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 지금은 허덕이는 중

동은
2020-05-26 11:41
246
  1. 5월을 가정의 (사람들과 적응하는) 달

   이번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커다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이유는 본가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같이 사는 환경이나 사람들이 바뀌는 건 기본적으로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는 배치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도 그렇고 사는 집에도 적응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붙임성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어디든 자기 집인 것처럼 있어서 ‘적응력이 좋다’는 말을 들어 왔다. 그래서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무던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쉽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내 일기장에는 본가에 적응하는 일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도저히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날에는 집 앞에 수지체육공원을 걸으며 열을 가라앉혔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듯해 보이는 화장실을 혼자서 청소한 날에는 말도 못 할 짜증이 치밀어 걸었고, 가족의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한 날에는 괜한 책임감과 자책을 떠올리다가 지쳐서 그냥 잠이 들기도 했다.

   이사한 것이 마냥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적응에 지친 몸은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만 보를 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겹기만 했다. 다시 아침에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서 월요일 등산은 거의 가지도 못했고, 급기야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가 스트레스와 겹쳐 피로가 쌓이고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는 사람 눈에 네 개로 보이더니 밤에는 또 말짱해졌다.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계속되자 덜컥 겁이 났다. 병원에 가서 보니 눈 밑이 알러지 반응으로 오돌토돌하고 눈꺼풀이 다 헐어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쉬게 해주라는 말에 조금 막막해졌다. 어떻게 해야 눈을 쉬게 해주는 거냐고 물었는데 의사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눈 감고 노래 듣는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눈을 뜨지 말라는 거다.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2. 이번 달의 내 양생은

  눈이 안 보이고 나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싶었다. 어쩌면 너무 이전처럼 지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지친 게 아닐까? 책도 읽어야 하고, 해야 하고 친구들과 약속 잡은 대로 놀아야 했다. 더구나 세미나도 더 신청했다. 여기에 등산도 가고 싶었고, 만 보도 걸으려고 하니 눈이 파업하듯 반응한 것이 아닐까.

  눈이 안 보이는 건 이번 달에 느낀 또 다른 몸의 변화였다. 만보를 걷고 느낀 변화, 등산을 한 변화와는 또 다른 몸의 변화. 눈이 안보인 건 아마 그동안 몸을 잘 돌보지 않아서 일어난 변화가 아닐까? 예전엔 꽃가루 알레르기에 고민할 일도 없었고, 가족하고 부대끼는 일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게 될 일도 없을 줄 알았다. 상황을 잘 살피지 못한 탓도 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몸이 안좋을 땐 어떻게 해야할까? 쉬라고 하는 말을 들어도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쓰는 일에 슬기롭게(!!)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일만큼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양생은 어떻게든 몸을 열심히 움직여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무작정 움직이는 걸로 밀고 나가는 것보다 변수에 잘 대처하는 일을 맞닥뜨리게 됐다. 일단 이거 하나는 배웠다. 그냥 한다고만 해서 다 되는 건 아니구나.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등산의 재미에 대해서 저번 글을 썼는데, 이번 달에 단 한번도 등산을 못 간 것이 조금 면목없다. 그래도 다시 등산을 가기 위해서는 지금은 일단 적응하는데 힘을 쏟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달에는 몸을 슬기롭게 쓰는 법에 대해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 3
  • 2020-05-26 16:20

    담주 월욜 산에서 만나자. 끝까지 같이 산 타고 나서 점심. 어때? 꿀맛이겠지?

    • 2020-05-28 23:04

      너무너무 좋을 것 같지만......
      이번에 같이 덩달아 심해진 발목 피부 조직검사때문에 몇바늘 꿰맨 상태에요 ㅠㅠ 오늘 소독 받으러 가면서 물어봤는데 안된다네요. 그래서 등산은 좀 무리일 것 같습니다... 6월 둘째주 정도엔 갈 수 있지 않을까요...?

  • 2020-05-27 07:12

    동은이가.. 힘들었구나.
    몸도 마음도 잘 추스리고 꾸준히 등산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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