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혁샘 특강 후기 - 자기 배려의 책읽기

아렘
2019-10-1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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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를 읽는 퇴근길 대중지성팀에게는 방학 아닌 방학기간입니다. 지난주 청현재라는 한옥에서 있었던 <에티카> 강독에 이어 이번 주는 <자기 배려의 인문학>,  <자기 배려의 책읽기>의 저자이고 직장인(환과 파생상품을 다루는 매우 치열한 직업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만)인 강민혁 선생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직장인 철학자 강민혁 샘 모습입니다. 

한장 짜리 강의안을 내 놓으시면서 강의에는 소질이 없다는 겸손을 보이셨지만, 제게는 하실 말씀 조곤조곤 다하시면서 읽고 쓴 내공이 듬뿍 묻어나는 두 시간이었습니다.  크게 두 줄기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그간 읽고 사유하고 쓴 내용들을 풀어 놓으셨습니다. 

 

먼저 읽기부터...

어렵더라도 원전으로 직접 갈 필요가 있다면서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 서사시와 로마 비극을 읽었던 경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쳐 들었을때의 당혹감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감각만 넘쳐나는 교양서가 많은 현실에서 원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방법은 원전이 최고라고 들렸습니다. 물론 절망하면서 분투한 결과겠지만요....  그 어려움은 같이 읽기와 전문가들을 따라 가면서 극복하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강민혁샘은 불교는 우응순 샘, 스피노자는 내들러(아 우리 퇴근길 대중지성팀이 밞고 있는 길이기도 하군요), 단테는 이마미치 도모노부, 하이데거는 박찬국 선생, 이반 일리치는 문탁샘의 도움을 받아 읽었다는 경험을 밝혀 주셨습니다. 남이 뭘 읽나가 항상 궁금한 아렘은 주섬주섬 받아 적느라 바빴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읽기의 완성은 쓰기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샘은 집구석(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이나 회사 틈틈이 앱이나 컴퓨터나 심지어 회의록 중간중간에도 인상깊은 구절을 베껴 쓰고 맥락을 달리해 rewriting 해보고 이것들을 보관한다고 하시네요. 강민혁화 한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강민혁샘은 이 작업을 생산이자 텍스트의 향유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아울러 수사는 나중에라도 보완 가능한 하찮은 것이고 중요한 것은 사유하는 정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글은 현란한 수사가 아닌 사유하는 정신이 쓴다는 말씀은 백 번 옳아 보이지만 도달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경지로 보였습니다. 핵심 부분을 수십번 반복(아 이것도 보통 사람에게는 고문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해서 읽다보면 글은 저절로 나온다는 말씀도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텍스트를 절단 채취하여 내 것으로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마감이 있는 글을 써서 공포감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할때는 속으로 빵 터졌습니다. 

아울러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자기' 와 '자기 배려'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 온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에픽테토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푸코의 여러 저작과 인터뷰를 통해 '자기 배려' 개념과 실천에 대해 설명하실 때에는 '자기배려'가 '자기계발'로 비칠까와 매우 염려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퇴근길 대중지성팀에게는 그나마 익숙한 개념이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퇴근길 대중지성팀에게는 '영성'과 '자기' 그리고 '자기 배려'를 지난 학기 공부한 덕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제가 텍스트를 엉망으로 읽지는 않았나 봅니다. ) 

 

왜 그렇게 책을 읽으세요? 어떻게 시간을 만들까요? 이런 질문들에 강민혁샘 답변을 달면서 두서없는 후기를 마칩니다. 빠진 부분은 다른 샘들이 보충을 좀 해주시길....

'저는 아무래도 뽕 맞은것 같아요' '시간'은 없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것이다. 로마적 Otium(동글이 샘이 만약 카페를 낸다면 이 이름을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을 만들어라. 저는 뽕 맞았단 느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덧... <명상록>을 로고스의 덩어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만나본 최고의 한 줄 서평이었습니다. 중간중간 들었던 묘한 기시감은 세미나 시간에 기회되면 나눠보고 싶습니다. 

 

 

 

댓글 3
  • 2019-10-17 13:01

    우선 강민혁샘이 전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꼭 전해달라고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 드려요.

    " "완독과 발췌독의 변증법" 이야기할때 이 얘기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전은 완독하고 신간 인문서는 발췌독 하자. 특히 일년에 고전 한두권은 샅샅이 탐구하면서 완독해보자. 가령 논어라면 공자평전 2-3권, 논어해설서 및 학술서 4-5권, 논어 한문 강독 및 함께 낭송, 중국 공자묘 방문 등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강민혁)

  • 2019-10-17 13:03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한 서사(개념)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근래 들었던 특강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강민혁샘 역시 우리처럼 공동체에서 책을 읽고, 쓰고, 합평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들 아는 것처럼 문탁에서는 2017년부터 직장인을 중심으로 한 퇴근길인문학 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2019년에는 이런 공부가 3년차가 되면서 퇴근길대중지성 이름으로 올 한해동안 푸코와 스피노자 읽기를 진행하고 있어서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는 '수사적인 문체가 아니라 사유하는 정신'이라는 말, '합평'의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말에서 겪하게 공감하게 된다. ^^;;

    특강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때마다 들었던 생각들을 조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일하기도 바쁜데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쉽게 읽히는 교양서가 아니라 철학자가 쓴 원전을 읽어야 할까? 처음에 글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저 흰 종이의 검은 글자로만 보이는 철학책들을 정말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함께 읽기와 함께 쓰기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자본주의 한 복판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철학책을 읽을수록 마음이 더 불편하고 힘들어지는 것이 필연이다. 이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다른-퇴근길-되기'는 요망하기때문이다. 자본시장 부장이라는 어쩌면 최첨단의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철학책을 읽고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철학을 뽕'이라고 부를 수 있었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특강이 끝나고 몇몇이 모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직업)과 자본주의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른-퇴근길-되기'는 무조건 퇴직하기도 아니지만, 그렇다면 무작정 버티기도 아닌 것 같다. 샘이 강조했던 것처럼, 일단 '함께'를 구성해서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

    그날 나눠주었던 한장 메모 함께 올려놓아요.

    KakaoTalk_Photo_2019-10-17-12-54-51.jpeg

  • 2019-10-19 23:03

    뿔옹샘한테 후기요청받고 늑장부리는사이에 아렘샘이 생생한 후기 남겨주셨네요~^^
    사실 특강신청하고는 책도 읽어볼 여유도 없이 강의를 들었는데.. 은행원에서 철학자로 변모해가는 과정과 그속에서 느꼈던 세밀한 감정까지도 조근조근 말씀해쥐셔서 재미있는 강의였습니다.
    강의들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철학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고통마져 즐기면서 공부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신기하면서도 부끄럽기도했어요. 강의안 마지막 푸코의 말처럼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은 큰데,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뭔가 깊이있는 공부를 안하려고하는 저를 발견하곤 또 반성만 365일하네요. 그래도 한방에 훅 빠지지 못한다면 일상속에 빠져들게하기위한 백일의 논어로 계속 공부와 접속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