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인생극장/7회> 부창부수(夫唱婦隨)로 본 별별 로맨스

기린
2020-01-28 21:31
401

 벌써 작년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였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주인공들의 로맨스도 한 몫을 했다. 여주인공인 동백에게 첫 눈에 반해서 순정을 바치는 용식의 ‘폭격형’ 로맨스가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그 로맨스는 동백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사기』에서 남녀의 로맨스를 주로 다룬 편은 아예 없을뿐더러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편도 「본기」에서 유방의 아내였던 여치의 일대기를 다룬 「여태후 본기」가 유일하다. 다만 부부로 연을 맺은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가물에 콩 나듯 발견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반전이 숨어 있다. 무엇보다 아내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들의 로맨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어리석은 남편을 일깨운 로맨스

 안영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재상이다. 오랑캐 출신으로 제나라 조정에 발탁된 후 세 명의 제후를 섬기면서 재상을 지냈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살림살이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밥상에는 한 가지 이상의 육류가 오르지 못하게 했고, 첩에게는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안영의 성품을 흠모하는 이가 있었으니 안영의 마부 아내였다.

어느 날, 안영이 외출하려고 마차를 대령시켰다. 마부는 재상을 모시는 자신의 처지에 우쭐하여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마부의 아내가 보기에 그런 남편이 영 마뜩찮아 보였다. 저녁이 되어 남편과 마주앉은 아내가 말했다.

 

-당신과 헤어지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오?

 

-재상님은 당신보다 덩치가 작아서 여섯 자밖에 안 되는데도 재상자리에 올랐어요. 근데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는데도 남의 마부 노릇이나 하고 있잖아요.

 

-이제 와서 내가 마부라서 싫다는 거야?

 

-당신은 재상님이 어떻게 재상 노릇하는지에 대해 손톱만치도 관심이 없고 마부인 주제에 재상인양 거들먹거리는 꼴은 또 어떻고요! 그래서는 제대로 마부 노릇도 할 수 없어요!

 

아내로부터 버림받기에 이른 마부는 어떻게 했을까?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제 일에 충실함은 물론 매사에 겸손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안영이었다. 안영은 그 까닭을 물었고 마부는 사실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안영은 그를 대부로 추천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순종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일 때 해피엔딩의 가능성도 그만큼 상승하게 된다.

 

 

2. 현실에 발 디딘 로맨스

 

 사마상여는 한(漢)무제 때의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장성하여 여러 유세객들과 어울리면서 글쓰기에 재능을 드러냈다. 집안의 살림살이는 넉넉지 않았고 별다른 직업도 없었지만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고을의 현령도 있었다. 어느 날은 현령의 초대로 탁왕손의 집안 잔치에 가게 되었다.

 탁왕손은 노복을 800여 명이나 부리는 부호였다. 잔치 상에 이르러보니 수백 명의 빈객이 어울리고 있었다. 상여의 인기는 잔치 상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은 흘긋흘긋 그를 훔쳐보았다. 현령은 그 분위기를 틈타 사마상여에게 거문고를 주며 말했다.

 

-그대가 거문고 연주 솜씨가 뛰어나다 들었소. 한 곡 듣고 싶소이다.

 

사실 사마상여의 연주는 탁왕손의 딸이면서 과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군의 마음을 사기 위한 의도로 기획된 것이었다. 문군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별당에서 사마상여의 연주를 들은 문군이 관심을 보였다. 잔치 마당을 떠나기 전 사마상여는 심부름꾼에게 한바탕 선물을 안겨 보내면서 문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문군은 당장 그날 밤으로 보따리를 싸서 사마상여에게 왔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고향을 떠나 도성으로 향했다. 도성에 이르러 찾은 거처는 네 벽만 겨우 서 있을 뿐이었다.

한 편, 탁왕손은 자신의 딸이 사마상여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 한 것을 알고 대노했다.

 

-딸은 쓸모가 없다고 할 때 내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참말이구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한 푼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문군은 아버지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사마상여에게 말했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요. 저한테는 아버지도 있지만 그 외 형제들도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돈을 빌려 뭐라고 해서 먹고 살아야지요.

 

고향으로 돌아 온 두 사람은 돈을 빌리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술집을 차렸다. 문군은 주모가 되어 직접 술을 팔고 사마상여는 머슴들과 허드렛일을 하면서 술집을 꾸려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탁왕손은 기가 찼다.

 

-이런 배은망덕을! 내 챙피해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 없다.

 

그러고는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형제들과 자식들은 그런 탁왕손에게 번갈아 드나들며 구슬렸다.

