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수업 맛보기: 道

동은
2020-06-04 23:49
418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길드다> 청년들이 <길위기금>으로부터 고료를 받으며 글을 연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동은의 한문은 예술'에서는 초등이문서당 <한문이 예술>의 과정을 세 번에 걸쳐 보여드립니다.

 

 

 

수업 맛보기: 道

 

0.

  보릿고개의 첫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계획에 차질없이 수업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까지 수업이 열리지 않았고, 결국 글 쓰는데 차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고민 끝에 마지막 글은 수업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가상의 수업을 상상하며 수업안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1. 오늘의 한자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바로 수업에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에서 알아갈 한자는 바로 ‘道길 도’입니다. 도(道)는 두 가지 한자가 합쳐져 의미를 나타내는 문자입니다.어떤 한자들이 합쳐졌을까요? 바로 쉬엄쉬엄 걸을 착(辶)과 머리 수(首)입니다. 이렇게 여러 문자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를 모았다고 해서 ‘회의’라고 합니다. 의미와 의미가 모여서 다른 의미를 가진 문자가 되는 겁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한자를 살펴보고 합쳐진 도(道)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2. 辶

  ‘쉬엄쉬엄 걸어갈 착’입니다. 이 한자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착(辶)의 다른 모습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길게 늘어나 있는 ‘辶’모양과 빗살무늬같은 이 ‘辵’모양이 같은 문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하나의 문자에 두 가지 모양이 있는 것은 착(辵)이 다른 글자와 결합하게 되는 경우 변형되는 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징을 가진 한자로는 扌(手), 氵(水), 亻(人) 등등이 있습니다.

 

 

 

辵의 갑골문

 

 

 

  착(辵)의 갑골문입니다. 우리가 갑골문을 보는 이유는 한자의 원형을 통해서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갑골문이 낯선 친구들은 더 아리송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 덧붙여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은 사거리 길을 나타낸 것이고 은 발입니다. 길다란 것이 엄지발가락이라고 해요. 이 모양들도 사실은 한자입니다. 은 사거리를 보여주는 모양이지만 ‘가다’, ‘행동하다’는 동작을 나타내는 행(行)이 되었고 은 멈추어선 의미를 가진 지(止)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다’와 ‘멈추다’를 번갈아 떠올리면 고대 사람들이 생각한 ‘쉬엄쉬엄 가는’ 모습을 상상할수 있습니다.

 

   3. 首

 首의 갑골문

 

  ‘머리 수’입니다. 수首의 갑골문은 주둥이가 길고 머리가 갈라져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마치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여우 머리 같습니다. 실제로도 갑골문 속의 首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짐승의 머리에 가까웠습니다. 털이 그려져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죠. 수(首)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모양 이 되지만 여전히 사람의 머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 모양을 두고 사슴머리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首가 지금과 비슷한 형상이 된 것은 훨씬 더 이후입니다.

  수(首)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뜻도 ‘머리’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수(首)는 수장, 수도, 수제자 수미(감자칩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의 한자에 쓰입니다. 간혹 머리를 나타내더라도 동물의 머리를 표현할 때 쓰인답니다. 수(首)의 의미는 주로 ‘우두머리’ ‘시작점’ ‘가장 높은’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首는 가장 서열이 높은 동물을 커다란 머리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道

   지금까지 도(道)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한자 착(辵)과 수(首)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道)의 의미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무언가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가거나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목적지인 수(首)가 등장합니다. 수(首)는 천천히 걸어가던 누군가가 마침내 도착하게 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도(道)는 한 걸음, 한 걸음,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길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목적지首는 여러분들이 가고자 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집, 카페, 도서관, 약속장소... 이러면 도(道)는 정말 걸어다니는 길을 의미하게 됩니다. 도로, 도보, 인도 차도... 우리가 항상 다니는 길에 쓰이는 단어가 되죠. 그러나 이 길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차원에서 생각하게 되면 평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목적지’가 됩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나아가서 정진해야하는 길. 도(道)가 도덕, 도인, 득도에 쓰이는 한자인 이유일 것입니다.

