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강독 시즌2> 2강 - 언어의 세계, 연기실상의 삶!

문탁
2019-10-02 05:52
530

1. 용수의 논파? 신상환샘의 논파!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겪는 일이 있다. 나는 목청 높여 무엇인가를 강조하는 데 듣는 사람 대부분은 멀~뚱! 하고 있는 일. 강사와 학습자가 놓인 맥락이 달라서일 경우가 많은데, 예컨대 강사는 대체로 자신이 새로 발견한 것들 (그것은 이전의 연구자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거나 혹은 기존의 해석과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을 강조하는 데 비해 듣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것(선행연구 따위^^)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강사의 말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않는다. 그러니 강사가 목청을 돋울수록 청중들은 멀~뚱에서 딴청으로, 딴청에서 하품으로, 하품에서 꾸벅꾸벅으로...ㅋ... 어쨌든 그런 날엔 라뽀 형성도 잘 안되고 강의도 제대로 풀리지 않고 ‘프로폴리스’를 대량 살포함에도 불구하고 목이 잠기고 몸살이 난다.

 

 

“Ten to Four! 인텐시브 <중론> 강의”가 다시 시작된 지금 난 신상환샘한테 ‘프로폴리스’를 선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중론> 전공자이고 티벳어 해독자이고 인도철학의 전통에 익숙한 분이다 보니, <중론> 해석의 역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거구, 한역본의 문제를 비롯한 번역(역경)의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거구, 종파불교의 풍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거구, 한국 학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게다. 객관적인 <중론>해석, 표준적인 <중론>해석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신상환샘의 이런 강조들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쨌든 우리는 용수의 논파만큼이나 신상환샘의 논파를 많이 듣고 있는데, 문제는 구사론을 잘 몰라 용수 논파의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중론 해석의 분분을 잘 몰라 신상환샘 논파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대체로 멀~뚱!일거구, 신상환샘은, 예측하건대 얼마나 답답하실까? ㅋㅋㅋㅋ

 

그래서 (용수의 논파 이전에) 신상환샘 논파의 핵심내용을 내 식으로, 내 맘대로 재구성한다.

 

1. <중론>은 진리를 설파하는 책 (이걸 신상환샘은 주로 ‘과학’이나 ‘철학’의 과제라고 말한다)이 아니라 그런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 책이다. 중론은 결코 ‘positive’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니가 말하는 것/생각하는 것/믿는 것-이 모든 것은 언어적이다-을 의심하라는, 해체하라는 ‘negative’한 이야기만 한다.

 

2. 그런데 이런 ‘방법에 관한 책’, 즉 negative한 접근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언어’로 밖에는 할 수가 없는데, 그렇게 되면 언어로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장자>는 우화의 형식을 차용하였고, 들뢰즈는 텍스트를 리좀(고원들)처럼 구성하였고, 페미니스트이자 데리다리언인 주디스 버틀러는 자신이 쓰는 단어와 문장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기 위해 악명높은 난문으로 글을 썼다. 우리의 용수보살께서는? ‘논파’이다. 상대의 논리를 상대 논리의 허점을 들어 깨부수는 것. 논리로 논리의 허점을 드러내 논리를 깨는 것! (하지만 신상환샘은 김성철샘이 주장하시는 것처럼 이게 자띠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버뜨 난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 ㅋㅋ)
<피에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참 신기했다. 왜 우화도 아니고, 선문답도 아니고, 말장난 같은^^ 논파일까? 신상환샘 왈. 이것이 바로 ‘인도적인 것!’이란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산스크리트어 자체가 아주 논리적인 언어라는 것이고 (격변화가 없는, 맥락 속에서만 의미가 확정되는 한문과 비~교~된~다!!!) 또 하나는 사후세계에 대한 질문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3. 하여 <중론>의 방법론은 ‘Logical Negative’ (엄청 논리적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전체의 구조를 보면 이 책은 체계적인 논서라기보다는 자유사상가의 텍스트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용수보살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적은(게송) 책이 바로 <중론>이라는 것인디..... 어쨌든 <중론>은 논리적인 텍스트이지만 정합적인 텍스트는 아니다!! (이건 주로 텍스트비평과 관련된 이야기, 즉 이 책의 어느 게송은 후대에 끼어들었다는니, 저 게송은 용수가 쓴 게 아니라는 둥....뭐 그런 논점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2.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다.

 

봄학기에 우리는 14품까지 수업을 했고, 가을학기에 들어 첫 번째 시간과 지난 주 두 번째 시간의 오전까지 봄학기에 다룬 내용을 복습했다. 버뜨, 우리에게는 모든 게 새~~ 로~~~웠~~~~다!!

