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앤톡] 데이비스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곰도리
2020-03-25 23:02
567

 

데이비스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들어가며

우연히 작은 아이를 데리러 문탁에 갔다가 요요샘의 반가운 인사에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춘 후 일은 시작되었다. 책이 전시된 코너에서 자연스럽게 책 한 권을 손에 드시고, 과학교사로 이 책을 읽고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 ‘가벼운’ 목소리로 제안하셨다. 그 날 요요샘의 ‘가벼운’ 목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제법 무거운 책을 겁도 없이 들고 집으로 와 버렸다.

 

 

말씀 짧게 할 줄 모르시니

여유있게 이 책 한 권 읽어보려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친절하고, 자상한 책이다. 그러나 급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 입장에서는 뭘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하시나 싶을 만큼 길다. 각각의 질병 사례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수공통 전염병 자체가 원인과 과정을 밝히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인수공통 전염병이란 사람에게 전염되는 동물의 감염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감염병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 바이러스처럼 너무 작아서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고, 생물학적 복잡성으로 인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인간에게 왔는지 흔적을 찾아 추적하기 어렵다.

 

책에 소개된 인수공통 전염병은 헨드라, 에볼라, 말라리아, 사스, 니파, 라임병, 앵무새병, 에이즈로 인간을 죽음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고, 전염력이 비교적 높은 것들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름도 있지만, 처음 듣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걸리면 고통스럽다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인수공통 전염병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원숭이 두창, 소결핵, 웨스트나일, 마르부르크병, 광견병,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 탄저병, 라사열, 리프트밸리열, 안구 유충이행증, 푸말라열, 쓰쓰가무시병, 마추포열, 카아사나 삼림 등 동물의 가짓수만큼 질병의 종류가 다양하다. 얼마나 더 많은 종류의 전염병이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예측이 힘든 인수공통질병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가? 당연히 없앨 수 없다. 왜냐하면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하지만 인간의 몸 이외에는 어디서도 살거나 번식할 수 없기 때문에 숨을 곳이 없다. 그러나 인수공통 전염병을 유발하는 병원체는 어떤 동물에 숨어버리면 찾아내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병원체를 몸속에 갖고 있으면서도 거의 또는 전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동물종을 보유숙주라고 한다. 예를 들어 헨드라의 보유숙주는 말,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 원숭이 두창은 이름과 달리 청설모가 보유숙주이다.

 

 

날개 달린 숙주

여기서 잠깐! 헨드라, 마르부르크병, 사스, 광견병, 카아사나 삼림병, 니파, 메스르, 에볼라 등 의 보유숙주는 모두 같다. 어떤 동물일까? (힌트는 소제목을 보고 추리해보시길. 문탁 회원들의 지적 수준을 고려할 때 대부분 맞추시겠지만...) 박쥐다. 박쥐에게는 총 137종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살고 있고, 이 가운데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다. 도대체 왜 박쥐 몸 속에 무서운 바이러스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가?

 

 

 첫 번째로는 박쥐의 종류는 아주,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익수목(翼手目, ‘손이 날개가 된 동물’이라는 뜻)에는 1,116종의 동물이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포유동물의 약 25%가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로 박쥐는 다른 포유동물보다 집단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신생아를 끊임없이 제공해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바이러스의 생존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많은 박쥐종의 평균수명이 길어서 오랜 시간 동안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기회가 증가하게 된다. 네 번째로 개체들끼리 밀접한 접촉이 도움이 된다. 많은 박쥐들이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자거나 동면할 때 서로 가까이 모여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30cm정도의 정사각형의 공간에 약 300마리가 한데 모여 잠을 잔다. 꼭 붙어 있으니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무척 커진다. 다섯 번째로 서식처를 찾아 1300km를 날아갈 수 있는 등 넓은 지역에 좌.우.위.아래로 바이러스를 뿌릴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박쥐의 선천적인 면역 시스템이 활발하여 자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박쥐가 없을까? 23종의 박쥐가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몸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찾기도 했다.

