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엔즈 1장 41쪽부터 끝까지 (번역총괄)

루시아
2020-08-08 17:58
238

41쪽부터 60쪽까지 1장 총괄 해석

40-42쪽 밭향

◦과거의 사실 사실이란 ‘실제로 일어난 일’ ‘현실에 존재하는 일’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이라는 것은 10분 전이라도, 100년 전이라도 그 때 그 장소에만 있지않습니다. 과거의 사실은 당연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존재하고 있지않습니다).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과거를 알려고 하는 것에는 기억이나 기록밖에 없습니다. 혹은 물질의 변화를 계측하여 추측하거나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제2차세계대전이 있었다던가, 메이지유신이 있었다던가, 몇년에 태어났다던가, 오늘 아침 빵을 먹었다던가......어떤것이라도(모두) 과거의 것이며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에는 기록이나 기억 (의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물적 거나 흔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에 의해 과거의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는 것도 인간의 생각입니다.물적 증거나 흔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에 의해 과거의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는 것도 인간의 생각입니다.‘위 속을 조사했더니 빵이 있다’. 따라서 빵을 먹은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 사람의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사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사실 그 자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기억이나 기록이나 과학기술을 구사하여 확인하였다고 하더라도 ‘빵을 먹었을 것이다’ ‘먹었다고 여겨진다’ ‘먹었음에 틀림없다’ .......라는 것이고, 추측・추찰의 범위를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아무리 많은 기록이 있고 생생한 기억이 많이 있더라고 ‘과거에 이러한 사실이 있었던 것 같다’ ‘있었을 것이다’ ‘있었다고 생각한다’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사실이란 그 장소 그 장소 그 순간 순간의 것입니다.

○ 현재의 사실 과거의 사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확인하거나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실 줄로 여겨집니다만, 현재의 사실은 어떻죠.현재의 사실이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런 것이 있다’, ‘이런 사실이다’라고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보이는 것, 지금 들리고 있는 소리는, 현재의 사실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보인다든지, 들린다든지 하지 않는 다는것은 어떤걸까요?‘이 방의 방문에 마주하여 복도가 있다’, ‘옆 방에 소파가 있다, 테이블이 있다’ 등등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지금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좀 전에 확실히 있었다’, ‘지금도 있음에 분명하다’라고. 이것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한 추측(자신 안의 일)을 말하는 것이죠. ‘A군은 지금, 동경에 살고 있다’, ‘이 길을 가면 편의점이 있다. 역이 있다. 다리가 있다’, ‘저 상점에는 사과를 팔고 있다’, ‘저 유원지에는 롤러코스터가 있다’ 등등, 사실인 것을 말하려는 셈일지 모르지만, 실은 자기 안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건 틀려, 사실은 이래’라고 주장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가 이런 저런 자기 안의 일을 말하고 있을 뿐인데 ‘사실은 이래’라고 서로 주장한다든지 합니다. 이것도 ‘내 안의 일이라는 것의 자각’ 없기 때문이죠.지금 보인다든지 들린다든지 하지 않는 것을 ‘사실은 이래’라고 잘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내가 볼 수 없는 곳의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요? 내 안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안의 일을 ‘사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7월 20일 /p.44~46 /꼭지

4 관념상의 사실화

⌜확신함⌟⌜단정 지음⌟이라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만, 확신하고, 단정 지으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감각이라는 자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받아들인 것을 ⌜사실⌟이라는 상황이 되게 해버린 것이겠지요. 결국, 자기 안의 것을 ⌜사실이다⌟라고 확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관념상의 사실화⌟라고 부릅니다.

달다고 느낀다면 →→ 사실, 단 사과다.

더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 사실, 더러워진 방이다.

자기가 그렇게 듣는다면 →→ 상대가 그렇게 말했다.

자기가 그렇게 보니 →→ 사실 그렇다.

소문을 듣는다면 →→ 그와 같은 사실이 있다.

뉴-스를 본다면 →→ 그와 같은 사실이 있다.

온도계의 수치로 →→ 실제의 온도는 ○○도다.

속도계의 수치로 →→ 실제의 속도는 시속 ○○키로다.

자의 눈금으로 →→ 실제의 길이는 ○○센티다.

기록이 있다면 →→ 그와 같은 사실이 있었다.

⌜자신이 받아들인 것이 사실∙실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실제를 잘 보려고,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생각주도⌟의 행동이 되지요.

