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봐야할까?

문탁
2019-10-28 08:51
398

1.

내가 <필름이다> 사장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돈벌이에 재주가 없는(혹은 없어보이는) 청량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바람

둘째: 해야 할 산더미같은 일을 미뤄두고 영화를 보는 이유를, <필름이다> 때문이다, 라고 둘러대려는, '불순한' 욕망

둘 중에 무엇이 더 본질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몇년을 돌이켜보면 첫번째와 관련해서는 거의 진전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두번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기쁨으로 <필름이다> 활동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 며칠, <82년생 김지영>을 봐야할까, 말아야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이제 <필름이다>는 "나에게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내가 읽지 않았을 뿐더러 읽을 생각조차 전혀 없었던 작품이고, 그 소설이 영화화 된 후 <82년생 김지영>이 '평점테러'니 뭐니 논란이 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어도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82년생 김지영>을 봐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2.

 

 

 

"해외 영화제에서 거의 30개 넘는 상을 받고, 감독 자신의 자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날아다니는 동물 제목이라는 점(농담처럼 느껴지긴 하나 뭔가 위태롭고 힘겨운 비행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비슷할까)에서 10년 전의 <똥파리>와 지금의 <벌새>는 여러모로 비교된다. 아버지를 극복하려 하지만 그 아버지를 닮아가고 마는 <똥파리>의 그 지겨운 고해의 남성 서사가, 오히려 <똥파리>보다 앞선 1994년을 배경으로 하는 <벌새>에 이르러 한 여중생의 내밀한 유년기의 여성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그야말로 한국 독립영화의 인식론적 단절의 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똥파리>가 역시 그보다 10년 전에 나왔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와 마찬가지로 한국 독립영화의 불굴의 남성적 생명력의 기록이라면, 그리하여 뭔가 그것이 마치 한국 독립영화 고유의 이미지나 에너지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면, <벌새>를 비롯하여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과 <우리집>,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이완민 감독의 <누에치던 방>, 유은정 감독의 <밤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개봉예정인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이옥섭 감독의 <메기> 등을 통해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주성철/ <씨네21>)

 

<필름이다>에서도 이 현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기획전으로 11월, 12월 '여성영화'를 틀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필름이다>의 '여성영화 기획전'을 계기로, '메갈', '랫팸', '미투운동' 등 몇년 동안 우리 사회를 핫하게 달군 이슈들을, 우리 수준에서 좀 더 반추하고 수렴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열리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문탁에서도 페미니즘 세미나와 강좌가 있었지만...음... 토론의 장이 제대로 열렸던 적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도대체 무엇이 '여성영화'인지, 그 개념을 규정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로 여성영화를 규정하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늘 역사적이고 논쟁적일 수 밖에 없는 언표들이다. <필름이다>에서는  '여성영화기획전'에 우선적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여성의 서사"를 다룬 영화를 틀어보자고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3.

그런데 그런 영화는 또 어떻게 선정한다는 말인가? <필름이다> 스탭 셋(싸장, 청실장, 둥글레) 사이에서 자료를 찾고 공유하고 미리 영화를 봐야 하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ㅠㅠㅠㅠ

그 와중에 나는 내가 사랑한 <벌새>나 <메기>만큼이나 현재 상영되고 있고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핫한 영화, <82년 김지영>을 논하지 않고 <필름이다> '여성영화기획전'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부딪힌 것이다.

 

 

음...이제 <필름이다> 사장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다시 말해....아, 바쁜데 무슨 영화야... 시간 있으면 글을 써!!... 아니면 운동을 해!!!!.........같은 맘 속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보는 것을 넘어서, <필름이다> 사장이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은 영화도 봐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 것이다.

 

이 영화, 진짜 봐야 할까? 

영화를 보면 혹시 내가 읽지도 않고 그 소설에 대해 내린 선판단이 '혹시나' 바뀔까? (아니면 '역시나'로 굳어질수도^^)

혹은 (영화 <조커>를 넘어) <조커>논쟁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를 독해하는 어떤 징후이듯, <82년생 김지영>도 그런 것일 수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봐야 하는 것일까?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것의 핑계도 <필름이다>이듯,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보는 것의 핑계도 이제 <필름이다>가 되었다. ㅋㅋㅋㅋㅋ

댓글 2
  • 2019-10-28 13:28

    책은 다 보지 않았지만 영화로 나왔다기에 너무 보고싶은 영화 중 하나네요
    보고 온 친구들 말로는
    꼭 혼자 보라며,, 무조건 운다고,,

  • 2019-11-05 09:25

    무조건 울 가능성 거의 없는(왜냐? 내 맘이 그렇다는 거다)... 소설도 안 읽은..
    그런데 어젠가 티비에서 모 방송 아나운서가 이 영화가 여성을 너무 '피해자' 식으로 그려서 불편했다는 소감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 '피해자 정서'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은 의욕이 문득?ㅋ
    11월 12월 영화제에서는 그것을 피해 다른 영화를 기획한다니 또 궁금...
    여성과 피해자 정서... 그 내용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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