 대신하지만, 어쩌면 개인의 기억만이 현재 속에 되살아난다. ‘기억 못하겠지만 기억’하고 있는 그런 시간들. <벌새>가 호평을 받는 이유 중 하나도 1994년을 ‘응답’하는 방식으로 소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죽음을 마주했던 느베르와 히로시마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랑이다. 밀양이 강정마을을 만났듯이. 그러나 그 사랑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매번 다른 사건으로 다가온다. 여자가 잊어야 했던 것, 그러나 기억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

 

댓글 1
  • 2020-11-24 15:10

    오랜만에 최인훈선생님의 <광장>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들었어요.
    광장과 밀실이 다른 공간이 아니라는 것...
    큰 밀실이 곧 광장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광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밀실은 존재할 수도 없다는 의미로도...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가 또 이렇게도 들리더라구요.
    인간 삶에서 둘은 정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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