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인문약방 / 7회> 늙음이 당황스럽다

둥글레
2020-01-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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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의 인문약방/7회]

 

 

늙음이 당황스럽다

 

 

작년 중반부터 생활에 변화가 있었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약국을 옮겨 일하고 있다. 새로운 약국엔 노인 손님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연스럽게 나는 노인들과 예상치 않았던 관계 속에 놓이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는 모르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 변화들이 자주 날 당황스럽게 했다.

 

 

약국으로 출근하는 노인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약은 노인이라면 응당 복용해야 하는 것처럼 노인들 처방에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 퇴행성 관절염, 백내장, 빈뇨나 요실금, 불면증, 변비 등 노화 현상에 대한 약들이 추가된다. 최근엔 치매를 예방해준다는 뇌 영양제를 너도 나도 유행처럼 지어간단. 어떤 분은 미리 예방한다면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와서 날 놀라게 했다. 약국에 자주 오는 노인들을 보면서 알게된 사실이 많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은 기본이고, 이 병원 약을 먹고 잘 안 낫는 것 같으면 바로 다른 병원으로 가서 또 약을 탄다. 종합병원에서부터 동네에 있는 병원들까지 섭렵하고 다닌다. 노인들은 약으로 산다며 한 달 생활비보다 한 달 병원비가 더 많이 든다는 한 할머니의 푸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어떤 특정한 약에 몸을 길들인 노인들도 많다. 물약으로 된 종합감기약(판콜 또는 판피린)을 감기와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복용하거나, 박카스의 경우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노인들의 최애품이다. 한 할머니는 액상 멀미약을 매주 10병씩 사가는데 사실 이 모든 약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에 중독된 것이다. 이밖에 우황청심원이나 소화제 물약 등도 매주 사가는 노인들이 있다. 이런저런 증상들 때문에 먹기 시작한 약들이겠지만 이미 습관성이 되어 버렸다.
왜들 이렇게 노인들이 병원과 약국에 출근하듯 가게 되었을까? 노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몸의 기능이 퇴화하고 면역력도 낮아지기 때문에 불편하고 아플 가능성이 증가한다. 하지만 대증요법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의학 아래에서는 노화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노화가 조금이라도 불편을 준다면 모두 증상이고 질병이 된다. 의료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노화를 불편이나 혐오로 보는 시대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니 누구나 노인이 되면 병자가 된다. 덕분에 고령화된 사회에서는 병자의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나라의 의료 및 복지 제도도 이에 따라 정비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비급여 약 없이) 총약제비가 만원 이하면 65세 이상 노인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1,000원이다. 감기약 3일분, 관절약 5일분 정도는 1,000원에 받아 갈 수 있다.
노인에 대해 혜택을 늘린 건강보험제도가 좋은 점도 있지만, 노인들이 약을 무분별하게 복용하게 하는 허점도 생긴다. 여러 병원과 약국을 쇼핑하듯 다니다 보니 노인들이 한 번에 먹는 약의 개수가 열 개 가까이 되는 경우도 흔하고 약효가 겹치는 경우도 많다. 약의 대사와 배설을 주로 담당하는 간과 신장의 기능이 노화로 인해 약화되어 있는데, 이 많은 약이 한꺼번에 몸속에 들어가면 당연히 무리를 주고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든 나타날 수밖에 없다. 5종류 이상 약물을 먹는 ‘다약제 복용’ 비율이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우 82.4%이다. 이는 호주(43%), 일본(36%), 영국(13%)과 비교했을 때 2~6배 수준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병원이건 약국이건 또 제약회사건 노인들 때문에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노인들이 소비하는 의료와 약은 많다. 늙는다는 게 복용하는 약의 알 수를 늘리는 거라고 정의해도 될 정도다. 많은 제약회사들이 생활습관병 뿐만 아니라 노인성 질환에 대한 약이 이미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일 것이다.

 

 

 