 

 

박쥐에서 인간으로

박쥐에 있는 바이러스는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이동했을까? 니파바이러스를 예로 들어보자. 니파바이러스는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유행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신종 바이러스다. ‘니파’는 이 바이러스를 최초로 분리한 말레이시아의 작은 마을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로 돼지와 접촉한 사람들이 많이 걸려서 돼지열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열병치고는 50% 이상의 높은 치사율을 보였고, 일본뇌염과 달리 성인의 치사율이 무척 높았다. 같은 시기에 돼지들이 원인 모를 유행병에 걸려 죽기 시작했다. 인과관계를 전혀 알 수 있는 일들이 생기면서 죽은 돼지의 몸 속에서 처음 본 바이러스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니파바이러스에 걸려 죽은 사람의 몸 속에서도 유사한 바이러스를 관찰한 후 들쥐, 닭, 오리, 비둘기 등 우리 주변 생물들의 검체를 채취해서 조사하다가 날여우박쥐에서 니파바이러스를 확인했다. 게다가 양돈장 근처에 잘 익은 과일을 잔뜩 매단 망고나무, 물사과나무가 박쥐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박쥐와 돼지사이에 어떤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겠는가? 니파바이러스에 감염된 박쥐가 물사과를 먹다가 씹다 만 조각을 땅에 뱉는다. 바닥에 떨어진 과일을 돼지가 먹고, 돼지를 인간이 먹으면서 바이러스도 함께 특급배송된다. 또한 대추나무 수액을 생즙으로 마시는 것도 니파에 감염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무 주인들은 과일박쥐가 나무에 상처를 낸 자리, 또는 그 밑에 받쳐놓은 항아리에서 직접 야자나무 수액을 먹는 일이 잦다고 매우 성가시게 생각했다. 박쥐의 배설물이 항아리 주변에 떨어져 있거나 수액 위에 떠 있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항아리 속에 아예 죽은 박쥐가 떠 있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p414)

 

방글라데시에서는 대추야자나무의 수액을 즐거먹고, 겨울을 시작으로 한 철 장사로 내다 팔아서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봄이 되면 우리도 즐겨 먹는 고로쇠 수액이 생각났다. 고로쇠 수액은 마그네슘, 칼륨, 칼슘, 황산이온과 같은 미네랄이 물보다 40배나 많아서 요즘 같은 초봄에 단풍나무과 나무에서 채취해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고로쇠 수액 속에는 낯선 동물의 분비물이 없을까? 궁금했으나, 아직은 모르겠다.

 

 

사스(SARS)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사스바이러스는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고 전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다. 중국 광둥성에서 살고 있는 남성에서 시작된 사스는(중국에서는 특이한 야생동물을 먹는 것이 호경기를 타고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부의 과시 방식이라고 한다. ‘타임 아시아’의 편집자는 이를 두고 ‘야생의 맛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했다) 누구도 그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치료하던 의료진을 감염시키고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던 의사의 몸에 조용히 숨어서 홍콩으로 날아간다. 홍콩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의사의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고, 같은 호텔에 있는 묵고 있고 캐나다 할머니와 싱가포르 국적의 여성 등 16명의 투숙객과 한 명의 방문객을 감염시키면 국제적인 전파경로를 탄다. 싱가포르로 날아간 바이러스는 환자가 고열과 기침으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간 틈을 타서 환자의 점액을 채취하려던 레지던트와 그 어머니 몸 속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침투했다. 결국 환자는 살고, 레지던트와 어머니, 환자와 접촉한 지인들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연하게 싱가포르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질병의 증례를 토론하는 모임에서 이 증례를 발표하다가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사유로 입원한 환자들이 많아져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차원에서 신속하게 대응했음에도 200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바이러스가 생명체에게 치명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파력과 치사율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이 둘을 모두 갖추기가 어렵다. 앞서 소개된 책에서 말한 조류독감(신종플루)의 경우도 H5N1처럼 치사율이 높으면 전파력이 낮고, H1N1처럼 전파율은 높지만 치사율이 낮다. 그런데 인류는 최근 들어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지구상에 70억명 이상이 주로 도시에서 집중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고 알아서 신속하게 전파시켜준다. 의학의 역사가 병원체와 인류와의 오랜 싸움이라고 표현한다면 우리는 적군에게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모여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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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동물 몸에서 오랫동안 잠자코 있던 바이러스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인가? 발진과 뇌수막염이 동반되어 죽음에 이르게하는 라임병을 이야기해보자. 라임병을 유발하는 녀석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보렐리아 부르크도르페리’라는 와인 병따개 모양의 세균이다. 이 세균은 사슴진드기라고 불리는 진드기(라임병을 추적하는데 사슴진드기라는 이름이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몸 속에서 우글거리며 서식한다. 그리고 이 진드기가 인간을 물면 진드기 몸 속의 세균이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와 병을 유발한다. 문제는 진드기의 복잡한 생활사다. 이 진드기는 흰꼬리사슴의 몸에 붙어사는데, 정작 사슴의 개체수가 질병의 유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흰꼬리사슴 한 마리에 진드기 수정란이 200만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드기는 곤충과 마찬가지로 성충이 되기까지 두 가지 미성숙 단계(유충과 약충)을 포함하는 변태를 거친다. 각 단계마다 변형에 필요한 양분을 얻기 위해 한 가지 척추동물숙주의 혈액을 필요로 하며, 성체 또한 생식에 필요한 에너지와 단백질을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의 혈액을 먹이로 삼는다. 성체가 된 암컷 진드기는 배가 터질 정도로 피를 빤 상태로 겨울을 난 후 봄에 알을 낳는다. 생활주기를 완전히 마치는 데는 2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세 번에 걸쳐 각기 다른 척추동물숙주의 몸에 기생하며 피를 빤다. 특히 여러 변수와 관련한 설명을 제외하고 결과만 이야기해 보자면 뽀족뒤쥐, 흰발생쥐, 다람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읽어봐도 흥미롭지도, 한 눈에 이해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 어떤 생명체의 몸 속에서 서식하는지, 그 생명체가 자연 속에서 생존하는 방식이 얼마나 복잡한지 우리는 정말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자연은 그 관계성을 생태적 관점에서 알아서 조절해 왔다. 넓은 숲에서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생명체가 먹고, 먹히는 그물망 속에서 갑작스런 환경적 변화가 발생하면 다양한 포식과 피식의 관계를 통해 개체수를 조절하면서 나름의 균형을 맞춰왔던 것이다. 물론 균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연은 목적이 없다.

