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젊은 날의 고전 - 헤어지느냐 사귀느냐, 그것이 문제일까?

고은
2019-12-24 16:55
339

 

 

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젊은 날의 고전>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소학>이나 <논어>처럼 같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고전이 20~30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사실 고전에는 '고리타분하다' 보단 '당혹스럽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오늘날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도처에 깔려있어, 자연스럽게 "왜?"라는 질문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계속 던지다보면, 어느새 질문의 대상이 옛 글에서 오늘날의 내 모습 혹은 사회로 바뀌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 도입부에 등장하는 사연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각색한 픽션이다.)

 

 

 

 

 

 

헤어지느냐 사귀느냐, 그것이 문제일까?

 

 

 

 

 

 

 

 

1. [사연] 권태로움에 빠진 연인

  애인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보다 더 운명인 상대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몇 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인연이 되었고 서로에게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감정적으로만 충실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분명 첫 연애는 아닌데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연애를 하며 상대방에게 의지를 해본 것도, 끈끈한 신뢰 같은 것이 형성된 것도, 연애를 통해 저의 부족한 부분을 이토록 성장시킨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나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인연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데일 것 같이 뜨겁던 연애도 결국 식기는 식더군요. 이제 저희는 서로에게 연인이라기 보단 친한 친구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같이 고민합니다. 헤어져야 하나? 계속 사귀어야 하나? 헤어지기엔 ‘이렇게 서로를 믿고 아껴줄 사람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계속 사귀겠다고 결정하기엔 연애의 느낌이 들지 않아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종종 가기도 하고, 뜨겁던 연애 초반이 자주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흔히 권태기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는 헤어지면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친구는 미련일 뿐이라며 헤어지라고 말합니다. 이 친구의 말을 들으면 이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친구의 말을 들으면 저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헤어지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아니면 계속 사귀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2. 연애의 아이러니

  연애를 초반에는 누구나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소스라치게 예민해지고, 일상이 활력 넘치게 변하는 모습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질 때 즈음이 되면 연애가 이번만의 혹은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리는 어째서 음원 차트에 연애 노래가 그렇게 많은지, 그 많은 연애 노래의 레퍼토리가 거의 다 비슷한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연애라는 것은 나만의 특수한 경험이라기보단 차라리 이 시대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다른 관계보다 더 특별한 관계, 다른 관계와 거리를 두고 형성되는 둘만의 세계!
  사실 『小學』에는 여러 관계에 대한 글이 모여 있지만, 오늘날 연애와 비슷한 관계를 찾기는 힘들다. 비슷한 관계를 찾으려하기 보단, 오히려 옛사람들 관계의 맺고 끊음에 대해 고민할 때 오늘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옛 중국에서는 관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함부로 맺고 끊을 수 없는 관계와 맺고 끊는 것이 가능한 관계, 대표적인 전자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고 대표적인 후자의 관계는 친구이다. 전자의 경우에 사람들은 삶과 죽음처럼 주어진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어떻게 그것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어떻게 맺고 끊을 것인가 고민했다.

 

  子貢이 問友 孔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
  자공이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해 묻자, 공자는 “벗에게 자신의 생각을 진심으로 말해 주고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그만둬 스스로 치욕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명륜, 92장)

 

  대개 연애를 할 때 둘만의 세계에 푹 빠지고 싶어 하고, 실제로 많은 사건이 단둘만의 세계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나는 친구들에게 연애 조언을 할 때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정말로 둘만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연애 초반에는 서로에게 푹 빠져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배제하고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관계와 연결되어 있고, 무수히 많은 사건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벌어지고 있다. 서로가 둘만의 세계로 완전히 빠지지 못하게 될 때 대부분의 연애 관련 문제가 발생한다. 연락에 소홀하다거나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거나 일이 우선이라거나 하는 문제는 -일부분 상대방의 성향이나 성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부분 서로에게 독점적인 관계가 되지 않는 상황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별을 고민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초기의 연애 단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건이나 사람들과 관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는데, 연인 관계가 여전히 독점적인 관계로 남아있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연애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독점적인 관계를 원해서 만나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독점적인 관계가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을까? 그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과거에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친구 관계라는 것 역시 둘이, 혹은 몇몇이 맺게 되는 관계이다. 때때로 다른 사람을 향해 질투도 했을지 모르고, 어떤 사건으로 인해 서운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관계를 맺고 끊는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친구 관계는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나 맺고 있는 관계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었다. 친구와 관계를 맺는 ‘서로 잘 이끌어’ 주기, 즉 함께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끊는 이유는 ‘스스로 치욕’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걸어가고, 서로에 의해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주변 배치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변하고 있는 기운에 맞춰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곤란한 상황에서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애는 단둘만의 관계라는 이유로 다른 관계나 사건이 도외시되고, 맺고 끊음의 문제가 순전히 단둘만의 이야기로 축소되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단둘만의 이유로 헤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완전 뻥이다. 사랑해도 헤어지기도 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도 사귀기도 한다. 이것은 이미 연애가 단둘만의 일이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헤어질까 계속 사귈까하는 문제는 둘 사이만 놓고는 알 수도 결정할 수도 없다.