안전하다, 위험하다, 안심이다, 불안이다, 득이 되었다, 손해를 보았다. 경기가 좋다, 경기가 나쁘다, 많이 있다, 조금 밖에 없다, 칭찬받았다, 비난받았다, 사랑 받았다, 미음을 샀다, 좋았다, 나빴다, 성공했다, 실패했다......라고, 자신이 받아들인 것을 ⌜사실이다⌟ 라고 하며 행동하지요.

이런 상태는, 자신의 생각에만 관심이 있지, ⌜사실∙실제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본인은, 사실∙실제에 관심이 있는 셈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받아들인 것이 사실∙실제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루시아46쪽 4째줄부터-48째줄 2째줄 까지

5.그렇게된 사회(생각한것을 현실화한 사회)❍적신호에는 서라(적신호에는 서는것은 왜일까?)라는 물음에는, 그 이유를 대답해보면, 일상적으로는, 적신호를보면, 그 이유를 인식하지 않아도, 서버리지요. 적신호에 서지않는 사람을 보면은 놀라는 사람 (왜 서지않을까?)라고 의문을 생각한다든지 합니다.적신호에 서지 않는 사람은 (왜그러지?)라는 의문스러운 생각을 해도 , 적신호에 서는사람에게는 (왜저럴까?)라고 의문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죠.적신호에서 서는 자신을, 왜, 서는것일까?자신의 감각으로 파악하고 있는 자신의 의사로 서있는 자각이 있잖아요?❍돈을 내다 상점에서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은, 돈을 지불하시 않으면 안되죠?급합때라도 계산대의 줄에 서서 돌을 지불해야만 한다든지, 계산대 사람이 가게에 없다면 점원에게 소리를 질러 돈을 지불해야하죠.돈을 지불하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뭐하는 사람인거야!)라든지,특별하게 본다든지 비난을 하던지 하잖아요.그런 사람은 그사람 의식에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자신은 자신의 의식으로 돈을 지불했다라는 것이라는거죠.왜, 돈을 지불하여만 하는것이죠.

5.그렇게된 사회 ‘생각한것을 현실화한 사회’❍적신호에는 서라‘적신호에는 서는 것은 왜일까?’라는 물음에는, 그 이유를 대답해보면, 일상적으로는, 적신호를 보면, 그 이유를 인식하지 않아도, 서버리지요. 적신호에 서지 않는 사람을 보면은 놀라는 사람 ‘왜 서지않을까’라고 의문을 생각한다든지 합니다.적신호에 서지 않는 사람은 ‘왜그러지?‘라는 의문스러운 생각을 해도 , 적신호에 서는사람에게는 ’왜저럴까?‘라고 의문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죠.적신호에서 서는 자신은, 왜, 서는것일까?자신의 감각으로 파악(인식)하고 있는 자신의 의사로 서있는 자각이 있잖아요?❍돈을 내다 상점에서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은, 돈을 지불하시 않으면 안되죠?급합때라도 계산대의 줄에 서서 돌을 지불해야만 한다든지, 계산대 사람이 가게에 없다면 점원에게 소리를 질러 돈을 지불해야하죠.돈을 지불하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뭐하는 사람인거야!‘(라고)라든지,특별하게 본다든지 비난을 하던지 하잖아요.그런 사람은 그사람 의식에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된다라는) 것이지요.자신은 자신의 의식으로 돈을 지불했다라는 것이라는거죠.왜, 돈을 지불하여만 하는것이죠.

사이엔즈 48쪽-50쪽/당근

◎ 법률이나 규칙은 어디에 있을까?‘빨간 신호에서 멈추다’ ‘돈을 지불하다’등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빨간 신호에서 멈추다’ ‘돈을 지불하다’는 것도 자기가 감각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 걸까? 어떤 걸까?

그리고 그때의 작동.메카니즘은 ’어떻게 된 것일까?‘를 조사해 보고 싶습니다.‘빨간 신호에서 멈추’기로 되어있다. ‘돈을 지불’하기로 되어있다고 받아들이는(인식하고있는) 경우가 많지 않겠지요? 자기가 그렇게 결정했다는 의미가 (것이)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뜻이 아니라(아니지만), 여기에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좌측통행을 하기로 되어있다.’‘여기는 주차금지가 되어있다.’ ‘몇시에 모이기로 되어있다,’ ‘당번제로 한다.’ ‘이렇게 결정하기로 되어있다’....등등, 예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끝이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ᄁ(까?)ᆞ, ‘그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자신만 인거라면, 맘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고 여기기 쉽겠지만, 자신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왜 빨간 신호에서 멈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ᄁᆞ?(것일까?)’라고 묻는 다면, ‘이 나라에서는 빨간 신호에서 멈추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왜 미성년자는 술을 마시면 안됩니까?’고 묻는 다면, ‘미성년자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되어있으니까’ 라고.

