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앤톡]네이선 울프의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요요
2020-03-10 13:27
1203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의 저자 네이선 울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러스 학자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판데믹이 오기 전에 판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감염경로를 파악하고

그 위험을 사전에 예보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전문가가 쓴 책이니 온갖 전문용어가 등장할 것이고 읽기 골치아프지 않을까,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예상대로 처음보는 말들인 전문용어가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온다.

그러나 이 책은 예상을 깨고 놀랍게도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고 의문을 갖고 있는 현실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자 개인의 연구과정에서 겪은 폭넓은 경험을 엮어가면서 글을 풀어가는 솜씨도 만만치 않다.

저자의 주된 관심이 판데믹예방에 있는 만큼 이야기는 결론부에서는 판데믹은 예방할 수 있는가로 흘러간다.

낙관/비관으로 구분하자면 저자는 인간의 능력과 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쪽이다. 나는 그 입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래한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에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할 때 살짝 감동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먼저 유행어인 판데믹부터 살펴보자. 판데믹은 그리스어 판(pan,모두)과 데모스(demos, 인민)를 합한 말이다.

모두가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의미에서 판데믹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단계를 말한다.

흔히 돼지독감이라 불리는 H1N1바이러스는 엄청난 전파력으로 2009년 세계인구의 3분의1인 20억을 감염시켰다.(치사율1%)

2004년 최초로 사망자를 낸 조류독감 H5N1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60%였다.

바이러스는 진화의 속도가 빠르다.

어느정도냐 하면 하나의 숙주 안에서 여러 바이러스가 만나 뒤섞여 재조합된 모자이크 바이러스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저자는 3,300만명 이상이 감염된  HIV(에이즈)바이러스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진 어떤 사람의 몸에서

HIN1과 H5N1이 재조합되면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러스에 의해 치명적인 판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무르익어 있기 때문이다.

네이선 울프는 만일 외계인이 지구생명체를 연구하여 생물 도감을 만든다면

그 책의 대부분은 미생물들로 채워질 것이고, 인간의 위치는 아마 각주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중요한 각주^^)

지금까지 인간과 접촉하지 않았던 미생물들과의 접촉이 그 어느때보다 활발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자연을 오직 돈벌이와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는 현대문명은 그 어느때보다 야생과의 접촉이 활발하다.

과거에는 수많은 장애물 때문에 만나기 어려웠던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열대우림을 벌목하면 기후위기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벌목을 위해 길이 만들어지면 그 길을 통해 잘라낸 나무만 오가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도 같이 온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접촉이 있다고 해서 바로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숙주로 삼고, 인간-인간 사이의 이동이 가능한 바이러스가 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바이러스 연구자들에 의하면 설치류나 양서류 등의 바이러스가 바로 인간을 숙주로 삼기는 어렵다.

매개를 거쳐야 하는데, 그 매개는 대개 포유류이고 그 중에서도 영장류 동물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의 몸 안에서 살고 있는 바이러스이다. 박쥐는 포유류이면서 이동범위가 아주 넓다.

그런데 사람이 박쥐와 직접 접촉하여 물리거나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규모 축산시설이 망고밭 옆에 있을 경우, 망고를 좋아하는 박쥐가 날아와서 망고를 먹으며 배변을 한다.

떨어진 망고를 돼지가 먹으며 박쥐의 분변에 접촉한다. 그러면 그 돼지가 감염되고, 다른 돼지도 감염된다.

그 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흘린 피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된다.

물론 매개동물은 돼지가 아니라 밀림의 원숭이거나 침팬지 혹은 다른 야생동물일 수도 있다.

살아있는 야생동물이 거래되는 곳에서, 혹은 전세계의 야생 반려동물 유통경로를 통해 바이러스는 이동한다.

사람도 동물도 배로, 비행기로, 철도로, 자동차로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전세계는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의 원제는 'Virus Storm'이다. 바이러스 폭풍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우한이거나 신천지교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그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네이선 울프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사람은 야생에서 사냥으로 먹고 사는 원주민 사냥꾼들이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사냥을 한다. 사냥을 하지 않으면 그들의 가족은 굶어죽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생과의 접촉의 첨점에 있고 또 감염의 위험의 첨점에 있다.

고립되어 살던 때와 달리 하나로 연결된 세상에서 그들은 바이러스 전파의 첨점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네이선 울프는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네이선 울프 역시 야생의 바이러스를 채집하고 분석하고 감염의 위험을 분석하는 또다른 사냥꾼이라는 점.

이 책을 통해 그의 활동에는 야생의 사냥꾼들의 역할이 매우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그는 구글과 같은 전지구적 통신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판데믹의 조짐을 파악하고 예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한다고 한다.

대체 구글과 판데믹 예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궁금하면 이 책의 3부 바이러스 사냥을 읽어보시라.