 

 

 

3. 선택을 보류하기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친구들의 말마따나 한시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강렬한 감정에 대한 망상 때문에 잘못해서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미 끝난 관계인데 미련으로 인해서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을, 그것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땐 오랜 시간 진득하게 마음을 다해야 한다. 그럴 때야 비로소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는데, 이는 상대방을 내 입맛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나 나에게서만 문제를 찾기보단, 둘이 혹은 각자가 놓여있는 관계와 그 맥락에서 둘이 맺고 있는 관계를 돌아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움직이는 것은 상대방이나 나 자신이 아니라 관계다. 그렇다고 관계가 바뀌고 있다면 연애를 지속하라는 말은 아니다.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말은 관계 맺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집착하고 불안해지는 방식으로 바뀐다면, 그래서 삶이 초췌해지고 관계로부터 압박을 받게 된다면 그 연애를 지속하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공자는 만일 관계가 서로에게 좋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만두라며 과감하게 조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자의 말로부터 맺고 끊음을 선택할 수 있는 척도에 대해 이러한 힌트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득하게 노력해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면 계속 사귀고, 서로서로 갉아 먹고 있다면 헤어져라! 아니다. 우리는 공자의 말로부터 선택의 척도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공자의 말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지 혹은 서로를 갉아 먹고 있는 것인지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면 사연자가 고민을 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연애가 서로 신뢰를 더욱 쌓아가고 있는 것인지, 오히려 다른 욕망이 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도록 하며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어쩌면 사연자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공자의 말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원리적인 이야기여서 사연자를 더욱더 답답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공자의 말로부터 선택하는 데 명확한 기준을 찾지 못해 답답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실제 상황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선택,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황에 대한 명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혹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확한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둘 중 더 나은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연인관계가 오래될수록 “좋아한다면 사귀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헤어져라” 와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관계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거기서 어떻게 단둘만의 고유한 관계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사귀느냐 혹은 헤어지느냐 중 하나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명확하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규정하고 선택을 실행에 옮기려 애쓰면 오히려 주변 상황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현재 애인과의 관계에서 연애의 느낌이 들지 않아서 연애하고 싶지 않다는 사연자의 욕망도 틀린 것이 아닐 것이고, 신뢰가 두텁게 쌓여 있는 사람과 관계를 헤치고 싶지 않다는 사연자의 욕망도 틀린 것이 아닐 것이다.
  친구들의 조언은 무언가 결단을 내리기를 권유하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 바보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리라고 예측한다. 마음이 복잡하고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것은 상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합리적인 하나의 선택을 하고 싶은데 불가능하므로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부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끊어내고 어떤 선택하지 않더라도 사건은 벌어지고, 관계는 변화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연애일지라도 그 연애는 독점적이지 않고, 사회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속 사귀게 될 수도 있고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타성적인 행위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섣부르게 끊어내려는 마음을 덜어내고 변화하는 상황들을 따라 함께 살아가라는 것, 이것이 공자의 조언이다.
  그렇다면 명확하게 이 상황을 판단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보단 선택을 잠시 보류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사귀겠다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보류하겠다는 생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관계를 확장하고 싶어 하는 당신의 욕망이 선택을 보류하고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결국 헤어지자는 말을 뱉어버릴 수도 있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와 연애를 잘 이어나갈 수도 있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헤어지는 것이나 계속 사귀는 것, 둘 중 더 현명한 선택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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