‘그렇게 되어 있다’ 것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의사였다는 자각이 있어야겠지요.

‘빨간 신호에서 멈추다.’ ‘돈을 지불하다’ ‘좌측통행을 지키다.’ ‘당번제를 지키자’는 것은 자신의 뜻이겠지요. 그러면 ‘여기서는 그렇게 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는 거겠죠. 누군가의 의지겠지요.

야생 50p 2째줄 ~ 52p 3째줄

‘여서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이 사회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이 회사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라고, 자기 자신 이외의 장소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빨간 신호에서 멈추는 것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일까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어디에 있는걸까, 라고 조사해본다면 재미있겠네요.‘규칙이나 결정이(정해진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실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요? ‘이 학교에서는 교복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규칙이 있다’고 말합니다만, 실제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요? 규칙을 정하거나 결정을 해도(만들어도), 그것을 누구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규칙이나 결정은 어디에 있는 것이지요. ‘규칙을 정했다’라고 말해도, 누구도 지키고 있지 않다면, ‘여기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사실, 규칙이나 결정이 (정해진것이)있다’라든가 ‘여기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도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자기 내부의 것이라고 하는 자각’이 없는 것에 의한 ‘관념상의 사실화’라고 생각합니다.한 사람의 ‘관념상의 사실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여기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 행동을 보고, 그 사회나 그 조직에 ‘그런 사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실제’가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생긴다(생깁니다). 그것은 개인의 생각이라기 보다도 큰 힘을 느끼고, 그 사회, 그 조직에서는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감각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규칙이나 결정이(정해진것이) 되어있어도,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은 어떻게 할까 생각해서 행동한다면, ‘여기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 하는 사실화는 생겨나지 않겠지만, 그렇게는 사회나 조직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벌칙을 정해서, 그것을 따르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사람은,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있다면, 그 사회나 그 조직이 ‘사실, 그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있는 사회’라는 것은, 집단에 의한 ‘관념상의 사실화’의 상승작용에 의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p52 단어와 해석 띠우

○ 시간과 시각‘관념상의 사실화’에 빠지기 쉬운 것의 하나로 ‘시간과 시각’이 있습니다.인간의 인식방법으로써,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시간의 흐름’을 인간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나타내려 했던 것이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시간도 시각도 인간의 생각으로 만든것(정해진것)입니다.해가 바뀐다거나, 날짜가 바뀌다 등, 모두 인간의 생각에 의한 것입니다. 2000년이라든가, 1월 1일이라든가, 일요일이라든가, 12시라고 하는 ‘시’가, 어딘가에 존재할 리가 없이, 모두 인간의 의식상의 것입니다.예를 들어, 서머타임을 만든 지역도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어제까지의 10시를, 오늘은 11시로 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는 ‘지금은 12시’ ‘오늘은 일요일’등이 사실인 것처럼 사용합니다.현대사회는, 예정, 일정, 기일, 시각표등 사실화한 시간이나 시각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해진 시간이나 시각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고 고정해서, 인간의 기분이나 개개의 속도보다도, 시간이나 시각을 우선해서, 그것에 맞춰 살고 있는 듯 합니다.

53쪽 7줄부터 -55쪽 끝까지(둥글레)

6 ‘좋은 것’ ‘나쁜 것’