여기까지 오면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는 (내가 보기에는) SF장르가 된다.

그러나 아마도 그건 내가 식견이 좁고 과문한 탓이리라. 혹은 이럴 때 빅브라더 같은 걸 떠올리는 올드보이이어서 그럴지도.

여기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바이러스 연구자도 구글의 시스템과 접속할 뿐만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디지털 스피릿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라는 뼈아픈 자각!(그러나 너무 늦은..)

 

그런데 바이러스는 대체 언제 발견되었을까?

인간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고, 그것에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명명한 것은 이제 겨우 100년도 안 된 일이다.

미생물 세계에 대한 이해는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꾼다. 우리는 인간중심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간의 몸의 10개 세포 중 하나만이 인간이다.

나머지 9개는 피부를 덮고 내장에서 살고 입안에서 번성하는 박테리아 들이다.

피부와 체내에 존재하는 유전정보로 보면 1,000개의 유전정보 중 하나만이 인간의 것이다.

인간 몸에 있는 미생물군계를 연구하는 학문은 21세기에 와서야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 내장은 '장기 거주자'인 병원균의 군집들로 가득하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소화도 못시키고 살아갈 수가 없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 병원균들이 우리를 살찌게도 하고 마르게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병원균들 중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아주 소수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질병을 일으킨 원인균을 찾아내 항생제로 병을 일으킨 아이들을 죽이려 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도와주는 아이들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몸을 지키는 일도 곧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면역력 강화가 살 길^^)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더 많지만 이 책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인구가 증가하고 세상이 연결되면서 우리는 폭풍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물들의 가축화, 도시화, 경이로운 교통 시스템, 거기에 더해 장기이식과 주사요법까지.

감염확산을 위한 모든 준비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판데믹을 예방하기 위해, 더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대한 판단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으로

네이선 울프는 UCLA 종신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글로벌 바이러스 예보'라는 기구를 만들고,

지금도 '바이러스 헌터'로서 중앙아프리카의 열대우림과 동남 아시아의 야생동물 시장까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이러스 연구에 올인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수십년간 발로 뛴 연구의 흔적이 묻어나는 책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를 읽어보자.

 

깨알팁 하나.

감염을 막기 위해 미생물 학자로서 당신은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으로 얼굴을 만지지 않으려 신경쓰고 손을 자주 씻는다고 답한다.

그리고 서구인의 악수와 같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재미있는 건.. 일본과 한국 처럼 고개를 숙이는 인사가 감염병 예방에 뭔가 영향이 있을 거라고 쓰고 있다는 것.ㅋㅋ

 

여기까지 읽은 분들을 위한 보너스!

네이선 울프의 테드 강의 링크 드려요~~

https://www.ted.com/talks/nathan_wolfe_the_jungle_search_for_viruses?language=ko#t-715870

 

 

 

 

 

 

 

 

 

댓글 5
  • 2020-03-10 15:41

    영화 <컨테이젼>에선 맨 마지막 장면에, 바로 그 판데믹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거의 <혹성탈출>급의 엔딩이야요^^)
    다국적기업의 벌목에 의해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돼지축사로 들어가고, 박쥐가 먹던 바나나(?)가 돼지에게 전달되고, 그 돼지가 홍콩의 유명음식점에서 식재료로 쓰이고, 그 요리를 담당했던 쉐프와 어떤 여인이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죠. 그리고 그 여인은 '1번'이 됩니다.

    테드 강의까지 보고 나서 든 생각.
    그분들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말라...우리는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샘플을 채취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야생동물 안에서 살고 있는 바이러스들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낙관과 희망이 오히려 불안해보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일리치가 이야기한대로 "정직한 절망", "무능의 급진성"이 더 필요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임’은 이제 하나의 망상이다. 그 같은 세계에서 ‘건강하다는 것’은 갖가지 기술의 조합, 환경 보호, 그리고 이들 기술의 결과에 적응하는 것으로 압축되며, 필연적으로 이들 세 가지는 모두 특권에 속한다."(<이반 일리치와의 대화>, p61)

    기도하고 싶네요. 일리치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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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0 18:51

    악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 2020-03-10 20:25

    우한이거나 신천지교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그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삶의 방식.. 인류는 너무 멀리 온 걸까요?
    꼭 인류가 지구에 존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 2020-03-10 21:36

    망할 글로벌시대! 망할 신천지 탓만 했는데~~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문명은 더더 빠르게 달려갈 것이고~
    우리는그저 또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 2020-03-10 22:15

    바이러스 헌터! 비장함이 느껴지는 이름이긴하지만 '우리의 문명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그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면 마냥 헌터만 믿고 있을 수 없겠네요. 그렇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어떤 삶의 방식이 필요할까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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