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탄생> 1회차 후기

동은
2020-03-09 05:46
401

 

 요즘 저는 <한문이 예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울아쌤과  <한자의 탄생>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단기 세미나와 마찬가지로 공지를 열어보려고 했는데, 일단 독일에 계신 토용쌤이 입국하기 전까지 빠르게 한 권을 읽기 위해서 여울아쌤과 말 그대로 ‘단기’ ‘집중’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읽어야 해서 공지도 잘 못하고 코로나 때문에 눈치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이렇게 계속 같이 읽고 있다~하고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후기를 씁니다!

 

 갑골문은 우리가 고대문자라고 여기고 있는 단계에서 상당히 후반에 있다고 합니다. 갑골문은 거북이 배와 소 뼈에 새겨져 있었기에 발견될 수 있던 것뿐이지, 그 이전의 기록은 대부분 도자기같이 부서지기 쉬운 재료에 새겨져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도자기에 발견된 문자와 갑골문 사이의 1000년 동안 급속도로 한자가 발전되었다고 말하지만 탕누어는 한자의 발전이 단순히 이런 시간상의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요. 보통 발전양식은 이상하게도 가장 관건이 되는 시기와 장소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이 발전의 관건이 되는 ‘발전’이 유난히 짧은 시대에 몰려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신석기시대의 모순’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1000년 사이에 이런 빠른 발전이 문자의 생성, 발전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000동안 이만큼 발전했다"라고만 생각하는 단순한 도식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째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탕누어는 처음 한자가 만들어 질 때 자연물이나 실재 모습을 본뜬 한자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지는 한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되었을 때, 그 역경을 견디고 만들어진 것이 한자였기 때문입니다.

보통 문자가 이 역경을 겪게 되면 대부분 더 이상 문자 안에 언어가 담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담게 되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그 이집트 문자가 그렇다고 해요.) 하지만 그렇게 된 문자는 금방 사멸하고 맙니다. 한자는 그 역경을 견디고 현대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누어는 한자를 ‘찬란한 글자’라고 말합니다. 더이상 모방을 할 수 없는 한계를 맞은 한자는 이제 의부와 성부에 따른 조합이 가능해지면서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설문해자에 있는 ‘육서’같은 조자 방법에 따라서 한자들이 우수수 만들어지게 된 거죠...! 한자의 발전을 단순한 도식관계로만 보면 이런 깊이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이 책에서 프롤로그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내용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 책은 한자, 정확히는 갑골문을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대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가장 처음 문자가 만들어지고, 갑골문으로 현재 사용하는 한자의 형성과정을 알수 있다는 단순한 인과과정으로 갑골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는 그 안에 담겨 있는 고대 세상의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그 예시로 바랄 망望과 성인 성聖의 갑골문은 비슷한 모양을 가졌지만 聖의 경우에는 귀와 입이 특징적으로 더해져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잘 듣는 사람이 곧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望에는 이런 구체적인 의미가 담긴 聖마과 다르게 상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겁니다. (이 사람은 어디에 서 있을까? 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서있는 시간은 아침일까, 저녁일까? 등등...) 그 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염두한다면 더 많은 해석이 가능해질 거에요.

 

 사실 저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커리큘럼에 있는 한자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맥락이 없고 뚝뚝 끓기는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만 받고 제대로 완성시켜보지도 못했습니다. 갑골문부터 현대까지의 한자를 내 상상의 영역으로 끌고와 사실여부와 관련 없이 써보고자 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맥락을 만들 수 있을지, 설득력을 가지 수 있을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어요 ㅜㅜ 그런데 <한자의 탄생>을 보고 뭔가...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그 시대의 배경을 알고 나면, 한자 속에서 보이는 것이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배경지식 없이 저만의 맥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신석기시대의 모순'으로라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가는게 재미있어요. 저는 나무가 있으면 숲이 아니라 잎맥부터 보는 걸 좋아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세미나는 앞으로 두 번 정도 더 남아있습니다. 남은 내용도 기대가 돼요! 읽은 뒤 후기 계속 남기겠습니다.

 

댓글 4
  • 2020-03-09 18:10

    저는 어깨에 무리가 오기 전까지 <논어>를 예습하고 있었는데요,
    동은이가 한자 상형자로 수업을 해서 그런지 한자사전을 볼 때 상형자를 유심히 살피게 되더라구요.
    예전에도 분명 상형자를 보기 했는데 어쩐지 근래에 했던 한자 공부가 훨씬 더 재미있더라구요.
    스케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저는 동은이의 글을 보면서 나머지 공부 하는 것으로...^^ㅎㅎ

  • 2020-03-09 20:34

    동은이 글을 볼 때마다 선생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거북이 배 아니고 등딱지, 배에는 글자를 새길 수 없는데... ㅋㅋㅋ
    <한자의 탄생>, 토용샘의 월간파지사유 진행할 때 같이 읽을 때 별 생각없이 봤다가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너무 많은 정보와 꽉꽉 눌러 쓴 글을 따라가기가 버거워서.
    동은이의 후기를 보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 ^^

    • 2020-03-09 23:22

      흑흑 저도 처음 글에 등딱지라고 썼는데 토용쌤한테 배라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라고 혼났지 뭐에요.
      한자의 탄생 첫장에 갑골문은 소 뼈나 거북이 배 위에 새겨져 있다고 써있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등딱지보단 배가 더 말랑말랑한게 새기기 쉽지 않았을지... ㅋㅋㅋ
      선생노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저보다 어린(?) 사람들과 만나려면 갖춰야하는게 많다는 걸 알아가는 요즘입니다.

      • 2020-03-10 00:39

        그러네.... 미안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서는' 거북이 배'라고 썼을까?
        대체로 다른 책에서는 거북이 등딱지라고 되어 있는데...
        탕누어가 가장 많이 인용한 허진웅의 <중국고대사회>에도 "갑골문은 상나라 후기에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 위에 새겨 놓은 점복의 기록을 가리킨다."라고 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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