일상생활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도덕이나(이라든가) 상식이 (이라것이)있습니다. 매너나(나든가) 모럴 등도 여기에 포함되겠지요. 법률이나 규칙 처럼 체계가(되어) 명문화되어있지 않더라도, 어릴 때부터 예의범절이나 교육에 의해, 도덕이나 상식을 배웁니다.약속을 지킨다, 빌린 것은 돌려준다, [사례]예를 표한다(감사의 말을 한다), 높임말을 쓴다, 인사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것을 말하면 안 된다, 하면 안 된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 ‘말하면 안 되는, 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 등등, 법률이나 규칙, 도덕이나 상식에 따르는 것이 ‘좋은 것’으로 따르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는 도덕이나 상식이 있습니다.일생생활에서 ‘좋은 것’ ‘나쁜 것’이 점하는 위치는 아주 큽니다. 되도록 ‘좋은 것’을 하고 ‘나쁜 것;은 하지 않도록 합니다. 행동의 큰 기준이 된다고도 말할수 있겠죠.그것은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자각’이 아니고 ‘좋은 것’을 하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을 하는 것은 나쁘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정말로 ‘좋은 것’ ‘나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있을까요?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요.‘이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혹은 ‘사람에게는 하면 좋은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기 보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바꿔 말하면, ‘선과 악’이라고 할까요?.

과연 이 ‘선・악’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을 까요?‘선・악’의 기준은 인간의 생각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 세상에는 ……’이라든가 ‘사람으로서……’라고 말하지만, 그런것 치고는 시대나 지역이나 민족이나 문화에 의해 ‘선・악’의 기준은 크게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좋지 않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좋은 것’이라거나, 옛날의 ‘악’이 지금은 일변해서 ‘선’으로도 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선・악’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해버리고 인간은 그 ‘선・악’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선・악’은 인간의 생각(사고)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인간의 사고(생각)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것은 아닌,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하고 있는 생각, 느끼는 것에 의해, 현실감, 존재감이 동반합니다. ‘선・악’도 또한 집단에 의한 ‘관념상의 사실화’를 서로 이어가는 작용에 의해 탄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밭향 56p

  1. 교육이 자각이 없는 사람을 만든다「자각의 결여」의 큰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 현대의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 교육에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사실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 일까 어떨까의 실상을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것은, 처음에는 지식으로서 들어가고(오고), 그 후의 여러가지 정보에 의해서, 자기 나름의 감각으로, 둥근 지구의 형상을 자신안에 이미지 시키고 있습니다. 지구를 밖에서 바라본 적도 없고 둥글다고 실감한 적도 없습니다. (바라보고 실감했다고해서 그것이 실제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明治유신이 있었다」「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다」「미국에서 911 테러가 있었다」등, 그것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어떤지, 나는 실제를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있었겠지만 자료나 교과서나 보도 등의 정보에 의한 것으로 사실 자체를 알 수는 없습니다.

뚜벅이 57쪽부터-58쪽 12줄까지

(수정해석)‘후지산의 높이는 300미터 정도이다’, ‘동경도의 인구는 십만명이다’, ‘미국보다 일본 쪽이 국토가 넓다’는 등을 들으면 그건 틀렸다고도 생각하는데(틀렸다라고 생각이 든다해도) 나로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들의 실제를 안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호흡을 하면 흉부에 있는 폐라는 장기에 공기가 들어가는 듯하다. 먹고 마시면 위와 장에서 소화 흡수되는 것 같다. 그렇게 실감하는 기분이 들지만, 내가 직접 본 것도 확인한 것도 아니다.(아니어서) 실제인가 어떤가를 알지 못합니다. (소화흡수라는 단어를 쓰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 합니다)‘자신의 생년월일을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당연하다’는 반응이 돌아오겠지요. ‘어떻게 아나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저렇게(여러가지로) 설명합니다. ‘어째서 그것이 자기 생일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태어난 날을 알고 있는 사람 따위 있을 리가 없겠죠.공부를 해서 지식을 얻는다든가, 이런저런(여러가지로) 정보를 얻게 되면 그것을 이해했다는 기분이 들고, 알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죠.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아도,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도, 사실·실제를 안 셈 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실제에 닿은 것도 아니고, 알지도 못 할 테지요.“자신은 실제를 알 수 없다”라는 자각이 있다면, 사람이 말하는 것을 옳다든가, 틀렸다라든가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내 안의 기억(지식이나 체험)이 사실을 파악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면 자식이나 정보를 얻거나 체험을 하거나 해서, 사실을 알았다 (라고)되어버립니다. 이것은 ‘관념상의 사실화’이지요.

꼭지 58쪽 13줄부터-60쪽까지

학교교육을 예로 들자면, 학교의 선생 자신이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을,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이것이 정해(正解)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메이지유신이 몇 년에 있었는가? 실제로 있었는가? 그런 것을 아는 선생은 한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소설이나 노래등도, 누가 만들었는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서 보았다⌟⌜누군가로부터 들었다⌟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를 아는 사람은 지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교과서를 만든 사람도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와 같은 교육에 의해 ⌜사실을 알고 있는 셈인 사람⌟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실제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결국, 자각이 없는 사람.

