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차명식의 의료인류학 1 : 병원과 연구소 바깥의 의학

명식
2020-03-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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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길드다> 청년들이 <길위기금>으로부터 고료를 받으며 글을 연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명식의 <의료인류학>은 의료인류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그를 통해 작금 코로나와 마주한 한국사회를 바라보려 합니다.

 

 

의료인류학 1 : 병원과 연구소 바깥의 의학

 

 

  0. 들어가면서 : 코로나가 드러낸 세계의 민낯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3월 18일을 기하여 웨스트버지니아 주를 마지막으로 미국의 모든 주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몬테네그로를 마지막으로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독일의 메르켈은 이 판데믹(대유행)이 세계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도전이라고 선언했다. 전 세계의 주식장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의 시선은 워렛 버핏의 입으로 쏠렸다. 투자의 귀재인 그의 입에서 언제쯤 이 상황이 나아질지, 지금 주식을 사야 할지 팔아야 할지, 아무튼 뭐든 간에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한 마디가 나오길 바라서였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 “89년 인생에 이런 건 난생 처음 본다!”

 

  그렇다. 이것은 이미 하나의 그로테스크다.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것은 곧 인류가 합리주의와 이성, 과학의 힘으로 질병을 정복하고 통제해 온 승리의 기록이라고 믿어져왔다. 상대적으로 ‘앞서 나가는’ 사회가 있고 ‘뒤떨어지는’ 사회가 있을지언정, 인류의 의학은 끊임없이 진보해왔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병의 정체를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맞는 과학적인 조치를 취하여 치료하는 의학 - 병원과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발견과 통제. 하지만 이 순간 시시각각 들어오는 세계의 풍경은 그런 우리의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어놓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소똥으로 목욕하는 인도인들은 그렇다고 치자. 전체주의적 통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 중국 정부의 모습도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전염을 막기 위해 카페와 술집의 폐쇄령이 내려지자 그날 밤 최후의 파티를 즐기겠다며 거리로 몰려나온 프랑스인들은 합리적인 유럽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고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 대통령 마크롱의 모습은 프랑스 정부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켰으며, 아직도 독일 질본이 팩스로만 보고를 받기에 팩스가 과부하로 마비된 상황에서 조치를 받지 못한 확진자가 활보하며 병을 퍼뜨렸다는 독일의 소식은 충격을 안겼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편에서는 인력을 갈아 넣으며 집요하게 병을 추적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몇 열지 않은 클럽과 감성주점으로 구름처럼 몰려드는 대중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란이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19가 불러온 이 범세계적 광란마저도 이미 또 하나의 병이라고 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미개에 대한 과학의 승리, 과학적으로 앞서나가는 사회와 뒤떨어지는 사회의 구도 - 그 모든 ‘정상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개체들의 기능은 마비되어 혼돈 속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술집 폐쇄 전날 파리 거리의 파티 / 한국의 클럽 /

독일의 팩스 사건 관련 기사 / 인도의 소똥 치료법

 

 

  이 광란-병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다 믿어온 세상의 모습은 이미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이 사태를 위해 우리에게 다시 원초적인 질문들이 던져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병이란 대체 무엇인가. 의학이란 대체 무엇인가.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질병 앞에 저들이-우리가 취하고 있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인류가 지금까지 밟아온 질병과의 역사, ‘의학의 진보’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바로 그런 까닭에, 나는 의료인류학이라는 학문을 꺼내들게 된 것이다.

 

 

 

  1. 의료인류학의 목표 : 쿠루의 미스터리

 

  1950년 중반, 오세아니아 파푸아뉴기니의 소수민족 포레Fore족에게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보고되었다. 중추신경계가 점차 마비되어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혹 극히 드물게 오래 살아도 2년 안에는 반드시 사망하는 불치의 병이었다. 그 병의 이름은 쿠루Kuru였다.