 

-고작 셋 뿐인 자식이오. 게다가 넘치는 저 재산을 어디에 쓸 것이오. 사마상여가 비록 가난하긴 해도 들어보니 쓸 만한 재목이라고 합니다. 우선은 거두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 치욕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이렇게 되자 탁왕손도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탁왕손은 문군에게 한 재산을 떼 주었고 두 사람은 그예 술집을 접고 다시 도성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사마상여의 유혹이 낭만이었다면 문군의 사랑은 현실이었다. 현실에 뿌리내린 문군의 사랑은 예상치 못한 가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후 사마상여는 한무제의 전속 작가가 되어 그 사랑에 보답했다.

 

 

3. 천하를 함께 경영한 로맨스

 

 유방(한고조)과 여치(여태후)는 여치의 아버지가 중매를 했다. 유방의 고향인 패현 현령의 손님으로 갔다가 유방의 인물됨에 반한 결과였다. 딸을 유방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집안에 알렸더니 아내가 버럭 했다.

 

-패현 현령이 중매를 넣었을 때도 거절해놓고 어디 이름도 없는 나부랭이한테 보낸단 말입니까?

 

여씨 집안은 나름대로 재산 규모가 있었던 반면 유방은 주막집에서도 줄곧 외상술만 마셨던 형편이었다. 결국 여치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고 유방과의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을 두었다. 진섭의 난을 시작으로 진(秦)나라에 반기를 든 무리들이 천하에서 일어날 때 유방도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여치는 유방과 헤어져 갖은 고생을 했다. 유방과 항우의 접전이 계속 되었을 때는 항우 진영에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여치의 집안에서는 위기에 몰린 유방을 돕기 위해 새로 병사들을 모집하여 유방의 전력을 보충해 주기도 했다.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이 천자의 자리에 올랐고 아들 혜제가 태자가 되었다. 공을 세운 신하들을 논공행상하는 과정에서 여치는 장차 한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대신들을 없애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유방이 전장에서 함께 고생했던 한신을 차마 처단하지 못하고 망설였는데 여치가 나서서 해결해버렸다.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궁에서 떠나 있었던 유방은 이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못했다.

반란의 전장에서 빗나간 화살을 맞은 유방은 결국 병석에 눕고 말았다. 병세는 호전되지 못하고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여치는 유방의 병석에서 물었다.

 

-폐하가 돌아가시고 소하가 죽으면 누가 대신합니까?

 

-조참이 할 수 있소

 

-그 다음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릉이 할 수 있소. 그러나 왕릉은 고지식한 면이 있으니 진평이 그를 돕도록 하는 것이 좋소.

 

천하를 차지하기 위하여 안팎으로 협력했던 부부에게 사후 권력의 향방은 목숨 연장보다 중요한 결정사안이었다. 고조의 뒤를 이어 혜제가 천자가 되었다. 하지만 혜제는 결국 여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혜제의 아들은 너무 어리고 유방에게는 혜제 외에도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다른 유씨들에게 이 권력을 넘길 것인가. 여치는 혜제의 빈소에서 마른 곡소리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았다. 여치의 서슬에 안절부절 못한 승상이 여씨 집안사람들에게 전권을 준다는 통보를 받은 다음에야 안심하고 눈물을 흘렸다.

부부로서 이들은 일개 평민이 천자가 되는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였다. 그들의 천하는 이전에 제후들이 나눠가지는 봉건체제가 아니라 천자에게 집중되는 중앙집권체제였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부부의 인연에서는 세드엔딩 이었다. 유방이 척씨 부인을 총애하고 그 소생을 태자로 만들려는 바람에 둘의 관계는 파탄이 났고 자식들도 결국 여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천하 백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유씨와 여씨가 구중궁궐에서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온 천하는 드디어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백성들도 살만한 시절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이들의 부창부수야말로 결과적으로 천하가 평탄해지는 해피엔딩에 이르게 하는 동력이었던 셈이다.

 

 

부부사이의 덕목을 가리키는 부창부수의 원뜻은 남편이 주장을 하면 부인은 순종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요즘 이 사자성어는 부부가 서로 뜻을 맞춰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위에서 살펴본 로맨스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남편의 뜻에 아내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도리는 없었던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처한 상황에 따라 협력으로 대처해나가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역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차별도 엄연히 존재한다. 일터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집안에서 육아와 관련해 아내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 차별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협력보다는 대립의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벌어지는 별별로맨스에서도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쌍방향의 협력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졌다. 그러자면 일단 만나기라도 해야 할 터인데 저마다 홀로를 외치는 이 시절이 하 수상하다.

 

 

 

 

댓글 2
  • 2020-01-29 15:26

    그럼 미팅이라도 잡아볼까요? ㅋㅋ

  • 2020-01-30 09:13

    고전 속의 부부? 연애? 이야기 재밌습니다.
    그리고 기린샘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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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2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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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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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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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75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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