 

그런데 그 숲이, 생태계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잘라서 기름야자나무 단일종을 기르고, 동물은 서식처를 잃고 스러져간다. 병원체 입장에서는 들어가서 살만한 동물이 점점 사라지고, 발붙일 곳이 없는데 유일하게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는 동물이 눈 앞에 아른거리고 있다.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많이 존재하고,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나, 3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기세가 꺽일 줄 모르는 에이즈 같은 범세계적 유행병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인수공통감염병을 이해하는 것이 시급한 까닭이다. (p10)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애벌레다. 1993년에 숲천막모충나방의 애벌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가로수 입을 쓸어 먹어버렸다. 그 수가 너무나 많아서 서늘한 밤에 나가면 애벌레가 나뭇잎을 먹는 따닥거리는 소리가 쉬지않고 들렸다고 한다. 쌀살한 날에는 애벌레들도 냉기를 피하기 위해 한 무더기마다 수백마리의 애벌레들이 몸을 포개고 굼실거렸다. 생태학자들이 이런 사건을 가리켜 대발생(outbreak)이라고 부른다. 대발생이라는 말은 단일한 동물종의 개체수가 갑자기 엄청나게 늘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대발생을 일으키는 동물종이 있는가 하면, 일으키지 않는 종도 있다. 레밍(나그네쥐)은 대발생을 일으키지만 수달은 그렇지 않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심각한 대발생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종의 대발생이다. (중략) 구체적인 숫자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베리먼이 논문을 썼던 1987년 당시 세계 인구는 50억명이었다. 인간의 숫자는 농업의 발명 이래 333배 증가했다. 흑사병의 유행 뒤로만도 14배 증가했으며....

생태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거의 모순적인 존재다. 몸집이 크고 수명이 길면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록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현상, 대발생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유행도 마지막이 있다. 숲천막모충나방의 애벌레는 바이러스복합체에 감염되면 몸이 녹아버린다. 그러다가 애벌레의 몸속에 바이러스의 숫자가 너무 많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바이러스들은 보호용 외피를 만들어 안에 들어가 단백질 덩어리같은 복합체가 된다. 그러다 다시 애벌레의 수가 늘면서 바이러스와 접촉하지 못한 어린 개체의 수가 증가하면 바이러스도 자연스럽게 애벌레나 알 속으로 들어가 활동을 개시한다. 숲천막모충나방 애벌레가 바이러스복합체에 감염되었을 때 모습과 인간이 에볼라에 감염되었을 때 모습이 비슷하다. 자연의 법칙은 종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대유행에 맞서 다양한 병원균의 반격이 예상된다. 그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인수공통 전염병의 병원균이다. 예를 들어 신종플루의 경우는 전파력만 장착되길 기다리는 독한 놈이 준비 중이다. 우리는 이들의 공격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바이러스의 진화속도와 범위를 넓혀주는 공장식축산업과 낯선 바이러스와의 접촉을 도와주는 이국적인 애완동물 키우기, 비행기를 이용해서 멀리까지 바이러스를 날라줄 수 있는 기동력, 집단감염이 가능한 도시화까지... 많은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는지 일깨워준다. 그리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사람들을 근심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다 똑똑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애벌레나 동물들과 다른 점이라고.

