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강독시즌2, 4강후기> 개념자 A가 논파되면, ~A는 논할 필요도 없다

요요
2019-10-14 16:02
307

<중론>은 참 이상한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환해지는 게 아니라 뒤죽박죽이 된다.  나만 그런 건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꼭 그런 건 아닌듯하다.

왜냐하면 점심먹고 난 뒤 우리가 혼미해질때 쯤이면 우리의 싸부 신상환쌤도 때로 헷갈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론>의 에센스를 파악하려는 진리에의 의지를 가진 우리가 아닌가? 밥먹은 뒤 정신이 혼미해져서 우리의 수준을 잠시 잊은 탓인지 삼독의 하나인 탐욕-자기를 내세우고 싶은 욕망의 화신이 되어서인지 신쌤은 내비두고 학생들끼리 신나게 '이건 이런 뜻이다, 아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냐' 갑론을박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논란에 쐐기를 박는 신쌤의 한 마디가 있다. 바로 "내가 안 그랬시유~"이다. "내가 안 그랬시유~"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이 한마디는 그러나 만능치트키로 작용한다. 

그럼 누가 그랬단 말인가? 그건 바로 나가르주나, 곧 <중론>의 저자 용수의 논리가 그렇다는 말이다.

용수가 펼치는 논리의 향연, 바로 환술사 용수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식의 환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중론>의 논파구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즌2도 중반을 넘어 4회까지 왔다. 이제 2강만 남았다. 야호! 슬슬 <중론>이 지겨워지기도 하지만, <중론>의 구절구절이 맑은 물에 비친 달처럼 투명하게 이해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난 시즌에 한 것을 들어도 다시 새롭고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다시 배워도 새롭기만 한데.. 그럼에도 우리말인지 외국어인지 계속 헷갈리는 이 번역서가 주는 느낌은 참으로 애매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중론> 완독한 1인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 석자를 남기려면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중론>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는 지뢰밭을 모두 완벽하게 넘어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용수가 설치한 지뢰밭의 배치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20품에서도 바로 그런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16, 17, 18 게송이었다. (오전에 20품을 강독할 때 자리에 없었던 문탁을 위해 특별히 이 부분을 중심으로 후기를 쓴다.^^)

20품은 '결합을 고찰'한다. 인과 연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불교의 상식 중의 상식. 그런데 인과 연이 결과를 낳으려면 인과 연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 구사론자들의 주장이다. 우리의 용수는 바로 '결합'을 논파한다.  결합을 논파해 가던 중 16번째 게송이 등장한다.

"만약 결과에 의해서 공한 원인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결과를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결과에 의해서 공하지 않은 원인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16)"

말도 더럽게 어렵다. 그러나 대충 이런 뜻이다. 원인이 공하다면 연기적인 것이기에 '자성을 가진 결과'를 발생시킬 수 없다. 만일 원인이 공하지 않다면, 즉 연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성을 가진 것이라면 원인은 언제까지나 원인일 터이니, 그 역시 결과를 발생시키지 못한다.

다음 17게송을 보자.

"공하지 않은 결과는 생겨나지 않고/ 공하지 않은 그것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바로 그 공하지 않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리고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도 될 것이다."

공을 연기 혹은 무자성으로 바꾸어 읽어보자. 결과가 연기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라고 읽어보자.

다음 18게송.

"그러나 공한 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공한 것이 어떻게 사라지겠는가?/ 그러므로 공한 그것이 또한 사라지지 않고 그리고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과실이 된다."

17게송까지 그럭저럭 이해된 것 같았는데 18게송에 와서 다시 지뢰를 밟은 느낌이다. 으악! 대체 뭔 말이란 말인가.

17게송에서는 공하지 않은 것은 사라지지도 않고 발생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18게송은 공한 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역접이 된다. "그러나 공한 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공한 것이 어떻게 사라지겠는가?" 공한 것에 생멸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공한 것에는 생과 멸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공하므로 생멸이 있다는 것을 논파했다. 여기까지는 OK! 문제는 다음 3행과 4행이다.

왜 그러므로 공한 것이 불생불멸인 것이 과실이 된다는 말인가?

여기서 용수의 논리구조를 이해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 된다는 신쌤의 말씀!!!

1행과 2행은 명제 A(공한 것에는 생멸이 있다)를 논파한다. 

개념자 A가 논파되었으므로(그러므로) 3행과 4행은  A의 부정인 ~A(공한 것에는 생멸이 없다)는 논할 가치도 없다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생멸도 성립하지 않는데(1행 2행) 불생불멸이 어떻게 성립하겠는가? 그러니 그게 아니고 불생불멸이라고 하면 과실이 된다.(3행4행)

"그러므로 공한 것이 불생불멸이라는 주장 또한 과실이 된다."는 이야기라는 것.(칸트도 아닌데 산책시간이 되어 일단 여기서 종료, 산책다녀온 후 곧 계속됩니다.ㅋㅋㅋ)

(산책을 다녀오니 마음은 여유롭고 몸은 노곤하여 그만 쓰고 싶다. 하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마무리를 잘해보자!)

사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헷갈리는 건 순전히 말 때문이다.

귀경게에서 '용수는 분명 연기는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일불이 불거불래라고, 그것이 희론이 적멸한 가르침이라고 말했다'는  그 말에 매어있기 때문에 20품 18게송의 불생불멸 앞에서 우리는 "뭬야?"하고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아니다. 맥락이다. 그 맥락을 잊으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 무엇을 논파하고 있는가, 그걸 봐야 한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을 잊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희론에 매이게 하는 강력한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중론>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텍스트를 읽든 다르지 않다.

이미 알고 있던 것에 의지하되, 그것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텍스트의 맥락과 텍스트가 풀어내는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미 알고 있는 앎에 근거해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 할 때, 우리는 번뇌망상을 불러 일으키는 분별심에 사로 잡히게 된다. 바로 '나의 견해'='내 것'이라는 마구니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옳네 그르네 논쟁적 구도에 빠져서 탐구자의 태도를 갖기보다 이기려는 정념에 휩싸이거나 내가 이기지 못해서 괴롭다는 정념에 빠지기 쉽다. 희론의 적멸이 열반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희론의 적멸이란 어떤 면에서는 고도로 지성적인 경지 아닌가 싶다.

21품에서도 같은 논리식이 등장한다. A를 논파하고 난 뒤 ~A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9번째 게송이다.

"공한 것에 있어서 발생과 소멸들은/ 옳은 것 자체가 아니다./ 공하지 않은 것에 있어서도 발생과 소멸들은 옳은 것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11번째 게송은 이렇게 말한다.

"바로 그 발생과 소멸들이/ 보인다라는 생각을 그대가 마음 속에 품는다면/ 그것은 바로 그 발생과 소멸들이/ 그대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올해 나의 수행법은 매일 좌선을 하고 명상하는 것이다. 눈에 띄는 진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계속해서 하다보니 조금씩 진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진전이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힘이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용수 선생, 다시 뒤통수를 친다. 매일 아침 그 발생과 소멸을 보려고 하는 것, 마음의 발생과 소멸이 보인다라는 생각을 품는 것, 그것이야말로 너의 미망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용수선생님! 알겠습니다. 그것이 미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도 매일 매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보겠습니다!!!

 

댓글 1
  • 2019-10-15 09:18

    "내가 안 그랬시유~"가 아니라 "제가 안 죽였시유~"입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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