 

  쿠루는 여러 면에서 의사들을 당황시켰다. 그것은 오직 포레족의 여성과 아이들에게서만 발병하였고, 아주 가끔 성인 남성이 이 병에 걸리더라도 그에 한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 포레족과 왕래가 잦은 인근의 다른 부족들 사이에서도 쿠루는 발병하지 않았으며, 파푸아뉴기니에 들어간 유럽인들에게도 발병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살아가는 포레족들이 쿠루에 걸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그들 주변의 다른 이들은 결코 쿠루에 걸리는 법이 없었다. 왜 포레족만이 이 병에 걸리는지, 왜 포레족의 여성과 아이들에게만 이 병이 치명적인지, 이 병이 대체 어떤 경로로 발병하는 것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당연히 치료법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57년, 저명한 바이러스 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칼레톤 가쥬제크Carleton Gajdusek가 쿠루에 도전하였다.

 

  칼레톤은 약 열 달에 걸쳐 포레족과 함께 생활한 뒤 여생 대부분을 쿠루를 추적하는데 바쳤다. 가장 먼저 제기된 가설은 쿠루가 유전병의 일종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병이 오직 포레족에게서만 나타날 뿐 아니라 가족에게서 가족에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한 가설이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곧바로 한계에 부딪혔는데, 겨우 반년에서 일 년 사이에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유전자가 포레족에게 존재했다면 포레족은 이미 오래 전에 멸망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포레족 장로들은 쿠루가 나타난 것은 불과 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연구가 답보 상태에 빠칠 찰나, 또 다른 인류학자들인 로버트 글라세와 셔레이 글라세가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포레 족의 장례 풍습이었다.

 

  포레 족의 장례 풍습 중에서는 유가족 여성들이 사망한 친족 여성의 뇌를 요리해서 먹고, 먹고 남은 것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식인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이 풍습은 포레족이 주변의 다른 부족에게 배운 것으로, 약 1910년 즈음부터 행해진 것이었다. 이는 쿠루의 등장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일치했으며, 쿠루가 왜 오직 여성과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가도 설명해주었다. 쿠루로 죽은 여성의 뇌에 남아있던 바이러스가 이 식인 풍습으로 인해 퍼져나간 것이었다. 이후 오스트레일라 정부는 소수민족들의 식인 풍습을 중단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며, 쿠루는 이후 십여 년에 걸쳐 급격히 감소하여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후 칼레톤 가쥬제크는 의학계에 그 공헌을 인정받아 1976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쿠루에 감염된 포레족 소년

 

  쿠루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은 아주 당연하지만 의외로 자주 망각되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그것은 의학이 결코 병원과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발견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쿠루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파푸아 뉴기니의 정글 속으로 뛰어든 인류학자들의 이야기들은 수많은 사례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리카 북부의 풍토병인 수면병이 아프리카 남부까지 급격히 퍼져나간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시기 아프리카 곳곳에서 행해진 도로 건설 사업과 도시화, 이주노동의 증가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드넓은 지구에서도 오직 특정 지역의 특정 민족에게서만 발병하는 몇몇 병들 - 라틴 아메리카의 ‘수스토’, 말레이시아의 ‘달리는 아목’, 북미 북동부 인디언들의 ‘윈디고’, 한국의 ‘홧병’*1 등 - 은 결코 ‘일반적인’ 의학체계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심지어 가장 일반적인 서구의학의 의료체계라 하더라도 그 구축과 작동을 위해서는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이 질병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그 병행동illness behavior을 분석하여야 한다.

 

  오늘날, 바로 이러한 문제들에 도전하는 인류학자들이 수많은 의료교육기관과 병원, 보건기관, 그리고 대학 인류학부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인간행동의 생물학적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 양쪽의 시각 모두를 아우르는 생물-문화적분야의 종사자로 여기며, 이 두 방향성 모두가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역사를 통해 상호작용해왔으며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그들이 다루는 학문이 바로 의료인류학이다.

