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4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편

겸목
2020-07-09 12:45
446

루틴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아! 나도 빨리 결혼해야 되는데…….’

 

어릴 때 아토피로 앓았다는 루틴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이 심해졌다. 학위를 따기 위해 이십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도,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생활의 막막함을 느낄 때도, 그리고 루게릭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은 특히 삼십대 초반의 루틴에게 혹독하게 기승을 부렸다. 피부과 약은 독해서 먹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다고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 발진은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흔적으로 루틴의 손가락 사이사이 껍질이 벗겨지고 다시 돋아난 우툴두툴한 자욱이 꺼끌꺼끌하게 만져졌다.

 

요즘 루틴은 예전만큼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으로 고생하지는 않는다. 심해질 기미가 보이면 미리 스테로이드제를 발라 초기에 진화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려 노력한다. 직접 밥을 해먹게 되면서, 잡곡 위주로 밥을 하고 반찬도 맵고 짜지 않게 간을 맞추니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걸어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다. 2년 전부터 시작한 인문학 공부로 틈틈이 책도 읽어야 해서 요즘은 결혼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결혼상대자에 대한 ‘이상형’도 없이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멋쩍어했다. 마치 ‘수능’을 치르듯, 결혼도 해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루틴과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 결혼하지 않은 친구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왜 하필 ‘시험’일까? 우리의 무의식이 혹은 고정관념이 결혼을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최근에는 원하지 않는 시험은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루틴도 그러한 입장이다.

 

나는 루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왜 루틴이라는 닉네임을 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삼십대 비혼 여성이 주류의 라이프스타일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행적으로 요구되는 스케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결혼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출산과 육아의 루틴을 살아가게 된다.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집장만과 노후대비의 루틴이 플랜b로 준비되어 있다. 적어도 이십대에 결혼을 해서 자식 둘을 낳고 기른 나는 그런 관행적인 루틴에 따라 살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기 위해 시간표를 새로 짜는 그가 부러웠다. 이런저런 계획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설렘을 숨길 수가 없었다(아! 나도 진작 생각을 좀 했어야 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해서도 루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절한 처방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루틴을 위한 ‘응원’ 정도. 그래서 나는 열심히 루틴을 위한 응원과 지지의 말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작품들을 뒤적였다. 헉! 그런데 이럴 수가! 문학작품에는 고통과 우울의 말들은 넘쳤고, 응원과 지지의 말들은 드물었다. 어떡하지? 난감했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아, 구르기 클럽

 

언덕에서 구르다가 가로등에 부딪혀 다리에 금이 간 현경씨는 구급차에서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슬기씨…… 제가 살게요. 맛있는 거.

(중략)

칠백집이라고 삼겹살집이 있는데, 맵게 무친 콩나물이랑 단호박 양파 버섯을 삼겹살이랑 같이 구워줘요. 알바생이 테이블 옆에 서서 정성껏 고기를 뒤집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면 우리는 그냥 먹기만 하면 돼요. 삼겹살을 다 먹으면 오징어볶음이랑 볶음밥도 주는데……

슬기씨……

네.

나 고기 안 먹어요. (「구르기 클럽」, 『문학3』 2020년 2호, 190~191쪽)

 

 

「구르기 클럽」은 최근 내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가슴이 아리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리고 생각 없이 웃다보면 어느 샌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히 ‘시트콤’스러운 작품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등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시트콤들은 단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나, 그런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꼬이고 꼬이는’ 에피소드 속에는 인생의 ‘희비극’이 반짝 빛난다. 유쾌함과 짠함과 뭉클함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시청자들은 똥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과 인물과 자신을 같은 입장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 어떻게 이 사람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이런 고통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만약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사유와 공감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같이 울고 웃게 된다. 더 나아가 저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노의 감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감정과 윤리의 문제를 연결하고 있는 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를 ‘시적(詩的) 정의’라고 부른다. 공감과 상상력 없이 정의를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언덕에서 구르다 가로등에 부딪쳐 다리에 금이 간 사람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구급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라탕과 삼겹살과 칼국수 가운데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내용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본다면, 다리를 다친 사람은 자신 때문에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본다면, 이 사람은 왜 언덕에서 구르게 되었을까 궁금하게 된다. ‘구르기 클럽’이라니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구르면……좋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경씨는 입고 있던 남색 플리스를 벗었다.

바닥을 온몸으로 구른다는 게 좋아요. 굴러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저는 바닥을 무서워했거든요. (194쪽)

 

슬기야. 너도 학교 언덕 말고……

엄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안전하고 완만한 언덕에서 한 번 굴러봐. 앞구르기든 옆구르기든 다 좋아. 오로지 구르는 것에 집중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갔을 뿐이야. (197쪽)

 

 

「구르기 클럽」은 명랑만화 같은 감성을 보여주는 콩트 같지만, 사실 ‘시적(詩的)’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의 주제는 ‘바닥’과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생의 바닥에 대한 이야기이고, 바닥을 친 사람들이 온몸으로 느낀 바닥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구르기 클럽’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이것을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의 좁은 길을 맨발로 걷다가 문득 굴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정말 일정하게 직선을 그리면서 좁은 길을 앞구르기로 계속해서 굴렀어. 구를 때마다 꼭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았어. 나의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 손들이 내 몸을 지그시 앞으로 밀어주는 기분이 들었어. (199쪽)

 

 