 

   5. 활동

   우리는 도(道)가 걸어다니는 단순한 길 뿐만 아니라 평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는 한자의 변형을 통해서 道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표현해볼 차례입니다.

걸음걸이를 통해서 무언가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착(辵)은 다른 글자와 만났을 때 더 빛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있으면 그저 걸어가는 것을 보여줄 뿐이지만, 다른 한자와 만나면 무언가를 향해 가는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알게 된 도(道)는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착(辵)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목적지首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목적지首는 무엇인가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나요? 혹은 바라는 무언가가 있나요? 반드시 목적지가 없어도 됩니다. 그저 길가를 걸어가면서 무엇을 보게 되는지를 떠올려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나.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거나 맞닥뜨리는 사건이 있나요? 우연히 친구를 마주치거나 하진 않나요? 어쩌면 지금 당장 길로 나가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길을 걸을 때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요? 푸른 하늘을 볼 수도 있고 여름이 되어서 초록빛으로 부푼 나무들이나 무거워 고개를 숙인 장미꽃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수업을 한다면, 정말로 길로 나가서 무엇이라도 보고 왔을 테지만, 이번은 가상 수업이니 아쉬운대로 간단하게나마 저의 예시로 활동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목적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장 먼저 목적지로서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았습니다. 당장 가고 싶은 곳은 여러 군데 떠올랐지만 ‘내가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자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를 모르고 그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장 목적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어딘지 모를 ‘밝은 곳’을 자리에 두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모습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목적지. 길가의 장난감과 노는 아이들

 

 

저희 동네에는 길가에 아이들의 장난감이 늘어져 있습니다. 이 놀이감들은 누군가 버린 것이 아닙니다. 내일 다시 아이들이 모이면 쓰이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단지 내 놀이터는 폐쇄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씽씽카를 타고 딱지를 칩니다. 한낮이면 동네에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수(首)의 자리는 비우고 착(辵)을 골목처럼 놓은 뒤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작은 발자국을 지(止)의 갑골문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세 번째 목적지. 여름의 쥐똥나무꽃 냄새

 

 

계절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길을 걷다가 쥐똥나무꽃냄새를 맡고 여름을 실감했습니다. 그 시원하면서도 묵직한 향기가 어김없이 여름이 왔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수(首)자리에 무겁게 내려앉는 쥐똥나무꽃냄새를 굵은 빗줄기처럼 표현해보았습니다.

 

쥐똥나무 꽃

 

-.

수업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활동을 통해서 도(道)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가, 아이들이 노는 풍경이 되었다가, 우연히 만난 꽃냄새가 되기도 합니다. 이 결과물들이 한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냥 그림이라고 하기에도 힘들지만, 적어도 이 작업을 하면서 제 주변을 떠올리고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수업을 기획하면서 친구들이 잠시나마 주변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더 단순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기상천외한 대답들이 기대됩니다.

수업이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멀지 않은 날에 만나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가상의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4
  • 2020-06-05 09:46

    수업 맛보기, 알차네요.
    얼른 '한문이 예술' 수업이 열려서 공부한 걸 학동들과 잘 나눌 수 있기를!!
    (질문: 책받침변 부수와 쉬엄쉬엄 걸어갈 착은 같은 것 같은데.. 왜 책받침변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궁금해지는군요.^^)

    • 2020-06-11 05:09

      부수를 규정하는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해요.
      글자 위에 붙은 것은 머리, 아래에 붙는 것은 다리/발
      왼쪽은 변, 오른쪽을 방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몸이라고 합니다.
      辶처럼 왼쪽과 아래까지 ㄴ 모양으로 있는 것은 '받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책받침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원래 음을 합친 '착받침'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익숙한 단어인 책받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다시 말해, 책받침은 아무 관련 없는 어쩌다 불리게 된 명칭이었다는 사실!
      앞으로는 '착받침'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2020-06-05 10:58

    고생했어~~

  • 2020-06-10 10:33

    아이들의 발자국('지')가 '착'자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그림이 너무 좋네요.
    멈춰서 발자국을 남기는 아이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비행기를 타면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걸어야겠다는 생각도요.
    동은 덕분에 걸으면서 이 그림 생각이 날 것 같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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