 

 

 

  2. 의류인류학의 생태학적 관점

 

  의료인류학을 정의하는데 있어 ‘생물-문화적’이라는 표현은 이 분야가 생물학이라는 자연과학의 영역과 문화인류학이라는 사회문화의 영역을 양끝으로 하는 연속체의 선상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 가령 의료인류학자 중에서도 인간진화에 있어 질병의 역할, 고대인의 질병과 건강 연구 등에 관심을 지닌 이들은 보다 생물학의 방향성에 가깝다 할 것이고, 반면 민족의학, 의료관계직종 육성, 의사-환자 관계, 전통사회에 서양의학이 도입됨으로써 발생하는 변화 등에 관심을 지닌 이들은 사회문화적 방향성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방향성은 결코 완전히 구분될 수는 없는데, 의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두 가지 방향성 모두와 깊은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는 생리학과 생화학적 요인만으로 혹은 스트레스에서 유래하는 심리-사회문화적 현상만으로 단독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며, 식습관과 문화적 호불호가 생물학적 영양 상태와 밀접히 결부되어 있는 식생활을 연구할 때도 두 방향성의 자료 모두가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의료인류학은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인류학적 의 확장을 꾀해왔다. 이 ‘계’는 시스템system으로 번역되는데, 사전적으로는 항상적인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의 형태에서 결합된 대상의 집합이며, 이것은 통합된 전체를 형성하고 조화적으로 기능, 활동, 이동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또는 인공적으로 결합된 다종다양한 단위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집단*2이다. 전통적인 인류학에서 이 계는 곧 사회문화적인 계, 우리가 보통 ‘문화’라 일컫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의료인류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계를 생태학적인 계, 즉 인간문화 뿐 아니라 동식물과 비생명적 환경까지 아우르는 계로 확장하려 시도해왔다. 이것은 작금의 브루노 라투르와 에두아르도 콘 등이 시도하는 것과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의료인류학의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인간행동과 질병이 어떻게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진화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가가가 주요한 논제가 된다. 이때 ‘환경’이란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융합된 단일한 개념이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특정한 방향성에 좀 더 가중치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연환경 쪽에 좀 더 가중치를 둔다면 질병에 대한 인간의 생물학적 적응전략을 분석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전통적인 인류학의 관점에 따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가중치를 둔다면 질병에 대한 인간의 사회문화적 적응전략, 즉 의료체계라 불리는 요소에 대하여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양쪽 모두 매우 흥미로운 작업임에 분명하지만, 이 글에서는 의료체계에 대하여 보다 깊이 논의해보도록 하자.

 

 

 

  3. 의료체계 : 세 개의 보편 원칙

 

  의료체계에 대한 의료인류학적 정의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그 내용들 각각을 살펴보면 일치하는 맥락을 가지면서도 조금씩 표현의 차이를 갖는다.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신중히 고려된 행동을 발전시키는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전통의 유형

  “인간사회가 질병에 직면했을 때 발명한 사회문화적 적응전략

  “인간이 질병에 대항하는 법을 배우면서 개발한 지식, 믿음, 기술, 역할, 규범, 가치, 이데올로기, 태도, 습관, 양식, 상징 등의 요소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복합체."*3

 

  다시 말해, 질병과 마주해 온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문화적 발명품들의 체계란 뜻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체계는 단일하지 않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근대과학에서 비롯한 서구의 의료체계겠지만, 이 서구의료체계조차도 실제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인다. 이른바 ‘민속의학’ 등으로 불리는 비서구사회의 ‘민족적인’ 의료체계들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한국만 해도 ‘의학계’와 ‘한의학계’의 뿌리 깊은 대립이 존재한다. 그러나 의료인류학자들은 이 다양한 의료체계들의 존재에도 불구, 모든 의료체계는 몇 가지 보편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본다.

 

  첫째, 모든 의료체계는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우선 첫 번째 층위는 질병론으로, 건강의 본질, 병의 원인, 치료기술에 대한 믿음의 체계를 말한다. 병은 왜 발생하는가? 병에 걸렸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며, 건강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치료는 또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이론의 체계가 질병론인 것이다. 의료인류학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질병론이 저마다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한 질병론의 비합리적 면은 대개 해당 사회 바깥의 구성원들에 의해 지적된다고 설명한다.

