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동아리 26차> 드디어 혼자다

우연
2020-11-16 18:40
506

어제 저녁부터 일이 바빠, 몸이 피곤하여, 일상의 고단함 등으로 일행들은 오늘 산행의 불참을 알려왔다.

이번 주 내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날도 꾸물꾸물하여 잠시 나도 가지말까 생각했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새벽 일과를 마치고 늦가을 아침햇살아래 커피나 마시고 오자하며 길을 나섰다. 나서기가 힘들지 일단 산에 들어서면 몸이 한결 가벼워짐을 알기에.

등산복을 입고 길을 나설 때면 빤히 나를 쳐다보는 얼굴이 있다. 오늘은 시간이 일러 아직 잠자리에서 꾸물꾸물이다. 같이 갈래? 나의 한마디에 온 몸으로 설램을 나타낸다. 따듯한 물을 챙기고 일회용 커피도 챙기고 춥지않게 입고 길에 오른다. 숱하게 혼자 오르내린 산길이건만 오늘 늦가을 이른 아침의 산행이 새삼스럽다. 지속됨이 중요한 것인가. 26차의 중단없는 산행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엄밀히 말해 혼자는 아니다. 그래, 너라도 같이하니 좋구나.

가을이 지나가는 산길은 이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얼마 전까지 화려했던 단풍은 땅에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휑하다. 肅殺之氣.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지나간 것은 가차없이 쳐내버리는 자연의 가혹함.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수북히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지않게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며 산길을 걷는다. 줄이 없어 몸이 자유로워진 우리 집 강아지는 이미 저만치 앞서간다. 떨어져 쌓인 낙엽 속에 코를 묻고 연신 냄새를 맡는다. 얘도 낙엽 냄새가 좋은 걸까. 눈이 온다면 그 냄새도 좋아하겠지. 자유롭게 뛰어노는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겁다. 앞서 뛰어가다 가끔씩 돌아보며 뒤처지는 나를 확인한다. 네가 즐거우니 그것으로 되었다. 이렇게 뛰어놀고 얘는 오수를 달게 즐기겠구나. 네 처지가 가끔 부럽기도. 아무 생각없이, 아무 고민없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내 머리 속은 왜 이다지도 복잡한 것인지. 황량한 가을 숲 속,이른 햇살에 나는 어찌할 바 몰라한다.

첫번째 도착한 정자에서 바라본 하늘은 뿌옇다. 오늘 미세먼지가 심한가보다. 다소 쌀쌀하더라도 깨끗한 하늘이 좋아. 

가는 길에 본 파란 나무. 얘는 뭔 생각으로 혼자 푸른 것일까. 찬바람의 기운을 혼자 느끼지 못하는 돌연변이인가. 분명 상록수는 아닌데. 자연에도 가끔 괴짜들이 있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내 스스로의 기운으로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남들 다 누렇게 바래지고 낙엽 떨군다하여도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 허나 곧 닥칠 추운 겨울  홀로 더욱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할게다. 제 때 낙엽 떨구지 못한 그 댓가가 너무 모질지 않기를.

 

등산 동아리가 꾸려지고 처음으로 1인 산행이 이루어진 날이다. 난 그 인물이 기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사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ㅎㅎ

댓글 7
  • 2020-11-16 19:07

    ㅋㅋ 글쿤요. 우연님이 일인 산행을 실현하셨구랴.
    지금 기린님은 청량리 카메라 앞에서 "안녕하세요~"를 연발하며, 연기 중입니다.

  • 2020-11-16 21:15

    짝짝짝~ 잘~ 하셨습니다~~~ 담주에 제가 동무해드립죠^^ 호두 너무 예쁘네요^^

  • 2020-11-17 07:10

    나갈때 빤히 쳐다보는 얼굴이 누굴까 했는데 똥꼬발랄한 댕댕이였군요ㅎ

  • 2020-11-17 09:11

    호두 예쁘다^^

  • 2020-11-19 10:19

    둘이네~

  • 2020-11-19 22:58

    호두야~ 고마워~♡

  • 2020-11-23 13:34

    호두가 있어 너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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