 

우선>> 신상환샘의 요점정리 대방출

 

<13품-行(삼스까라/compounded phenomena)에 대한 고찰>
요점: ①13품 2게송에 ‘공’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온다. 이점이 바로 <중론>이 자유사상가의 텍스트라는 것을 역으로 알려준다.
②13품 8게송. 공도 공하지 않느냐의 문제 (소위 ‘공공’) - 이것은 회쟁론에서 다시 다뤄진다. (그런데 신상환샘. 13품 8게송을 다시 읽어보니 이게 ‘공공’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디요....)
<14품-合(결합)에 대한 고찰>
요점: 솔직히 잘 모르겠음. 그래서 질문했었는데 구사론 5위75법, 유식 5위100법으로 넘어가서 더 정신없었음
<15품-자성에 대한 고찰>
요점: ①반복되는 논파방법이지만 “A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A도 성립하지 않는다.”(5게송)

②세상을 자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6게송)
<16품-속박과 해탈에 대한 고찰>
요점: ①16품의 해탈(Moksa)와 25품의 열반(Nirvana)는 완전히 같은 말이다.
16품 10게송과 25품 19게송은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다. (열반과 윤회는 다르지 않다^^)

 

 

 

 

내 맘대로>> 재구성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신상환샘에 따르면 이 자유사상가 텍스트 <중론>에는 체계가 없다. 2품은 1품과 연결되지 않으며, 각 품의 게송 수도 차이가 많이 나며, 비슷한 내용들이 나란히 묶여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온다는 13품부터 16품까지가 <“자성은 없다” 시리즈>처럼 느껴진다.
하여, 내 맘대로 다시 품의 제목을 지어보라고 하면,

 

13품 – 실재는 없다. (너의 눈에는 나무도 보이고 사랑하는 연인도 보이겠지만, 그런 것들은 다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14품 – 13품의 보충처럼 보임. 즉 실재(=보이는 대상)가 없는 것은, 보는 주체도, 보는 활동도 각각 독립적으로(자성)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5품 – 실체(본질을 가진 것)는 없다. (상주론 비판) 그렇다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라고 말해도 안된다. (단멸론 비판)
16품 – 주체(이때 주체는 서구사상의 근대적 주체가 아니라 인도사상의 윤회적 주체)는 없다. 주체가 없으니 윤회도 없다. 윤회가 없으니 해탈도 없다. 생사와 윤회, 열반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3. So, What? ..... "いける!!!!"

 

 

자성이 없다는 이야기 끝에 속박도 없고 윤회도 없고 해탈(열반)도 없다는 이야기까지 왔다. 개념으로서 고통(속박)도, 실체로서의 열반도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허무주의(=악취공)라기 보다는 사유의 어떤 극한! 이쯤 되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는 무지막지한 결기!! 하여, 이제 무엇이 남는 것일까? 

신상환샘의 멋진 말로 마무리를 하자.

"진제는 다른 게 아니다. 사는 것이다. 살면서 자기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いける!!!" 

 

나도 <중론>강독이 끝날 때쯤엔 멋진 말 한 가지쯤 남길 수 있을까? 깨달음 한 조각을 서원한다.^^ (아...신상환샘의 일갈이 이 새벽에 환청으로 들린다. "깨달음에 집착하지 말라니까요...거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에쑤 :  수업시간에 '윤회'에 대해 질문하다 혼만 났다. 신상환샘 뚜껑 열렸다. 내가 그동안 설명한 것을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질책!! ㅋㅋㅋㅋ...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었다. 그런데 아마도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개념으로서의 '윤회'가 아니라 사유의 환경으로서의 '윤회'랄까, 뭐 그런 것 ! 불교가 태어나고 자란 (사유의) 환경. 그 인도사상의 에피스테메. 그것을 알고 싶어요^^ 호호호 

 

댓글 3
  • 2019-10-02 11:37

    호호^^ 용수의 사상을 들으며... 요즘 <사서덕후>에서 읽고 있는 맹자님의 말씀이 계속 오버랩되는 '기이한' 현상에 혼자 끙끙댔던 1인으로써
    말로써 말을 논파해야 했던 곤란함이 쫌 느껴졌거든요(양주와 묵자라는 당대 대세를 향한 맹자의 끈질긴 논쟁 등등요^^)
    후기를 읽으니 그 '곤란함'의 기운이 다시 환기 됩니다요^^
    여기서 질문- 후기에 나온 이 문장이요

    주체(이때 주체는 서구사상의 근대적 주체가 아니라 인도사상의 윤회적 주체)는 없다.

    서구사상의 근대적 주체와 인도사상의 윤회적 주체의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이 차이점이 뭔가 내가 언어 속에 끄달리고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 2019-10-02 19:14

    그 환청을 읽는데 오디오로 들리네요. 거참. ㅋㅋㅋ

  • 2019-10-04 11:16

    아... 얼마 전 '맛지마니까야'를 완독한 사람이며, 최근 무지 아팠던 사람으로...그런 제가 이 후기를 읽건데,
    16품 내용은 완전히 머리가 뒤죽박죽 되네요.
    중론이니깐... 하면 이해가 될 듯도 한데. 뭐지? 윤회가 있는지 없는지는 원래 별 관심 없지만, 열반도 없다니요?!
    목표 상실;;; 아. 나는 열반에 들고 싶었는데. (신상환쌤한테 한 대 맞을 것 같음. 지난 주에 못 가길 잘 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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