  한편 두 번째 층위는 보건의료체계로, 환자와 치료자 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하나의 사회적 제도이다. 이는 환자와 그의 가족과 사회가 갖는 각각의 자원이 환자의 문제에 사용될 수 있도록 운영되는 실질적 시스템이다. 오늘날 서구의학의 질병론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자리 잡았지만 그 보건의료체계 - 의료 제도는 여전히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며, 이것이 민족적 의료체계들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의료체계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하나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층위 모두를 이해하여야 한다. 가령 인류학자 레이톤이 드는 나바호 인디언의 예시에서 우리는 한 사회의 질병론과 보건의료체계을 함께 이해할 때 발생하는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인디언이 의사로부터 디기탈리스 알약(강심제)을 매일 복용하라는 말을 들으면 그는 아마 한줌의 디기탈리스 알약을 우적우적 씹어 먹은 후 그것을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초록색의 알약은 디기탈리스 식물의 잎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의 마음이 좋은 노래 없이는 안 되는 것처럼 그의 몸이 그 약 없이는 안 되기 때문에 매일 아침 동쪽 하늘에 최초의 햇빛이 보일 때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그가 이 지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4

 

 

▲강심제로 쓰이는 디기탈리스 알약과 그 원료인 디기탈리스 꽃

 

 

  둘째, 모든 의료체계에서 병은 문화적으로 정의되며, 그에 대한 치료의 체계와 예방의 체계를 갖는다. 일반적인 서구 의료체계에서 병은 하나의 생물학적 실체, 과학적으로 명백히 포착되는 하나의 실제적 상태이다. 하지만 문화적 시각에서 병이란 한 사람이 그의 일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 행해져야 한다고 믿어지는 사회적인 인지이다. 이때 의료인류학에서는 과학적 병을 질병disease으로 일컫고, 사회문화적 병을 illness로 일컫는다. 사실, 인간이 도움을 구하는 상태는 실제 병원균이 존재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상적 기능이 손상되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길 바라지만cure disease, 실제로는 그 병을 다스린다treat illness.*5 의사의 목표가 환자의 몸에서 과학적으로 병인을 제거하는데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가 수행하는 역할은 환자의 몸의 과학적 상태와는 상관없이 대개 환자의 일상적 기능과 역할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과학적 상태와 사회문화적 병이 구분됨으로써, 특정사회에는 치명적인 질병(과학적 상태)이 특정 사회에서는 (사회문화적으로) 병으로 여겨지지 않기도 한다. 가령 19세기 미시시피강 상류 지역이나 리베리아의 마노족 사이에서는 물가에서 비롯한 고열과 한기, 오한이 매우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져 병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불가피한 운명이자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고열, 한기, 오한의 이름은 말라리아로, 세계보건기구가 그 격멸을 목표로 70년 가까이 싸우고 있는 질병의 이름이다.

  이처럼 가장 단순하게 보이는 사회에서도 병에 대한 문화적 정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치료적 측면과 예방적 측면을 갖는다. 다만 적지 않은 비서구사회에서의 예방의학이 법적 기구보다는 개인적 행동의 풍습으로 구성되기에 쉽게 포착되지 않을 뿐이다.

 