⌜자기 안의 것이(있다)라는 자각⌟이란, 바꾸어 말하면,⌜자신은 실제를 알지 못한다는 자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 ⇩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는

⌜알지 못하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상태

⌜알지 못하는 자신을 아는⌟것으로부터

⌜사이엔즈⌟가 시작된다.

루시아

61쪽부터-62쪽 2줄까지

8.천동설적인 의식으로부터의 벗어남

방이 더러운 것처럼 보인다든과, ‘방이 더럽다’라든가는 자신이 본것은 사실이다.(입니다).그것은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태양은 움직인다)라는 자신이 본것을 사실이다라고 하는것은 같은 모양이고, 천동설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합니다)한때는, 태양이나 별등의 천체는 움직이고, 그 지표는 움직이지 않는것이며, 천체의 중심있다고 믿었었던때가 있었다(있었습니다)..그리고 천체가 움직이는것에 의문을 품은 사람의 관찰, 관측등에 의해, 지구등이 자전, 공전등이 해명되고, 지동설이라는 것이 각별하게(세상에) 받아들여되어졌다.(졌지요)그러나 지구가 움직인다고 해명 되었을지라도(밝혀졌을지라도) ‘태양은 정지해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지동설이 정확하다라고 그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하지 않지요.그렇게 말하는것은 ‘지동설적인 의식’이며 자기가 보는것(본것)을 사실이라는 의식이라는 것이죠.방은 더러운것과 같다는 (나에게 보여지는것이다.)태양은 움직이는 같다는 (나에게 보여지는것이다.)

당근 62쪽 3줄부터- 63쪽 6줄까지

이것이 ‘인간의 생각에 있다는 자각’의 제 일보.

이것이 인간임의 필수요소라고 생각 합니다.맛있는 사과다. 더러운 방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나쁜 것이다. 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이 있다. 여기는 이렇게 된다...... 어느 것이나 ‘내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자각’ 없이, ‘사실 같다.’도 하는 것은 천동설적 인식 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 그렇게 들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받아들여 판단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인간의 생각에 있다고하는 자각’이 있다면, 이것이 맞다 라든가 이것이 사실이다고 단정하는 일도 없고, 또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인간을 판단하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전원이 일치해서, 그렇다고 생각해도, 그것도 인간의 생각입니다.

인간이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자각이 있으면, 그것에 반하는 사람을 틀렸다고 하거나, 대립하는 것도 생겨나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의 어떤 의견, 생각, 행동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 ‘ 받아들인 것이 있다는 자각’을 기초로 ‘왜 입니까?’ ‘어떻게 된 것입니까?’를 서로 검토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사이엔즈’의 시작입니다.

야생 63쪽 7줄부터-64쪽까지

  1. 사회나 인간문제의 근본원인

‘자각의 결여’ ‘관념상의 사실화’등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현재의 사회기구나 교육은, 이것들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있는 기구나 제도를 없애면, 문제는 해소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나 인간문제에 대해서, ‘왜일까?’ 그리고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라고, 과학적으로 탐구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탐구하는 중에, 역시 문제의 원인은, ‘인간은 이런 존재다’ ‘사회는 이런 데다’ 라고, 그것이 마치, 인간이나 사회의 실제인 것처럼 강하게 믿어 버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사회는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라는 탐구가 부족하여, 진보가 없는 인간사회를 반복하고 있겠지요.

더 나아가 거기로부터 ‘인간의 사고’가, ‘인간은 이런 존재다’ ‘사회는 이런 곳이다’ 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왜일까?’ ‘어떻게 된 것일까?’라고, 그 장치.메커니즘을 탐구해가니, 여기서 기술했던 ‘인간의 사고라는 자각’ 말하자면, ‘자신의 감각, 자신의 생각이라는 자각’에 초점이 맞춰져 온 것입니다

댓글 1
  • 2020-08-09 10:35

    처음부터 40쪽까지 해석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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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가자 지구, 인류의 위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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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p44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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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p41 단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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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77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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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ゆるく考える> p402~, 단어와 해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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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68p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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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일본어강독모집]<특집: 두 개의 전쟁, 하나의 세계> 평론 읽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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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ゆるく考える> p349~ 단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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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36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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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16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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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04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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