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親복습단> 논어글쓰기 9회 선한 사람을 따르기 어려운 까닭

기린
2020-10-23 23:47
3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중에 선한 사람을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가려서 나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子曰 :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술이,21)

 

 공자님은 옛 것에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줄만 알았는데 사람한테서도 배우기를 즐기나보다. 세 사람이 모였을 때도 선하고 불선한 행동을 가려서 자신의 행동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공자님에 대해 후대의 주석가들은 일상에서도 배우기를 일삼은 호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에서 선한 사람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 더구나 선(善)을 다르게 해석하는 용례도 있다.

 

 예를 들어 선(善)은 잘하다로 해석되기도 한다. 즉 공자님은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면 그에게 혼자서 다시 불러보라고 한 다음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고 하셨다.(子與人歌而善, 必使反之, 而後和之) 노래를 잘 부른다는 뜻으로 선(善)을 해석하니 착하다나 어질다는 도덕성을 가리키는 의미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위의 문장도 그렇게 해석해보면 잘하는 사람을 가려서 따라하고, 잘못하는 사람을 보면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고쳐야 한다. 두 가지 경우모두 어렵지만 나는 남이 잘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더 어렵다. 왜냐하면 남이 잘못하는 것은 훨씬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그 잘못을 보고 나의 행동을 돌이켜 조심하려는 노력을 해 볼 수 있다. 물론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생각이 좀 더 복잡해진다. 왜 그럴까? 또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사는 공동체에는 유능한 사람이 참 많다. 그 중에 공동체에서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일순위로 호명되는 친구가 있다. 그녀가 마이크를 잡으면 행사가 두 배로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그녀만 읽을 수 있는 메모 노트가 있다. 처음에는 뭘 저렇게 적고 있을까 의아했는데 그녀와 회의를 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행사 준비와 관련하여 자신이 챙겨야 할 것들의 목록이었다. 큼직큼직한 글씨로 (그녀는 깨알같이 쓰는 메모는 취급하지 않는다) 노트를 몇 바닥이나 채우며 해야 할 일을 체크한다. 회의가 끝난 후에도 혼자서 그 메모를 보충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행사 당일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유머러스한 멘트, 지루한 틈새를 공략하는 깜짝 선물시리즈(그녀만의 픽으로 준비한), 겉도는 이들까지 챙기는 섬세한 진행으로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런 능력은 타고난 재주가 발현된 것일까.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그녀의 성실한 노력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그 성실함은 함께 행사를 준비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살피는 마음이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노력이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닿아 감응을 일으키고 웃음으로 전염되는 순간. 그 때가 그녀가 잘하는 순간이고 곧 선(善)이 드러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노라면 나도 저렇게 따라해야지 하는 마음보다 나는 못한다며 물러설 때가 더 많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혹시 실수라도 할까 두려운 마음, 만사가 귀찮은 마음이다. 곧 사심(私心)이다. 이렇게 사심이 발동하면 될 일 도 안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공동체에 살면서 사심에서 벗어나 ‘여여하게’ 내 앞에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번 느낀다. 그래서 나는 잘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를 따라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댓글 7
  • 2020-10-24 09:31

    리인에도 비슷한 구절 있지 않나요?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전 "삼인행 필유아사언"도 "견현사제언"과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때 賢도 善도 德을 의미하는 것일거구
    문장의 의미는 돌아보는 것, 성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겠죠? 즉 '자기배려'의 중요성 혹은 방법을 말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재밌습니다. ㅋㅋㅋㅋ

  • 2020-10-24 11:32

    그렇죠. 우린 보통 문탁샘처럼 생각하죠.
    그런데 改之가 아닌 從之에 꽂힌 기린샘, 신선했어요^^

  • 2020-10-24 12:35

    전에 많이 인용되었던 구절인데 저는 무슨 이윤지 그 중에 사師 자를 굵은 글씨로 기억합니다. 어떤 누구를 만나든지 배우고 본 받을 게 있다는 말씀으로요.

    이번 글엔 밥 당번이 안보이는군요. 기린님이 많이 자제하셨어요. ㅎㅎ

    • 2020-10-24 18:43

      3.jpg

    • 2020-10-25 18:17

      ㅋㅋㅋㅋㅋ 영감님의 위트~~~

    • 2020-10-25 22:09

      ㅎㅎㅎ

  • 2020-10-26 08:11

    저도 선의 의미에대해 고민했는데 문탁샘 말씀하신 덕이라고 생각하니 좀 풀리는 듯하네요 기린샘 만이 가지고 계신 빛나는 덕을 좀 더 확장하는 것이

    이 동물의 정체는 뭘까요?
    마치 공자님도 웃는듯^^
    앞의 새털샘이 스머프비유에 의아해하다
    딱이네!! 온(따뜻 )도 해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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