  셋째, 의료체계는 모든 문화의 필수 구성요소로서 해당 문화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문화에서 주요한 제도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의존하며 지탱한다. 의료체계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회에서 질병론은 마술과 종교에 연관되며, 사회적 제도는 치료자의 역할과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에 반영되고, 그 관계를 구성하는데 다시 경제적 요소와 법적 형식이 개입된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하나에 국한하여 볼 것이 아니라 해당 문화형태 전체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의료체계가 수행하는 역할을 좀 더 살펴보자면, 그것은 치료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환자에게 그가 왜 그것이 나에게, 이 때, 여기에서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면서 병 뿐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이해토록 한다. 그 과정에서 의료체계(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질병론)는 사회적 도덕적 규범의 유지와 위반 제재에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고, (성적 문란에 대한 천벌로 여겨졌던 매독을 생각하라) 한 집단의 공격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또한 근대를 살펴보면 전통적 의학은 한 문화가 오래 전부터 발달시켜온 높은 수준의 지식의 상징으로써 민족주의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료체계는 많은 역할과 목표를 제공하는 복잡한 기구로서 표면적으로는 질병과 병의 문제만을 다루는 듯 하나 실제로는 해당 문화의 유형과 가치를 반영하며 작동한다. 우리는 오직 사회문화적 환경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검토할 때에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의료체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보다 다양한 의료체계들을 검토함으로써 의료인류학적 관점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사실들을 알아볼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우선 비서구사회의 의료체계들을 검토할 것이다. 물론 수많은 문화권과 그 다양한 의료체계들을 ‘비서구’라는 이름으로 통틀어 포착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허나 현대사회에서 서구의료체계가 사실상 ‘일반적’인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이러한 구분법은 어느 정도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갈레노스의 체액병리학과 그에 기반한 중세유럽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전통적인 중국 의학 등 ‘내츄럴리스틱Naturalistic’한 의료체계들부터 생령과 저주, 샤먼과 영혼을 넘나드는 퍼스널리스틱Personalistic의 의료체계들, 그리고 그들 의료체계들이 근대과학과 조우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체계들까지. 가능한 한 많은 체계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계속)

 

 

 

 

 

 

 

*1 수스토Susto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지방에서 포착되는 우울증적 불안이며, 윈디고Windigo는 북미 북동부 인디언들에게서 확인되는 식인에 대한 강박증, 달리는 아목Running amok은 말레이시아 남성에게서 확인되는 살인에 이르는 광란이다.

 

*2 웹스터 사전의 인용

 

*3 조지 포스터, 바바라 앤더슨, 『의료인류학』 한울, 57-60p.

 

*4 위의 책, 63p

 

*5 위의 책, 66p

 

댓글 3
  • 2020-03-20 11:58

    댓글1 :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밥을 먹게 된 고은과 나와 지원

    나-지원, 그대의 보릿고개 글은 선착순으로 댓글을 달아야 하는 미션이 있었지~ 선물 언제 줄거임?
    지원- (이렇고 저렇고)
    고은_ 샘, 샘도 제 보릿고개 글에 답 달기 어려우셨어요?
    나-엉, 참으로 어려웠소. 글이 너무 분절되어 읽혀서 말이지;;;
    고은- 저는 올해 논어로 글을 쓸 계획인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요. 샘과는 <왈가왈부논어>도 썼는데 샘한테 왈가왈부 논어는 어땠어요?
    나- 어쨌든 끝까지 썼던 게 기억에 남아. 그리고 지금 다시 읽으면서 그때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썼는지 보는 것도 재밌고^^
    고은- (이렇고 저렇고)
    나- (이렇고 저렇고)

    아... 고은의 보릿고개를 이렇게 '면피' 해도 될까 ㅋ

    댓글2: 나는 명식샘의 '팬'이다.
    '오후 2시 중학생과 책을 읽습니다(맞나? 너무 기뮤)' 를 받고서부터 팬이 되었다.
    중학생과 책을 읽는 일, 잘 해보고 싶었으나 늘 못 해냈던 일이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걸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팬으로써 작가에 대한 예로 명식샘이 글을 쓰면 꼭... 읽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보릿고개 글도 먼저 읽었다.
    그러나... 맥락을 쫓아가는게 쫌... 어렵다. 요새 너무 말랑한 글만 읽었나... ㅋ
    도입부에서 언급한 워렌 버핏의 응대는 확 꽂힌다.
    그렇다. 요즘의 상황은 증말..... '이번 생은 처음'인 일이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질병 앞에 저들이-우리가 취하고 있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인류가 지금까지 밟아온 질병과의 역사, ‘의학의 진보’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 이 질문을 좇아 공부한 것을 쓰는 작가님의 글을 겨우 겨우 따라가면서...
    요즘 읽고 있는 푸코와 또 매일 암송하고 있는 맹자가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되었는데...
    맹자 이루 하 26장에서 언급한 고(故)가 떠올랐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세상에서 본성을 논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누적된 데이터를 파악하는 일일 뿐이다.
    .... 利 .... 천착...'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명식샘의 글이 저 문장을 궁구하는 질문을 촉발하게 했다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공부 몫으로 남겨두고^^;;
    응원하는 팬의 긴 댓글을 마칩니다~~~