그런데 바닥은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게 아니란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고” “바닥으로부터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이라는 문장은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든다. 이런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급차를 타고 가며 삼겹살타령을 하든, 언덕에서 굴러 가로등에 부딪치든, 뭐든 괜찮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가의 ‘시적 정의’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 위로는 세상에 대한 긍정과 신뢰를 가져온다. 그렇게 울고 웃으면 못생긴 얼굴은 더 못생겨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런 게 세상에 대한 낙관이다. 소설은 ‘안산’과 ‘5년 전’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2014년의 사회적 재난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안간힘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체’ 할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울고 웃을 수는 있다. 상상력과 공감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부엌의 좁은 복도를 구르다가 벽에 부딪혔을 엄마의 표정을 상상했었다. 엄마에게 다시 찾아온 ‘힘’의 근원이 그 순간에 있을 것 같아서. 내 상상 속에서 엄마는 대부분이 무표정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입을 달싹거리는 엄마 특유의 곤란한 표정. 하지만 이제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 (200~201쪽)

 

 

내가 루틴을 위해 찾아낸 응원의 말도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이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그 현재를 살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일. 이것이 재난 이후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루틴에게도 나에게도 이것이 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루틴의 힘, 달려라 푸드 트럭

 

에타에 올라온 영상은 다행히 GIF 파일이라 현경씨의 비명 같은 건 들을 수 없었다. 영상의 제목은 ‘뀡은 제 머리로 종을 쳐서 은혜를 갚고’였고, 본문은 ‘사람은 가로등을 몸으로 쳐서 가로등을 켠다’였다. 조회수는 삼천, 댓글은 오백을 넘어 ‘이 주의 화제영상’에도 올라 있었다. 영상은 감악관으로 가는 언덕을 빠른 속도로 굴러내려오던 검은 덩어리가 가로등에 부딪히자 꺼져 있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지면서 끝났다. (187~188쪽)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의 가로등에 불을 켜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면서 정중한 에스코트를 받는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착각이다. 「구르기 클럽」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도 가로등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다소 황당하게 언덕을 굴러온 사람에 의해 고장 난 가로등에 불이 켜지자, 학생들은 학교커뮤니티에 영상을 올리고 재치 있는 댓글놀이를 이어간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인 듯 덕분에 밤에도 어둡지 않네요.”

 

루틴과의 대화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은 푸드 트럭이 등장했을 때다.

“친구들과 푸드 트럭을 해볼까 해요. 한 곳에 계속 있는 건 지겨울 것 같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푸드 트럭 괜찮지 않아요? 저 1종 면허예요.”

 

루틴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인생을 설계하다보니 함께 살 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할 일에 대해서도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간 학위를 따고 취직을 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이제 루틴은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정년까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수정해보고 있단다. 돈 버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써버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친구, 여행, 공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생활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푸드 트럭에서 게릴라콘서트 같은 것도 하는 거예요. ‘오늘은 한강에서 ‘푸코쇼’를 합니다‘ 홍보하고 인문학콘서트를 여는 거죠.”

“공부 많이 해야겠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할 것 아냐?”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예전에는 구경도 못해봤던 것들인데 재미있어요.”

 

식물학 박사인 루틴은 얼마 전에 <논어>를 공부하고 생애 처음 두 쪽짜리 에세이를 썼다. 그걸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논어>가 그렇게 감동적인 책인지 나는 루틴을 통해 배웠다. 나는 상상해본다. 루틴이 어두운 계단을 올라갈 때 센서등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책상에 앉으면 스탠드의 불이 탁 켜진다. 책상에는 푸코, 스피노자, 니체 등등 책들이 산처럼 쌓여간다. 내 상상의 가장 멋진 장면은 푸드 트럭을 운전하는 루틴의 모습이다. 루틴은 트럭이 고장 나도 당황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한 번 발로 찬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이다. 달려라 루틴, 달려라 푸드 트럭!

 

 

 

 

댓글 7
  • 2020-07-09 12:50

    나수경의 <구르기 클럽>은 창비의 새로운 잡지 <문학3>>(2020년, 2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수경 작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 2020-07-09 17:24

    이웃집 토토로가 아니라..
    이웃집 루틴이 우리에게 와서 얼마나 기쁜지!
    루틴을 위한 처방, <구르기클럽>!
    알레르기성 피부발전은 없지만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2020-07-09 19:09

    루틴에게서는 언제나 에너지가 뿜뿜 !!
    좋은 기운이 넘쳐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삶을 계획할수 있다는게 넘나 부럽네요.
    저도 생각좀 하고살걸 하는 후회가 막 밀려오지만
    나중에 후회안하려면 지금시점에서 생각좀하고 사는 건 어떤걸까싶은 생각이 동시에 밀려오네요.
    어려워요. 생각좀 하고 사는거!

  • 2020-07-09 23:38

    ‘직업으로 자아실현’해야하는 줄 알았어요~ 아하~! 뒤통수맞은 느낌?? ‘친구, 여행, 공부!’좋다~~~ ㅎㅎㅎ 달려라, 루틴! 응원합니다^^

  • 2020-07-10 15:44

    루틴의 상상을 응원합니다~~~~~

  • 2020-07-11 03:24

    루틴은 복도 많지~~
    바로 옆집에서 공부하고 친구도 만들고 ~
    구르기 클럽처럼 뭔 클럽이든 루틴하고 만들고 싶네요~~^^

  • 2020-07-16 10:11

    저도 저 느낌 아는데... 어둑어둑해질 쯤 가로등이 켜지면 에스코트 받는 느낌^^
    예전에 한강에서 맥주를 먹다가 가로등 켜지는 시간 맞추려고 계속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루틴에게 저도 '띵' 하고 가로등을 켜드리고 싶네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1종면허 나중에 채소장사라도 한다고 그것을 땄는데...
    뭔가 통해쓰~~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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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21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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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232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떨어지고 난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며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서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떨어지고 난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며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서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현민
2024.03.16 | 조회 162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249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25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01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29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35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36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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