 

여기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전략이 ‘더 똑똑해지는 것인가?’ 지금까지 설명한 자연의 복잡성은 어디에 두고, 앎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겨우 이해했는데, 우리가 똑똑해지면 된다는 말이 결론일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과학교사 모임에서 ‘유전자편집기술(크리스퍼 가위)을 이용하여 이집트숲모기의 불임을 유도하는 실험’에 관한 토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인수공통전염병을 없애기 위해, 병원체를 매개하는 모기만 없앨 수 있다면 상당한 질병은 사라질 수 있으리라는 ‘앎’에서 시작되었다. 조작된 모기 유전자가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집트숲모기가 결국 멸종하고 나서 다른 모기가 창궐하는 생태계의 조율이 일어난다면, 그 때 펼쳐지는 ‘무지의 세상’은 다시 ‘앎’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학기 초에 과학 수업에서 ‘왜 과학을 배울까?’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다양한 답변이 오고 가는데, 아이들은 과학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도구 혹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해석할 수 있는 낯선 언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전세계가 멈춰선 지금,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도구에 관한 것일까? 인식의 한계에 관한 것일까? 수업에서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댓글 7
  • 2020-03-26 07:34

    와, 지상(紙上)에서 전개된 TED강의 같아요.
    요요님 왈, "젤 두꺼운 책을 곰돌이 샘한테 맡겼는디...."..... 하하....요요님 선견지명이란...^^

    더 똑똑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앎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히네요.

  • 2020-03-26 09:50

    코로나19덕에 바이러스와 세균, 그리고 전염병에 대해 열심히 후기를 쓰는 친구들 덕에 제대로 공부를 하게 되는군요.
    덕분에 과학자들이 쓴 책을 여러권 알게 되었네요.
    제가 읽은 <바이러스폭풍의 시대>도 블랙커피님이 읽은 <전염병의 문화사>도 곰도리샘이 읽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도
    이 책을 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전공분야인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인간을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질병없는 세상이 가능하다, 혹은 질병의 예방이 가능하다는 확고한 믿음 말이죠.
    그런데 계속해서 신종 유행병들이 생겨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런 믿음이 과연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걸까,
    이분들의 믿음에 대해 더 큰 의심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사태를 이해하는데 이 책들의 과학적 앎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다른 한편 나 역시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앎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네요.

  • 2020-03-26 10:32

    저는 마지막 곰도리님의 글귀가 비수같았어요. 유전자편집기술에 열광하던 제가 떠올랐거든요. 저는 책의 저자처럼 과학이 만능의 열쇠라 생각하는 낙관론자예요. 이런 사태도 과학적 앎으로 해결할 수 있을꺼라고 믿고있거든요.

    요즘 푸코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있던 나를 이끌었던 지배적 담론에 대해 의심을 하고있는데.. 사실 이마져도 깊은 공감이 아직 생기지않아 자꾸 반기를 들고싶어져요.

    다시 생각해보려합니다. 내가 왜 자연을 공부하고 싶었는지..인간이 잘 먹고 잘 살기위한것이였는지...아니면 자연과 함께 살기위해 타인인 자연을 알고싶었던건지...
    곰도리님 좋은 후기 감사해요~~^^

  • 2020-03-26 10:35

    코로나 덕분에 인간 삶의 형태가 얼마나 자연에 역행하는지 절절히 느끼게 되네요. 인간도 바이러스에게는 기생하기 좋은 생명을 가진 숙주일 뿐인데... 문탁에서처럼 다양한 담론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긴 글 읽고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 2020-03-26 15:03

    인수분해와 인수공통을 헷갈려하는 제가
    뉴스에 나온 박쥐를 이해하게 됐어요^^
    필름이다 사장님이 추천하신 영화 <컨테이젼> 보시면
    곰돌이님 쓰신 글에 대한 시청각자료가 될 것 같아요.

  • 2020-03-26 17:32

    저도 이 책을 희망대출해서 군데군데 읽었습니다만, 마지막 장에서 뜨악했었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잘 빠져나올 수 없는 부분이 과학만능주의 같아요.
    저 또한 오래도록 빠져 있었고..
    그런데 한편 모 아니면 도라는 제 습성이기도 한데...
    과학주의를 반대하다 보니 균형감각이 없어져서
    과학적(?) 연구 중에서 주의 깊게 새길만한 게 있을 텐데도 눈길을 주기 싫어합니다.
    암튼 알수록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 않을까 합니다. ^^

  • 2020-03-26 19:04

    잘읽었습니다. 이종간 전염이 쉽지않다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안심했는데..
    앎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결말에 뜨악하지긴 하지만 또다른 대안을 생각하기에는 게으르고 무지한 저자신을 느끼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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