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읽기 <1984> 세번째 메모 - 윤수민

윤수민
2020-11-17 19:11
259

 

영웅에 관하여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나는 이 소설과 함께 윈스턴은 빅브라더를 사랑했노라고 마지막 문장이 쓰여져있다. 결국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들 이전의 수많은 사상범들처럼 당에 굴복하고 만다. 이 책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자 전개를 이끌어나가는 이 윈스턴을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영웅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폭력 및 전쟁과 결부되어 있다. 가장 큰 희생, 즉 자기 목숨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을, 하지만 무엇보다도무방비의 공동체를 구했을 때 영웅은 영웅이 된다. 영웅의 희생 덕에 재앙이나 패배를 면한 공동체는 그에게 생전에는 명망으로, 사후에는 영예로운 기념으로 감사한다. 그러나 윈스턴은 지금껏 영웅이라고 불려져왔던 이들과는 다르게, 어떠한 공동체를 구한 것도 결국 승리를 한것도 아니다. 그의 행동은 어쩌면 소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텔레스크린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어 일기를 쓰거나 사색에 잠기고, 사상 경찰의 눈을 피해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노동자들의 본거지에 가서 옛것의 추억과 향수를 취하는 것 뿐의 행동을 하였다. 대단히 작고 사소하고 미미하다. 그가 해왔던 일들마저 당이 7년동안 계획해온 일이라는 것. 400쪽이 넘는 페이지를 다 넘기고 나서는 골든스타인도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인물이지 않을까 하는 허무함을 느낀다. 윈스턴 이후의 오세아니아는 여전히 빅브라더와 당의 체제 안에서 굴러가고 있다. 아이들은 세뇌당해 자신의 가족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점점 언어들은 줄어간다. 감정은 메말라가고 적을 향한 공포와 증오만 남는다. 바위에 계란을 치면 계란이 부서지더라도 흔적은 남을 것이라는 구절도, <1984>의 세계에서는 흔적마저 깔끔히 지워져버려 바위만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의미로 보았을 때 그는 영웅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윈스턴을, 그리고 줄리아와 수많은 사상범들을 우리가 아직도 읽고 있고 고전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그들이 지금껏 영웅이라고 불려져왔던 수많은 인물들과 다르게 매우 소극적인 반항을 했음에도 그들을 영웅이라고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그들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우리의 세계를 조금이지만 변화시켰고 구원했는지도 모른다.

 

 

노동자와 작은 존재들

 

빅브라더와 당은 노동자, 즉, 무산계급은 열등한 존재이므로 간단한 규칙을 적용해서 '짐승'처럼 다뤄야한다고 사고를 훈련시킨다. 이들의 존재를 격하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에 호응하도록 만든다. 지금 우리의 세계도 그러하다. 노동자와 노동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토대가 되는 이들을 부정적인 견해들로만 바라본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출퇴근에 불편함으로만 바라보고 비난한다. 아이들의 점심을 굶기냐며 항의한다. 너무나도 만연하다. 나 또한 열일곱(고1) 학교에서 문제 공감 프로젝트에서 노동을 주제로 잡아 진행하며 이를 잠시였지만 체감할 수 있었다. 건네는 팜플렛이 바닥에 떨어지고 툭툭 거절당하는 손들을 바라보며,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단 한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타인의 일로만 생각하며 지나쳐갔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느꼈다. KTX해고승무원분들의 부스 옆과 삼성서비스노조의 고공농성 옆에 항상 구의역 김군의 죽음과 포털사이트의 메인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잊혀지고 마는 수많은 죽음들이 서있었다. 아픔을 느낀 사람들만이 타인의 아픔에도 함께 아파하고 눈물흘리며 외칠 수 있음을 그 때 깨달았다. 그렇게 이어진 연결과 연결 속에는 분명 연대가 있고, 그 연대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조지 오웰도 윈스턴의 입을 빌려, 골든스타인을 가장한 오브라이언의 입을 빌려 몇번이고 말하고 있다.

 

그 시작은 노동자들의 외침을 듣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외침이 짧은 울림이 아니라 서로를 잇고 이어 길게 외쳐지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에 있다. 또한 조지 오웰이 말한 무산계급은 노동자 뿐만 아니라 사회 속 작은 존재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시받고 핍박을 받고 있는 모든 존재들. 여성을 말하며 여성이 아닌 다른 성들을 이야기하고, 이들을 이야기하며 동물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작은 존재들이 더이상 깎아내려지지 않고 그 존재 자체로 세상에 설 수 있을 때 오세아니아와 이 세계의 지배자들의 억압은 붕괴될 수 있다.

 

 

단상들

 

-골든스타인의 저서에서 설명되는 오세아니아의 현 체제와 <시피엔스> 속 제국주의와 혁명에 관한 설명의 맞닿음

-박지원이 허생전을 통해 말하는 유토피아 (지식조차 없고 책을 태워버리는 것)

-스마트 기기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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