늙음이 당황스럽다
노인들의 약물 오남용을 걱정하는 한편 약국에 오는 노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한 방향일 때가 많다. 소통이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게 되고, 그들의 말을 듣지만 어디까지나 서비스 매너에 불과할 때가 많다. 내가 이런 태도를 갖게 된 데에는 분명 고집불통 일부 노인들도 한몫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나에게 늙음에 대한 낯설음이 있고 그 낯설음 뒤에는 늙음을 싫어하는 내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노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성당에서 몇년간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봉사를 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그들은 어디까지나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할 때 늘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난 노인들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다. 친가든 외가든 조부모들과 함께 살아볼 수 있는 복은 내게 없었다. 내가 아직 철없던 시절 양가 조부모들은 모두 돌아가셨고, 급격하게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되던 시절을 거쳐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함께 살게 되면서 엄마의 늙음도 내게는 갑작스럽기만 하다. 지금 엄마는 70대 중반으로, 나에게 가장 친근했던 외할머니가 60대에 돌아가셨으니 내가 가까이에서 경험한 늙음을 이미 초과했다. 엄마와 함께 20년을 살았고 이후 더 긴 세월을 떨어져 살았다. 내 마음속에서 엄마는 50대 초반에 멈춰있었다. 당뇨와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엄마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엄마가 체력만이 아니라 지력도 떨어지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엄마와 얘기를 하면서 가끔 엄마의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 엄마가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놀란다. “나도 이제 늙으니까 너네가 지적하는 소리 듣기 싫다!” “우리 나이는 가만있어도 미움받을 나이라더니...” 이렇게 얘기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버럭 화가 난다. 약국에서 만나는 노인들과 엄마가 겹쳐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늙음을 대상화하고 있지만 실은 나도 늙고 있다. 누구라고 늙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어느덧 내 마음속 엄마의 나이에 나도 가까워졌다. 노안은 물론이고 이제 생리마저 불규칙해지면서 내게 완경(폐경)이 머지않았구나 생각한다. 작년부터 몸의 변화를 많이 느끼고 있다. 활동력이 떨어지고, 기운도 없고 기분도 많이 가라앉는다. 또 몸이 자주 가렵기도 했고 요즘은 사춘기 때도 나지 않았던 여드름이 얼굴에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증상들과 갱년기를 연결시키지 못했다. 속이 안 좋은가? 아님 화장품 문제인가? 별별 생각을 해보다 결국 호르몬 수치에 변화가 왔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사실 내 몸에 닥친 노화가 가장 낯설고 당황스럽다.

 

 

 

 

늙지 않으려는 세상
우리 모두는 성장하고 나면 늙는다. 성장과 노화를 나누지만 결국 태어난 이후엔 죽음을 향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인 노화나 늙음이 우리 사회에서 없는 척하는 단어가 되었다.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 눈앞에 자주 목도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오십 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십 대의 미모와 젊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달군다. 자기 나이 때로 보이는 것은 슬픈 일이 되었다. 늙어도 해외여행을 다니는 ‘꽃보다 할배’들은 행복한 노년의 기준이 되어 이제 효도의 우선순위에 해외 여행을 뺄 수 없다. 내가 늙음에 당황하고 있는 이유도 이 사회 일원으로서 나 또한 이런 분위기에 부지불식간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왜일까? 젊음이 왜 우리의 욕망이 되어버렸을까? 많은 것을 향유하되 젊은이처럼 향유하길 원한다. 아프면서 오래 살기는 싫다. 이런 욕망을 먹고 크는 의료산업을 포함한 각종 산업이 있다. 자연스러움을 거스를 때 비용은 발생하기 마련이며 이런 비용은 그 산업들을 키운다. 과학의 발전도 자연을 정복하는 쪽으로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 해왔다. 이제 과학은 죽음이라는 필멸성까지도 극복하려 한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영생을 이루려는 사람들(영생주의자immortalist)까지 나타났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또는 초인간주의)은 현재 과학의 큰 테마 중 하나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트랜스휴머니즘이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이다. 이것은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유래한 인간 중심적 사상이라고 하니 어련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급진적인 경우 트랜스휴머니즘은 일체의 육체적 존재를 경멸하며 육체를 탈출하길 원한다. 이들은 컴퓨터에 두뇌의 정보를 옮겨 개인의 자아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기술적 불멸성을 이루려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 추구하는 불멸성은 자본의 끝없는 성장주의와 닮아 있다. 죽음까지도 극복하고자 하는 이 시대에 늙음은 가치가 없다. 노동할 수 없고 돈도 벌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는 늙음은 비생산으로 불필요하다. 그나마 의료나 실버 산업에게 늙음이 돈을 버는 대상이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늙음을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가 찬양하는 주요한 가치에서 멀어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내 몸의 변화를 갱년기로 인식했을 때 바로 든 생각은 호르몬을 대체할 식물 추출물을 먹을까? 였다. 갱년기로 인해 너무 괴로워진다면 이 약의 복용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갱년기에 대해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한 나에게 놀랐다.
과거의 나는 주근깨를 빼는 등 여러 피부과 시술을 했고 비싼 화장품들을 사용하면서 외모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럴 때마다 엄마가 걱정하며 내게 했던 말은 “자기 나이에 맞는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한다”였다. 엄마의 말에 나는 “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게 좋지!”라고 응수했었다. 이런 욕망이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었구나... 엄마는 동안 열풍에는 갇히지 않았지만 여행을 하며 노년을 여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욕망은 가지고 있다. 이 욕망들에는 어떤 출구가 있을까?