  • 2020-03-20 23:21

    의료인류학, 생소한 용어인데 글이 참 흥미롭네요.
    전 본의아니게 코로나로 급박하게 돌아갔던 시기에 유럽에 있었어요. (지금은 한국행 비행기 기다리며 공항에 있어요) 언어가 안되니까 한국 기사 계속 확인하게 되고, 그러다가 유럽여행 커뮤니티 카페를 계속 들락거리게 되었죠. 여기 정보 업뎃이 빠르더라구요. 도움 많이 받았어요. (제가 사실 독일에만 있었던게 아니라서요 ㅠ)
    그런데 계속 이 카페 게시글이나 댓글을 보다보니 참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깝더라구요. 처음 카페에 들어갔던 시기가 2월 말경 부터였는데, 그때는 한국 코로나가 심해질때라 유럽여행을 말리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일수도 있으니까 괜히 외국 나가서 민폐끼치지 말자는 논리였죠. 여행의 자유를 외치며 강행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댓글이 자주 달렸구요.
    그러다가 유럽 각국에서 확진자가 급속히 늘면서 비상령 내려지고 이동금지, 국경폐쇄 등으로 여행객, 유학생 등 급거 귀국이 벌어집니다. 그 때 카페에서는 '왜 가지말랬는데 쓸데없이 가서는....' 비아냥 글이 보였죠.
    이어서 유럽에서 바이러스 가지고 오니까 자가격리 꼭 하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걸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더군요. 알아서 할테니 명령, 시비조로 말하지 말라. / 안 지키고 돌아다닌후 확진자로 판명나서 짜증난다. 여행취소하고 한국에 있는 우리들은 두달째 바깥 출입도 제대로 못하는데 유럽에서 니들이 가져오는 코로나때문에 더 갇혀살아야된다. (에휴, 이 때부터 저도 잠재적인 바이러스 보균자로 낙인찍히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지금은 이탈리아 전세기가 핫이슈입니다.
    한국 코로나 심해질때는 오지말라던 교민들이 이젠 거기가 위험해지니까 안전한 한국으로 와서 치료받으려고 한다. 우리 세금을 왜 그런데다 써야하냐. 이런 대세글에 반론도 있긴 하지만, 읽다보니 참 씁쓸하더군요. 인류애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때는 같이 살던 이웃을 외면하는 모습이 보여서요.

    명식샘의 글에서 본 의료체계는 그 정의가 굉장히 광범위한것 같은데요, 특히 "사회문화적 환경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검토할 때에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여론들도 의료체계를 구축하는데 고려가 되는 요소일까요?

    댓글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공항대기가 5시간이나 되어서리^^

  • 2020-03-21 14:51

    요즘 상황을 보면서 저는 살아오는 동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상식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순간을 다 같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의심하던 문제에서 발생한 상황들이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 문제에 마주한 셈이죠. 코로나로 죽든, 욕먹어서 죽든, 혹은 굶어죽든 말이에요.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규칙이나 매뉴얼대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 당황하고 한동안은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도 되더라구요.
    마스크를 둘러싼 모습이나 인간을 대할 때 나의 마음까지도 그런 걸 확인하는 순간이 있었죠.

    명식군의 글은 저도 늘 관심이 가요. 제가 늘 멈춰서는 지점에서 더 나간 글을 보는 느낌이랄까...
    의료인류학에서 말하는 생태학적인 계, 비생명적 환경까지 아우르는 그 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네요.
    요즘 마을경제에서 읽는 책과도 연결을 하게 돼서 더 그렇겠죠..
    글을 읽다보니 불특정한 위기의 상황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느라 놓치고 있는 것이 무언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속>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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