 

 

‘다가오는 것들’
약국에서 만난 노인들, 다시 함께 살게 된 엄마, 그리고 갱년기에 접어든 나. 늙음이 3단 콤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이젠 늙음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단 콤보의 늙음 덕에 내 늙음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약국에서 노인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친해진 분들도 있다. 눈에 익은 노인들과 좀 친해졌다고 약을 먹는 이유나 증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변비가 있는 분들은 밥맛이 없다며 끼니를 거르거나 섬유질이 부족한 빵 같은 음식을 자주 먹고 있었다. 밥맛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들이 밥을 하고 반찬을 해서 먹는 게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변비로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손님한테는 채소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가 주저된다.
노인들이 박카스를 박스째 사가면 다들 카페인에 중독되어 동아제약만 좋은 일 시키는 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박카스를 통해 정을 주고받는 그들의 삶을 비하할 수 없다. 작년 연말 노인정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었다. 여러 할머니들이 노인정에 가져간다며 쌍화탕이나 박카스를 사 갔다. 어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로 지팡이를 짚고서 박카스 두 박스를 사러 왔다. 노인정에 간다고 해서 이미 여러 명이 사갔으니 한 박스만 사가라 했는데 안 된다는 거다. 결국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 길 건너까지 배달(?) 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새 약국에서는 혼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약국을 비우기가 어렵다.)
한 할머니는 멀미약과 한방 소화제를 달고 사는데 어느 날부터 남편 분이 대신 왔다. 친구와 이름이 같아서 친해진 할머니인데 거동이 불편하셔서 요새 통 얼굴을 못 보게 되었다. 말을 못 하는 할머니 남편분이 내민 쪽지는 ‘저 박연옥인데 아시죠?’로 시작하고 있었다. 쪽지 속의 그 이름을 보면서 할머니와 나 사이에 생긴 친밀감에 마음이 훈훈했다.
엄마와 노인들에게 자본주의 운운하며 ‘꽃보다 할배’를 욕하거나 병원에 자주 가지 말라는 말은 잘 안 통할 거다. 하지만 이 늙음들을 지금 접할 수 있는 나는 다행이다. 약국에서 만나는 노인들 덕에 또 엄마와 함께 살면서 난 늙음에 점점 친숙해지고 있다. 인문학 공부 속에서 술술 말했던 죽음의 필멸성은 늙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지금에야 조금 말할 수 있을 성싶다. 딸들 때문에 고향을 떠나오셨지만 변치 않은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인생의 후반을 바삐 살고 있는 엄마를 응원해 줘야겠다. 약으로 점철되었지만 약국에 오는 노인들에게도 연대와 우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몇 달 전 친구가 추천해서 본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 생각난다. 영화는 중년의 한 여인에게 닥쳐온 여러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늙음 앞에 다가오는 것들은 남편의 배신과 떠남, 어머니의 죽음, 교과서 저자에서의 배제... 다가오는 것들은 떠나는 것들이었을까? 그녀는 이러한 상실을 젊은 제자와의 로맨스로 극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을 가까이 한 책들이 놓인 그녀의 거실엔 편안함이 있었다. 떠나는 것들 뒤에 진정 다가오는 것들을 봐야겠다. 인생의 봄과 여름이 지나가는 것이 나에게도 더 이상 슬픔의 상실이 아니었으면 한다. 내 욕망을 젊음의 시절에 가둬 놓기보다는 가을과 겨울이라는 수렴의 시절에 새로 배치해야지. ‘젊음’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욕망의 배치를 위해, 늙음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기르기 위해 지금 나는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글 :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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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댓글 5
  • 2020-01-14 14:21

    다가왔고 다가올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년씩 늙어가고 익어가는 인생을 살 수 있을것 같은 글이네요.
    어느날 잘 살 수 있는건 아닐테니 조금조금 천천히라도 꾸준하게 건강함 삶을 실천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0-01-14 22:58

    예전같지 않다는 말의 의미가 제게는 점점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건강하다는 말의 의미 또한 변해가는 와중에 만난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01-16 21:29

    저는 결혼할때가 참 당황스러웠어요. 그다음은 출산을 했을때이구요. 이제 내삶은 빼박이구나 뭐 그런 생각때문에요. ㅋㅋㅋ
    늙는다는건 좋은 것 같아요. 죽음과 가까워 지니까요. 죽음을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삶도 비교적 잘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더라구요.

    • 2020-01-17 08:10

      전 그런 통과의례가 없어서인가봐요..ㅜㅜ
      그래도 봉옥님의 생각은 특별해요. 늘 보고 배웁니다. ^^

  • 2020-01-17 09:53

    박연옥 할머니께는 각별히 잘 해드려라!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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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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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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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67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71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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